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핵(核)에는 핵(核)으로' 전략

鶴山 徐 仁 2009. 6. 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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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核)에는 핵(核)으로'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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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2일 서울 서초구 평화재단 5층 회의실에서 작은 세미나가 열렸다.

  •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 한반도 전문가 브루스 클링너(Klingner) 선임연구원을 불러

  • '오바마 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을 들어보는 자리였다.

  • 1시간가량의 발표가 끝난 뒤 방청석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 한 방청객이 "북한이 궁극적으로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 클링너 연구원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개인적으로는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 우리는 협상이 불가능한 것을 협상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답변했다.

    클링너 연구원의 답변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 북한은 25일 오전 9시54분 함북 길주군 풍계리에서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 북한은 또 25~26일 이틀간 5발의 단거리 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했다.

  • 마치 북한 김정일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소 다로 일본 총리를 향해

  • '언제든지 당신들 머리 위로 핵미사일을 날릴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듯한 양상이다.

    이번 2차 핵실험을 계기로, '협상을 통해 북핵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란

  • 국제사회의 기대는 '착각'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지난 16년 동안 대북 협상론자들은

  • '북한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북핵을 막을 수 있다'는 가정(假定) 위에 6자 회담 등을 진행해왔다.

  • 하지만 이 가정은 북한 정권의 생리를 잘 모르는 순진한 상황인식이었음이 판명 났다.

    여러 탈북자의 말을 종합하면, 김정일은 '김일성의 유훈(遺訓)사업'인 핵무기 개발을

  • 단 한시도 포기한 적이 없다고 한다. 북한은 핵개발을 체제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본다.

  • 이 때문에 김정일은 국민이 굶어 죽든 말든 바닥난 국가재정을 수십년간 쥐어짰을 뿐 아니라,

  • 한국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큰 사기'를 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북한이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점은, 핵개발의 역사와 그간의 행태에서 드러난다.

  • 북한은 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4년 인민군 내에 '핵무기 방위부문'을 설치하고,

  • 2년 뒤 30여명의 핵물리학자를 소련에 파견했다. 이어 1959년 조소(朝蘇)원자력협정을 체결하고,

  • 1962년 김일성대학과 김책공대에 핵연구학과를 두어 인재양성에 나섰다.

  • 그해 영변에 원자력연구소도 설치했다.

  • 1965년에는 소련으로부터 IRT-2000이라는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 한국의 박정희 정권보다 훨씬 앞선 움직임이었다.

    북한은 또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1차 핵위기) 때부터 올해 2차 핵실험에 이르기까지

  • 16년 동안, 국제사회를 상대로 핵을 포기하는 척 '위장'하면서

  • 최대한 시간을 벌며 핵 기술 개발에 진력해왔다.

  • 특히 한국의 김대중 정부와 미국의 클린턴 정부가 '햇볕정책'을 통해

  • 북한에 '퍼주기'를 하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북한의 '위장전술'은 극에 달했다.

  • 당시 제네바 합의로 영변 핵시설을 이용한 플루토늄 추출이 어려워지자,

  • 북한은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박사와 비밀리에 접촉해

  • 고농축우라늄(HEU) 기술과 장비를 제공받았다.

    이번 2차 핵실험의 파괴력이 1차 때보다 훨씬 강력했다는 것은,

  • 지난 몇 년간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들이 영변 핵시설을 감시하고 있는 사이,

  • 북한은 다른 장소에서 '쉬지 않고' 핵 기술을 발전시켜 왔음을 보여준다.

  • 북한 핵은 필연적으로 일본의 핵무장을 자극하게 되어 있다. 이상희 국방장관 얘기처럼

  •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것이 기본전략'이다.

  • 이제 한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위에서, 국가안보전략을 크게 수정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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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해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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