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충무공 이순신의 명언들

鶴山 徐 仁 2009. 1. 18. 21:29








충무공 이순신의 명언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今臣戰船 尙有十二)
(칠천량해전 이후 충무공이 다시 통제사 재임명 교서를 받고 수군을 재정비한 결과 전선 12척에 군사 120명이 다였다. 그러자 "수군을 폐하고 육전에 참가하라"는 임금의 밀지가 떨어졌고, 충무공은 수군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조정에 강력히 건의한다.)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거이 행동하라.” (勿令妄動 靜重如山)
(1592년 5월 7일. 임진왜란 중 처음으로 출전한 옥포해전을 앞두고, 경상좌우도 수군과 육군의 패배 소식으로 긴장하고 당황한 군사들에게. 공포심과 전쟁경험 부족을 극복하고 전장에서의 여유와 냉철함을 가지라며.)

  
“싸움에 있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必生卽死 死必卽生)
(왜선 133척을 전선 12척으로 싸워야 하는 명량해전을 앞두고, 9월 15일 전투력의 절대 열세를 정신력으로 극복하기 위해, 장수들의 전투의지 분발과 '결사구국'의 각오를 나타내며.)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아무리 좌수사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나라의 물건을 마음대로 자를 수 는 없다.”
(전라 좌수사가 객사에 사람을 보내어 거문고를 만들 오동나무를 찍어 오라고 고흥지방의 만호인 이순신에게 청하자 이렇게 말하고 거절했다고 한다. )


“장부가 세상에 나서 쓰일진대, 목숨을 다해 충성 을 바칠 것이요, 만일 쓰이지 않으면 물러가 밭가는 농부가 된다 해도 또한 족할 것이다.”

 

 

1545∼1598

 

조선 중기 무신. 발포수군만호를 거쳐 건원보권관·훈련원참군 등을 지내고 사복시주부로 활약

임진왜란 발발중 1598년 노량해전에서 명나라 제독 진인(陳璘)의 수군과 연합작전을 펴던 도중 유탄에 맞아 전사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생과 인연을 끊기 1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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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KBS1 역사스페셜에서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와키자카 후손들이 매년 이순신 장군 탄생 때 온다는거....
와키자카가 이순신장군을 알게된건 한산도대첩때인데...
와키자카는 우리가 알고있는 것과는 성격이 좀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바라보는 것과 일본에서 바라보는 건 차이가 있겠지만...
아무튼 와키자카라는 장수는 전형적인 사무라이였는데 명예를 중요시 하였으며,
차를 좋아했으며, 함부로 살생하기보다는 덕을 베풀어서 적을 자기수하로 만드는
뭐랄까 그런 묘한데가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와키자카는 2천의 군사로 약 5~10만명(정확한 설은 없음.
우리역사에는 5~6만명이라고 하고 일본역사에는 8~10만이라고 함) 정도 되는
조선육군을 물리친 명장 중에 명장입니다.
그러한 명장이 듣지도 못한 장수 이순신장군에게 대패를 하였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을 겁니다.
한 예로
와키자카는 한산도대첩 이후로 충격에 6일을 굶었다고 본인이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었나 봅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내가 왜 졌는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장수 정도였을거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 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일 몇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서 나의 직무를 다할 수 있을련 지 의문이 갔다.

2천의 군사로 5만 이상의 조선군을 물리친 일본의 명장이 이렇듯 두려움에 떨 정도였으니...
이후에도 와키자카는 여러번 이순신 장군에대한 본인의 생각과
조선수군과 있었던 전투내용을 상세히 기록해 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흥미로운점은 와키자카가 쓴 내용에보면..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싶은 사람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적장이지만 와키자카도 멋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글이죠.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에 4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손들이 이순신장군 탄생일때 오는가 봅니다

 



 

 

必死卽生 必生卽死

필사즉생 필생즉사

 

죽고자하면 살것이요, 살고자하면 죽을 것이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머리가 나쁘다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 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과거에 급제했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장교로 돌았다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불의한 직속 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몸이 약하다고 고민 하지 마라

나는 평생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 일곱에 제독이 되었다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 세 번 싸워 스물 세 번 이겼다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 말라

나는 끊임 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긴 채 옥살이를 해야 했다


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라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열 두 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았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지 말라

나는 스무 살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섰다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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