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은, 누구의 생일이나 특별한 손님이 오시는 날 혹은 명절이 아니면 고기 구경을 하기 어려울 만큼 살림이 넉넉지 못했습니다 밥상 위에 하얀 쌀밥과 고기반찬이 오르는 날이면, 아끼고 아껴가며 밥을 먹곤 했습니다 바로 그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아침과 오후 하루 두 번만 버스가 들어오던 마을에서 학교는 멀었습니다 꼬불꼬불한 신작로를 따라 십리도 넘는 곳에 학교가 있었습니다 투박한 풍금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감나무 키를 넘어 하늘로 날아오르던 학교, 동생과 나는 매일 아침, 어머니가 준비해 두었다가 하나 둘 헤아려주시는 차비를 타가지고 등하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동생은 나보다 한 시간 먼저 집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다녀올게요." "벌써 학교 가니?"하며 어머니는 주발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주셨습니다 "저 녀석, 차도 안 타는데 차비는 뭣하러 줘요?"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동생은 귀가 시간도 나보다 한 시간 정도 늦었습니다 "넌 매일 친구들과 놀기만 하면 어떡하니 집에 일찍 와서 일도 도와야지." 그때마다 동생은 멋쩍은 듯 머리만 긁적거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체육대회 연습으로 저녁때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습니다 가족들은 이미 밥상 앞에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인가 밥상 한가운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고기 볶음이 놓여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돼지고기를 보니 내 입에선 금방 군침이 돌았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이야?" 나는 이렇게 말하며 얼른 젓가락을 들어 고기 한 점을 집었습니다 "무슨 날은....네 동생이 사왔다." 나는 집었던 고기를 슬며시 내려놓았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기가 먹고 싶었으면 차비를 아껴서 사왔겠니." 그제서야 나는 식구들이 아무도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밥상 앞에 앉아 있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동생은 식구들과 함께 고기 먹는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 먼 길을 혼자 걸어다녔던 것입니다 글 : 권인택 [TV에세이 좋은생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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