실학 박물관의 개관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실학은 조선 500년 역사가 흐르는 중에 스스로 성리학의 영향으로 인한 도학 중심의 나라 체질이 짙어져간 시기에 서양의
실시구시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 잉태되었다,
주자학의 영향은 나라를 이기론 중심의 예학과 도학의 체질로 바꾸어갔다.
돈을 따지고 경제를 따지고 물질을 따지는 것을 천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나서, 일부 식자들 사이에서 나라의 부흥을 위해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광해군 효종 조의 김육이다.
김육은 영의정까지 한 사람이지만, 백성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보릿고개 시 그것의 극복을위한 책을 쓰기도 하였다.
국민을 기아에서 구해내는 방법으로 그가 건의한 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대동법이다.
대동법이란, 국세를 지방 특산물 중심으로 실시하고 있던 공물제도를, 군역까지 포함하여, 미곡으로 하자는 것이다.
공물제도는 필연적으로 방납(대납)을 낳았고, 이것이 극도의 세정문란을 야기 시켰다.
실학의 시초를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영, 정조 조로 보고 있다.
반계 유형원과 성호 이익을 비조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선조 광해군 조의 이수광을 비조로 보기도 한다.
이수광이 중국에 가서 미테오리치를 만나고 그의 천주실의를 가지고 왔고, 지봉유설이라는 실학서를 썼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에도 실학 풍이 불어서, 안정복의 동사강목,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유득공의 발해고 등이 그런 것이다.
지리학이 중요 학문으로 떠올랐으며, 이중환의 택리지, 정약용의 아방강역고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농학분야에서도 명저가 태어났다. 박세당의 색경이 대표작이다.
이 시대에 청 나라로 가서 새로운 문물을 배우자는 일군의 학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을 북학파라고 하는데 박제가, 박지원 부자가 대표자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영.정조의 적극적인 보호로 큰 업적을 냈으나, 기존 도학 중심의 성리학자들의 두꺼운 벽을 깨지 못하고 고전하다가, 한말 밀려드는 서양학문에 밀려 사라졌다.
이런 학자들의 족적을 찾아 그것을 한 자리에 모아 보관하자는 것이 실학박물관의 목적이다.
이런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내서 2002년 이 사업이 잉태되게 한 사람이 우리들의 동기인 김남기 동문이다.
김남기 동문은 실학 박물관의 편제에는 깊이 관여하지 않고, 기왕에 이 지역에 존재해 오던 다산문화교육원이란 기구의 이사장 직을 맡고 있다.
그가 그렇게도 애착을 가지고 있는 다산 문화의 심화와 확산에 그는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실학자들이 유난스레 경기도에 많았다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유형원(용인), 이익(안산), 정약용( 남양주) 등이 그들이다.
다산의 묘소가 올려다보이는 강변에 박물관이 들어섰다. 다산의 묘소에서 강의 수변을 내려다보아야 한다는 뜻에서 건물을 그리 놓게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육의 후손들이 간직해오던 그의 유물들을 이 박물관의 건립에 맞추어 전부 기증을 하여 김육의 특별실을 만든 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김육은 광해군 시절, 과거에 합격하여 관리로 나었으나 성격이 강직하여 주로 언관으로 있었다.
이이첨 일파의 폐모 사건을 보고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귀향하여 십년간 두문불출하였다.
인조반정으로 다시 관계로 나서서, 좌 우 의정을 거쳐, 영의정으로 올랐다.
아들 김좌명이 역시 정승까지 올랐으나, 송시열의 모함을 받아 큰 고생을 한 것은 유명하다.
전형적인 도학자가 실학자의 후손을 압박한 사건이다.
도지사를 비롯하여 국회의원 시장 교육감 대학총장 등 여러 정치인들이 몰려와서 축사와 기념사를 하였다. 어떤 문화모임에 가도 이들 정치인들의 축사 듣기는 참으로 괴롭다.
실학학회 회원들도 왔고, 일본인 교수 네명이 자리를 같이 했다.
다리가 아파 걸음이 부자유스러웠던 고혜령 동문이 완쾌되어 참석하였다.
능내리 다산 유적지가 몇해 전의 한적한 강변 마을에서, 대단한 규모의 한옥들이 즐비한 놀라운 전통마을의 모습으로 바
뀌어 있어 놀라웠다.
사진1...국사편찬위원회 고혜령 편사부장과 함께
사진 2..(왼쪽부터) 김시업 성대교수, 고혜령 박사, 박석무 고전번역원 원장, 임형택 실학학회 회장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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