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유럽 아프리카

'아프리카의 알프스' 남아공 드라켄즈버그

鶴山 徐 仁 2009. 7. 9. 11:05

'아프리카의 알프스' 남아공 드라켄즈버그



산악 지대 여행이라면 으레 극기 훈련이나 모험을 연상하지만 남아공의 드라켄즈버그는 휴양지에 가깝다. 아프리카의 알프스라고 불릴 정도로 대자연의 경관이 환상적이다. 야생동물 보호구역과 부시맨의 암벽화, 높은 봉우리와 굽이굽이 떨어지는 폭포, 그리고 별이 빛나는 아프리카의 밤을 꿈꾼다면 드라켄즈버그로 달려가자.



드라켄즈버그 고원에는 호수도 많다.

눈앞에 펼쳐지는 동물의 왕국

남아프리카의 관문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남아프리카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상 깊은 곳을 꼽으라고 하면 대개 사파리나 케이프타운을 꼽는다. 사파리는 어릴 때부터 숱하게 봐왔던 '동물의 왕국'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현장이다(물론 TV와는 달라서 사자 한 마리도 보지 못하고 오는 관광객도 많다). 케이프타운은 너무나 유럽풍이어서 깜짝 놀란다. '여기가 유럽이야, 아프리카야' 할 정도로 유럽색이 짙다. 자, 그럼 남아공 토박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자국 여행지는 어딜까? 케이프타운도 좋고, 사파리에서 대자연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남아공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드라켄즈버그(Drakensberg)다.

드라켄즈버그라고 하면 이름조차 생소할 것이다. 여행자들은 초원인지, 야생동물의 왕국인지, 바닷가인지, 산인지 궁금해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드라켄즈버그라는 이름을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드라켄즈버그 소년 합창단은 흑인 영가로 유명하다. 현지에선 공연장 하나 제대로 찾지 못했다(아트홀이 있을 만한 곳도 아니다). 그런데 드라켄즈버그 합창단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순회 공연을 펼치고 있다.

드라켄즈버그는 남아공의 고정관념을 깰 만한 여행지다. 보통 아프리카 하면 덥다거나 사자, 코끼리만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드라켄즈버그는 설악산 같은 풍광을 지녔다. 드라켄즈버그는 '용의 산(Dragon Mountains)'이란 뜻이다. 남아공 동남부의 고산지대다. 드라켄즈버그는 흔히 아프리카의 스위스, 혹은 아프리카의 알프스라고 불린다.

드라켄즈버그 가는 길

요하네스버그에서 차를 타고 4시간 정도 가면 드라켄즈버그가 나타난다. 가는 길은 아주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주유소가 딸려 있는 휴게소는 한국과 비슷하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요리는 스테이크버거다. 쇠고기를 얇게 저며 구워낸 것인데 우리 돈으로 5천원 정도면 먹을 수 있다. 쇠고기가 꽤 싸다.

들판이 끝없이 이어지다가 서서히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강원도로 가는 느낌이다. 산들이 조금 높고, 들이 조금 좁았다면 대관령을 떠올렸을 법하다. 주변에는 호수도 있다.



큰 고개를 넘어가면 풍광이 완전히 바뀐다. 주변은 바위산들이 빙 둘러 서 있다. 이 바위 산맥의 길이는 무려 200km다. 마치 미시령에서 본 울산바위들이 계속 이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기후도 쾌적하다. 남반구인 남아공은 6월이면 가을색이 완연하다. 풀들은 갈색을 띠고 있다. 산에서 흘러나온 계곡수는 풀밭 사이로 내려가고 소 떼를 모는 토박이 젊은이는 까만 얼굴에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보낸다. 요하네스버그는 세계적으로 치안이 좋지 않기로 악명이 높지만 이곳은 안전하다. 항상 긴장해야 하는 요하네스버그와는 달리 평화롭다. 게다가 고급 리조트도 많다. 별장형 콘도에서 바비큐를 해 먹으며 일주일 이상 휴가를 보내는 상류층이 많다.

산들의 모습은 특이하다. 최고봉은 샴페인 캐슬(3,377m)이다. 이 밖에 대성당 모양을 하고 있는 캐시드럴피크(3,004m), 악마의 이빨이라는 데블스투스(3,022m)도 유명하다. 이름만 들어도 산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산들은 유럽 알피니스트를 불러 모으기도 한다. 암벽 등반을 좋아하는 모험족들이 식민지 개척시대에 이미 남아공까지 와서 바위산에 오르곤 했다. 지금도 많은 알피니스트들이 찾곤 한다.

소수 민족, 그들이 사는 법

드라켄즈버그는 넓다. 승용차로 끝에서 끝까지 3시간 정도 걸린다. 원래 이 지역은 산(San)족의 땅이었다. 산(San)족은 영화 '부시맨'에 나오는 바로 그 종족이다. 이 일대에는 수천여 개의 동굴이 있는데 바로 그 동굴에 숱한 암각화를 새겨놓았다. 쉽게 말하면 신석기시대부터 지금으로부터 불과 수백 년 전까지 이어지는 수렵 문화를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드라켄즈버그다. 때문에 세계 각국의 고고학자들이 이곳에 모여들기도 한다. 고고학자들은 아프리카가 인류의 발생지라고 본다. 인류는 6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나왔다. 초기 인류는 숲에서 살았고, 이후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을 것이다. 나중에는 부시맨처럼 사냥을 하며 살아갔을 법하다.

부시맨의 삶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이 디디마 록센터다. 암각화는 생각보다 정교하고 아름답다. 수많은 소 떼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붓 자국이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다. 물론 붓 대신에 화석화된 천연 물감을 썼을 것이다. 수레를 타고 다니는 모습까지 그려져 있다. 부시맨도 활 하나만 차고 살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부시맨은 드라켄즈버그에 남아 있지 않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땅에서 쫓겨났다. 흑인 대부분은 아프리카의 전사로 유명한 줄루족이 많다.

대체 부시맨에게는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남아공에 가장 먼저 정착한 서구인들 중 하나는 보어인이다. 보어인이란 네덜란드어로 농부라는 뜻. 1652년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케이프타운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18세기 이후 보어인의 후손은 남아공 주요 도시에 정착하게 된다. 보어인은 트란스발 자치주, 오렌지 자치주 같은 자그마한 국가를 건설하고 농부처럼 살아갔다. 하지만 인종 편견이 심했던 보어인은 노예 해방을 주장하는 영국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남아공에서 엄청난 크기의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자 결국 탐욕스러운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이아몬드 회사가 이때 많이 생겼다. 로즈 장학금으로 유명한 세실 로즈도 이 때 들어와 남아공에 철도를 놓고 영국 식민지로 만드는 데 앞장을 섰다.

보어인들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인을 이길 수 없었고 이들 중 일부는 드라켄즈버그로 쫓겨왔다. 드라켄즈버그는 그나마 목축업을 하기 가장 좋은 땅이었던 것이다. 부시맨들의 땅에 이들은 목책을 세우고 농장을 만들었다. 여기서 소를 키웠다.

반면 부시맨은 자유인이었다. 그들에겐 소유의 개념조차 없었다. 영화에서처럼 순박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부시맨에겐 울타리에 가둬놓은 목장의 가축은 좋은 사냥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목장에서 소들을 잡아가곤 했다. 백인들은 화가 나서 부시맨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의 전사로 불리던 줄루족들도 부족 전쟁을 일으켜 아프리카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힘없는 부시맨은 서서히 쫓겨났다. 한때 아프리카 전역을 차지했던 부시맨은 나미비아의 칼라하리 사막과 보츠와나 등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드라켄즈버그는 목축업이 발달돼 있다.

아프리카의 별밤

드라켄즈버그는 이런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현재는 휴양지로 변했다. 고급 리조트도 많았다. 이 일대의 리조트에서 이틀 밤을 묵었는데 잘 지어놓은 펜션 같았다. 거실 하나, 침실 4개, 욕실 2개에 취사도구까지 갖춰져 있다. 밤엔 벽난로에 불을 때고 앉아 맥주를 마셨다. 트레일러를 끌고 온 차량은 잔디밭에 앉아서 바비큐를 해먹기도 한다. 트레킹 프로그램도 잘 돼 있었다. 어린이를 위한 조랑말 트레킹도 있다. 가벼운 산책 코스도 많이 있어 걷기에도 좋다. 아프리카에서 보는 별밤도 아름답다. 사실 남반구가 별을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드라켄즈버그는 사진 촬영 여행지로도 좋다. 일단 분위기가 독특하다. 노란 초원과 바위 절벽은 묘한 대비를 이룬다. 게다가 원주민들의 생활상도 비교적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특이한 동물과 곤충, 새들도 많다.

모험 여행지라기보다는 휴양지에 가깝고, 스터디 투어를 하기에도 좋다. 외려 쉬면서 가볍게 산책하고 고고학적으로 이름난 장소를 찾아가보는 스타일의 여행에 적합하다.

여행 길잡이

아프리카 전문 여행사 인터아프리카(02-775-7756 www.interafrica.co.kr )가 취급한다. 패키지는 없고 여행자들이 요청하면 투어 프로그램을 짜준다. 케이프타운 3박, 드라켄즈버그 3박을 포함해 6박 8일 정도의 프로그램이 좋다. 이렇게 짤 경우 350만원대 정도 한다. 개별 여행을 원하면 현지 가이드도 소개받을 수 있다. 드라켄즈버그는 아침에 기온이 7~8도까지 내려간다. 낮에도 15도 안팎으로 보면 된다. 서늘해서 자외선 차단제를 챙기지 않아도 되겠지 생각하면 오산. 햇살은 눈부시다.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 화폐 단위는 랜드(Rand). 1랜드는 200원 정도. 남아공에만 간다면 황열병 접종이 필요 없다. 케냐 등 중앙아프리카 쪽을 여행한 뒤 다시 남아공으로 들어올 때는 황열병 접종 카드를 제시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국공립 병원이나 검역소에서 맞을 수 있다. 직항편은 없다. 홍콩에서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까지 남아공항공(02-775-4697 www.flysaa.com )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인천-홍콩-요하네스버그-케이프타운.

■ 글 & 사진 / 최병준 기자(경향신문 문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