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긍휼의 그릇 (설교)

鶴山 徐 仁 2009. 1. 19. 09:53

              긍휼의 그릇            

                                                                                                                                            (롬9:19-24)

 

0.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보노라면 참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빈부귀천을 무론하고 다 그렇습니다. 각자 자기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대로, 높은 사람은 높은대로, 민초는 민초대로, 스스로 지기에 곤비한 짐을 지고 허덕입니다. 그래서 탄식을 가슴에 묻고 삽니다. 우선 신문만 떠들어봐도 거기서 절망스러운 탄식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몇 가지로 상고합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며 살아야 합니다.

0. 내가 어떤 상태에 있든 그것은 G의 사랑의 표현임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가난하든, 몸이 병약하여 고통스럽든, 기가 막힐 웅덩이와 같은 문제가 있든, 그것은 나에 대한 하니님의 사랑의 표현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므로 나에게 그런 어려움이 있게 되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는 것이 어렵지만 그러나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현명한 믿음입니다.

  요즘 청소년들 키에 민감합니다. 키가 훤출하게 크면 모든것을 한 손에 쥔양 당당해하고, 키가 작으면 쪽을 못핍니다. 그래서 부모를 원망하고 G을 원망합니다. 부모를 원망하되 키 작은 쪽을 더 원망합니다.

 

0. 언젠가 테레비를 보니까, 방송국에서 예쁜 여자와 예쁘지 않은 여자 두 사람을 택하여 고속도로 상에서 차가 고장나게 하고는, 좀 도와 달라고 각자가 손을 흔들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쁘지 않은 여자는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남자 운전자들이 서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쁜 여자한테는 너도나도 차를 세워놓고 와서 고장난데를 살펴주느라고 야단들입니다. 그러니 예쁘지 않은 여자는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부모원망, 하나님 원망 안되겠습니까. 자살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자기가 잘못해서 그렇게 태여난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 아닙니까. 그러니 얼마나 하나님 원망이 되겠습니까.

 

0. (:19)『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무슨 뜻입니까?「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형편없이 창조해놓고 하나님을 원망한다고 허물하실수 있느냐」그런뜻 아닙니까. 어떤사람은 죄를 계속범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하나님이 나를 죄된 성품으로 창조해 놓고 어찌 죄를 짓는다고 허물하실수 있습니까. 죄된 성품으로 창조하셨으니 죄를 짓는것 당연하지 않습니까」그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20)『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0.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떤 모양으로 창조하셨든, 나는 하나님에게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왜냐면 나는 주권자가 아니라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이 주권자에게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 따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21)『토기장이가 진흙 한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만드는 권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권자 뜻대로 입니다. 우리 피조물은 주권자가 나를 어떤상태로 만드셨든지 (절룸바리로 만드셨든, 벙어리로 만드셨던) 만드신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거기에 감사할것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주권자에 대한 피조물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피조물이 주권자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대들어 봤댔자 자신만 더 악하게 되고 파멸될 뿐입니다.

 

0. 어떤 사람은, 자기는 하나님의 실패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실패작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실패작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찌 실패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 뿐 아니라, 만물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실패작은 없습니다. 개미새끼 한마리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볼때는 내가 하나님의 실패작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나는 나대로 완전한 하나님의 성공작인 것입니다. 갈매기는 갈매기대로 성공작이요, 비둘기는 비둘기대로 성공작입니다. 바닷가에 나가 보면 갈매기와 비둘기가 섞여 있는데 갈매기는 날씬하고 비둘기는 촌스럽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갈매기는 성공작이고 비둘기는 실패작입니까? 아닙니다. 다 성공작입니다. 갈매기는 갈매기대로, 비둘기는 비둘기대로 성공작이다.

 

0. 하나님의 절대 사랑을 믿기 바랍니다. 그렇게도 사랑이 많으신 분이 그래 나에게 고통을 줄려고 일부러 실패작으로, 장애자로 만드셨겠습니까. 그렇게 만드신 이면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을 것 아닙니까. (롬11:33-36)『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깊으신뜻을 헤아려 알수 없습니다. 나를 왜 이렇게 만드셨는지. 그러나 그분의 절대 사랑만은 믿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내가 어떤 상태로 창조되었든, 그것은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임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위대한 신앙이며, 이러한 신앙에 하나님은 당신의 축복을 아끼지 않습니다.


2. 그 상태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0. 그처럼 자기의 현 상태에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모든 상태가 (장애까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면, 나도 내 모든 상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않겠습니까. (ex) 야곱은 성품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잔재주를 잘 부리는 교활한 성품이었습니다. 그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자기 성품에 많이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삶을 살려고 하는데도 자꾸 교활한 성품이 나옵니다. 그러니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러한 성품과 싸우며 하나님 앞에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합니다. 그 결과 장자의 축복을 받아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되는 큰 복을 받았습니다.

 

0. 다윗은 여러 방면에 뛰어난 왕이었지만 성서심리학 상 음란이라는 죄의 가시 때문에 괴로움을 당한 사람입니다. 죄의 가시로 인한 심령장애자였습니다. 그는 그런 죄의 가시에 넘어져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하고 하나님에게 징계를 받습니다.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이가 죽고, 자녀들 사이에 강간사건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처절한 고통을 겪습니다.「하나님이여, 나는 왜 이런 죄의 가시를 가지고 태어나 이 고생입니까!」탄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이런 죄의 가시와 싸우며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므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성군이 됩니다.

 

0.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는 소명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는 언어장애자였습니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해 말에 능치 못합니다. 지도자라면 마땅히 백성 앞에서 말을 잘 해야 하는데 대중앞에 서기만하면 벙어리처럼 입이 굳어져 말을 못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님의 소명을 거절합니다(출4:10). 그러나 그는 이로 인하여 좌절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장애 중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그대로 수용합니다. 그리고는 아론을 대언자로 세우면서까지 자기 일에 최선을 다 합니다. 결과 그는 훌륭한 하나님의 종으로 사명을 완수합니다.

 

0. 이처럼 나에게 어떤 장애나 문제가 있어도 좌절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그 중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또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임을 믿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위하여 최선을 다 한다면,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긍휼의 그릇이 되어 큰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3. 사랑하는 자, 봉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0. 나아가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봉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 주위에는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많은사람 중 나를 먼저 택하신 것은, 나로 하여금 그들을 돌아보라고 그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 중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 너무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 외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그런 아픔을 먼저 체험하게 해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싸매어주고 일으켜주어, 주께로 인도하는 귀한 그릇이 되라고 나에게 먼저 그런 아픔을 겪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아픔과 고통과 장애 등을 통하여 비로소,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G의 귀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0. (:22)『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이처럼 하나님은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마저도 오래 참으심으로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물며 영광 받기로 예비된 우리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23-24)『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우리는 영광 받기로 예비된 긍휼의 그릇입니다. 왜 긍휼의 그릇입니까? 모든 면에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쓸모없는 그릇인데도 불쌍히 여기사 써주십니다. 나와같은 불쌍한 자들을 위로하게 하시고 싸매게 하시고 일으키게 하셔서 주께로 인도하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게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의 부요함을 만천하에 알게하십니다.


△. 우리는 다 부족하고 허점 투성이입니다. 차이는 있어도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나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못났으면 못난대로, 하나님이 긍휼이 여기시는 자들을 나도 긍휼히 여겨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의 부요함을 만천하에 나타내야 하겠습니다. 긍휼의 그릇인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축복이 넘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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