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서점에 들려 작가 한승원이 쓴 『소설 원효』3부작을 사와서 읽고 있다. 원효 큰 스님이야말로 자랑스런 조상님들 중에 단연 으뜸이다. 10여년전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에 일본의 한 불교대학에서 원효 큰 스님의 저서를 교과서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고 뿌듯함을 느낀 적이 있다. 1300여년 전에 살았던 원효 선배는 항상 새롭게 시작되어지는 우리 겨레의 새벽이요 거울이다. 원효는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지 100년이 갓 지난 즈음에 배출된 인물이다.
한국에 개신교가 전래된지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아직 원효에 버금가는 신학자나 사상가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 점에 대하여 진지하게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땅에 개신교가 전래된 후 120여년 간에 크기의 규모로는 세계교회에서 10등 안에 손곱하는 교회들이 6교회나 있다. 그리고 숫적으로는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는 그렇지를 못하다. 전 세계교회에 내놓을만한 신학자나 사상가를 아직은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간에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생각을 깊이 하지를 못하고, 고민을 하지 않고 분위기에 휩쓸려 신앙생활을 한 면이 짙었던 탓이다. 그래서 신학이 깊지를 못하고 사상성이 높지를 못하였다. 이제나마 이점을 반성하고 원효 큰 스님에 버금가는 큰 목사, 큰 신학자가 배출되어질 수 있기를 도모하여야 한다. 원효 선배는 소위 말하는 유학파가 아니다. 중국으로 유학가던 길을 돌이켜 토굴 속에 앉아 혼자 내공을 기른 선배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구신학을 따라가려고만 하여서는 서구신학을 넘어서는 미래의 신학을 창출하여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원효 큰 스님의 후손들답게 깊고 넓은 학문과 통찰력을 기르려면 우리들의 내면세계로부터 시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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