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①

鶴山 徐 仁 2009. 10. 24. 17:48

 
   
   
  서정후 님께 드립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①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09년 10월 26일 당시엔 러시아 땅이었던 하얼빈 역 플랫폼에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에게 3발을 명중시켜 숨지게 하였다.  이토가 쓰러지자 안중근은 권총을 허공에 던지며 ‘코리아 만세’라고 외쳤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30세였다. 그가 사형을 앞두고 남긴 마지막 말이 있다. 100년이란 세월을 뛰어 넘어 읽는 이의 가슴에 닿는 바가 있다.
 
“내가 조국의 독립을 회복하기 위해 3년간 해외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다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죽노니 우리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자 분발하여....독립을 회복하면 죽는자 원한이 없겠노라”
 
안중근 의사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사상은 요즘 들어 재해석되고 있다. 특히 그가 주장한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이 더욱 그러하다. 그의 ‘동양평화론’은 오늘의 관점에서도 탁월성과 현실성을 지닌 선구적인 사상이다. 우리들 후손은 그의 평화사상을 국제화하고 실현시키는 일에 사명감을 품어야 한다.
 
그가 여순 감옥에서의 5개월간의 수감생활 중에 남긴 ‘동양평화론’에서는 이토의 사살이 동양평화를 지키려는 의전(義戰)이라 표현하였고 사형장에서의 최후 발언 역시 동양평화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의 이 거사는 동양평화를 위하여 결행한 것이므로 임석 제원들도 앞으로 한·일화합(韓日和合)에 힘써 동양평화에 이바지하기 바란다.”
 
그는 한·중·일(韓中日) 3국이 각자 독립을 유지하면서 서로 상호 부조하는 길을 제시하였다.그런 점에서 그의 사상은 유럽연합(EU) 구상보다 70년을 앞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