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想像나래 마당

[스크랩] 이퇴계와 두향의 사랑

鶴山 徐 仁 2009. 2. 19. 15:21



이퇴계와 두향의  사랑

이황(李滉) 퇴계(退溪)선생은 매화(梅花)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다.

이렇게 놀랄 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다.

그리고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선생이었던 지라

한동안은 두향의 애간장을 녹였었다.

그러나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 선생은 .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그러나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변고였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

두향이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움 뿐이다.』 .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저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퇴계 선생은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을 보듯 애지중지했다.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퇴계 선생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 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다.

퇴계 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前身應是明月幾生修到梅花

퇴계 선생의 시 한 편이다.

퇴계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다.

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다.

눈 속의 매화 雪中梅

얼마나 멋진 말인가.

천지는 눈 속에 하얗게 얼어붙었는데 홀로 꽃을 피우니.

옛 선비들은 설중매를 좋아하고 또 스스로 설중매이고 싶어하였다.

설중매는 선비의 표상일 뿐만 아니라

여인의 마음까지 사로잡아 기생도 다투어 제 이름을 설중매라 하였다

 

 




매화는 매실나무의 꽃으로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꽃을 피워 봄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꽃이다. 때문에 매화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이라 여겨져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로 사랑 받아왔다. 선비들이 문인화의 소재로 즐겨 그렸음은 물론이다. 또한 매화는 겨울에 죽은 듯이 보이다가 이른 봄이 되면 꽃이 피는 속성 때문에 회춘(回春)을 의미하고, 대나무와 함께 부부(夫婦)를 뜻하기도 했다. 그 뿐 아니라 새해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라 하여 신년(新年)의 의미로 그려지거나, 쾌락.행복.장수.순리.절개의 오덕(五德)을 지닌 꽃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또한 매화의 한자어인 매(梅), 흰 매화 가지의 한자어 백매초(白梅梢)는 각각 중국식 한자어 발음과 동음인 얼굴 면(面) 또는 눈썹 미(眉)를 의미한다. 그래서 흰 매화 가지 그림은 눈썹이 하얘지도록 장수하라는 의미의 백미수(白眉壽)를 의미한다. 매화가지에 걸린 달[즐거움 상징] 그림은 미수상락(眉壽上樂), 즉 ‘눈썹이 하얘지도록 장수하는 기쁨이 있길 기원’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또한 까치와 함께 그려진 매화는 얼굴을 의미하며 기쁨을 의미하는 까치와 함께 ‘얼굴에 즐거움에 가득하길 기원’하는 의미의 그림이다.
중국에서는 매화를 온실의 보온 없이 싸늘한 겨울 삭풍과 한설에 홀로 꽃을 피워 암향(暗香)을 퍼뜨리는 나무라 하여 꽃 중에서도 최고의 지위를 의미하는 화괴(花魁)라 하여 귀히 여기며, 일본에서는 곧게 자란 매화의 어린 가지에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신통력이 있다 하여 매화 지팡이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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