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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우리 내일 거기 가보자."
"자기 괜찮겠어? 배탈 나서 몸도 안 좋은데 안동까지 잔차 타고 갔다 오겠나?"
"아니, 잔차 말고 버스 타고 갔다 오자."
"엥? 버스? 참말로?"
"그래 몸도 그렇고 자전거 타고 하루 만에 다녀오기는 힘들 테니까 이참에 버스여행도 함 해보자."
"가만있자, 그러면 아무리 하회마을이라도(잘 알고 있는 데라도) 정보는 한 번 보고 가야지. 에이, 진작 말해주지 그랬어. 그럼 미리 알아보는 건데…."
지난주 일요일(7일)엔 남편이 몸이 좋지 않아 바깥나들이 한 번 못하고 방구석에 박혀 있어야 되는 줄 알았는데, 앞날 밤 10시쯤 되어서 느닷없이 안동 하회마을에 가자고 하는 바람에 마음이 몹시 바빴어요. 또 자전거를 두고 오랜만에 시외버스를 타고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퍽 설?지요.
사실, 안동은 전통문화가 워낙 곳곳에 널린 곳이라 꼭 한 번 가보리라 마음먹었는데, 자전거로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서 늘 시간이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이참에 안동의 그 많은 문화를 모두 둘러보진 못하겠지만 한 곳이라도 살뜰하게 구경하자는 생각에 하회마을 누리집 을 찾아 들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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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뭐가?"
"게시판이 난리가 났어. 온통 불만투성이야."
누리집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게시판에 여러 페이지에 걸쳐 온통 불만이 가득한 글만 넘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실망이다.'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은 곳이다.' '하회마을, 정말 실망스럽다.' '전통마을에 민박집만 넘치고 볼거리는 하나도 없다.' '온통 상술이다.'
심지어 여기 게시판 글만 읽은 '예비 관광객'들까지도, '하회마을 관광을 포기해야겠군요'라는 글도 여럿 있었어요.
곁에 있던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어요. 마치 자기는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하기야 언제든지 여행지를 찾고 계획할 때엔 나보다 먼저 샅샅이 알아보고 난 뒤에 일러주었으니 틀림없이 이 게시판 글도 읽어봤으리라!
"이거 우리도 가서 실망만 하고 오는 거 아냐? 지금까지 우리가 가본 크고 이름난 데는 늘 실망했잖아."
"……."
남편은 또 아무 말 않다가,
"그러면 어때? 아무리 그렇더라도 우리는 옛집 하나만 봐도 사진감이 되고, 글감이 되잖아."
"하긴 그래.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얻는 게 더 많을 거야."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안고 하회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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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까지 가는 버스에는 기사 아저씨 보기에 미안할 만큼 텅 비었어요. 아저씨까지 모두 더해 겨우 일곱 사람만이 타고 있었으니까요.
"내가 가서 내 눈으로 보고 느낀 대로 기사를 쓸 거야. 게시판 글처럼 진짜 그렇게 실망할 만한지 말이야. 만약에 진짜로 그렇다면 기사로라도 알려서 잘못된 건 바로잡도록 해야지. 안 그래?"
"그런데 내 생각은 그래여. 너도 한 번 생각해봐. 내 말이 틀린 지 맞는 지."
"뭐가? …."
"우리가 전통마을 여러 군데 가 봤잖아. 의성 사촌마을, 산운마을, 군위 한밤마을, 성주 한개마을…."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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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그래. 그 사람들로 봐서는 그야말로 '사생활 침해'지. 그리고 옛날에 우리도 전통마을에 가서 초가집 한편에 LPG가스통이 있는 걸 보고 사진 베린다고 투덜거렸잖아. 따지고 보면, 거기 사는 사람들이야 오죽 불편하고 힘들겠나."
"또 상술이라고 하는데, 그건 꼭 하회마을만 그런 게 아니잖아. 거기도 관광지인데, 그 마을 사람들은 살아갈 방법이 그거밖에 없잖아. 그렇다고 나라에서 집집이 돈을 대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리고 어느 지역, 어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그곳에 손님으로 간 사람들은 어느 만큼은 돈 쓸 각오를 하고 가야 되는 거 아니겠나? 거기 가서 밥도 사먹고, 입장료도 내고, 물건도 팔아주고 해야지 그런 곳이 계속 유지가 될 거 아냐."
남편의 얘기를 듣고 보니, 어젯밤 내가 게시판 얘기를 했을 때에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던 까닭을 알겠더군요. 그야말로 전통마을이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열어놓고 다 만져보게 놔둔다면, 모르긴 몰라도 문짝 하나도 남아나지 않을 거예요. 아마 못해도 석 달에 한 번쯤은 새로 달거나 고쳐야 할 거니까요.
"하하하! 듣고 보니 그러네. 만날 문화재라고 해놓고 꾸욱 닫아놨다고 불평했는데,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도 아니네."
그랬습니다. 우리는 하회마을에 가기도 앞서 마음가짐부터 달랐습니다.
'다른 지역에 가서는 돈을 쓰고 와야 한다. 다만 너무 지나치면 안 되겠지만 적어도 얼마(?)쯤은…. 또 문화재를 모두 열어놓지 않았다고 불평하지 말자. 거기에 사는 사람들한테 기본 예의는 지키자….'
'순환버스'와 '무료승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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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시가지를 벗어나 시골 풍경을 따라 한참 달리는데, 생각대로 안동은 전통문화가 살아 있는 곳이었어요. 마을 한복판에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효자각과 열녀각이 있고, 멀리 옛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정자도 여럿 보였어요. 안동시에서 구호로 내건 '한국 정신문화의 도시'라는 글귀가 온몸으로 느껴졌답니다.
하회마을에 닿자 사람들이 모두 내리는데, 우리는 '병산서원'부터 보고 오려고 그대로 있었지요. 다행히 서원 앞에서 버스가 20분 동안 기다린다고 해서 그동안 구석구석 둘러보고 사진도 찍었어요.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기본이 한 시간은 후딱 지나가는데, 차 시간 때문에 바삐 돌아보려니 마음이 매우 바빴답니다. 마음 같아서는 버스를 보내고 느긋하게 둘러보고 걸어서 아름다운 낙동강 풍경을 보면서 돌아오고 싶었지만, 이다음에 자전거 타고 다시 오자고 하면서 버스 시간에 맞춰서 구경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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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진을 찍으면서 가려고 일부러 버스를 타지 않고 걸었어요. 마침 경주에서 답사를 나온 '나원초등학교' 아람단과 걸스카우트 학생들이 줄을 지어 걸어오는데, 아이들 모습이 한껏 밝고 명랑합니다.
마을을 가운데 두고 낙동강 물줄기를 휘감아 돈다 하여 '하회마을', 이곳 풍경은 어느 것 하나도 놓치기가 아까워요. 어느새 마을 안까지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짧았어요.
"아아, 이래서 그랬구나! 마을 안까지 이어주는 '순환버스' 삯이 천 원이면 비싸긴 비싸다. 자기 차 타고 오는 사람들은 더하겠네. 입장료에, 주차장비 내야하고 또 이 버스 삯까지 내야 하니까."
"그래, 그렇긴 하다. 그렇다고 꼭 버스 타고 들어올 까닭은 없잖아. 이럴 때 풍경도 구경하고 걷는 것도 얼마나 좋은데."
"맞아. 게다가 우리처럼 안동에서 버스 타고 들어온 사람한텐 버스 삯도 받지 않으니 이래저래 이런 데 오려면 대중교통이 얼마나 좋아?"
"어쨌거나 난 잘한다고 봐. 사실 차가 마을 안까지 들어오면 온통 방해가 될 테니까, 요즘 사람들 길만 나 있으면 덮어놓고 안까지 들어오잖아. 그 몇 걸음 걷는 거 귀찮다고."
볼거리? 이만하면 됐지!
걸어오는 내내 풍경이 아름다워 무척 좋았는데, 마을 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입이 떡 벌어졌어요. 마치 우리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조선시대 어느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온통 옛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네요.
"아니, 이게 볼거리가 없다고? 이만하면 됐지. 이런 구경을 어디서 또 할 수 있겠어?"
어젯밤 게시판을 보며 '혹시나'가 '역시나'가 될까 봐 조금은 걱정했는데 이런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또 여기에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신이 나고 기쁜지 몰라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하나라도 놓칠세라 사진에 담기 바빴어요.
기와집과 초가집이 한데 어울려 그 옛날 대갓집 대감님도 되었다가, 초가집 마당에선 농사짓는 농사꾼도 되었다가 나도 모르게 시간과 세월을 넘나들며 하회마을과 하나가 되어 있었어요. 가끔 골목 한 귀퉁이에 이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음료 자판기가 서 있긴 했어도 아무렇지 않았어요. 만일, 더운 여름날 여기에 왔다면, 이 너른 마을을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도리어 '자판기도 하나 없냐?'면서 투덜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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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만든 낮은 담벼락엔 다른 곳과 달리, 기왓장을 드문드문 끼워서 만든 게 퍽 남달랐어요. 또 집집이 초가 지붕은 올해 새로 얹은 듯, 노란 볏짚으로 단장해놓았네요. 굽이굽이 골목길을 돌며 샅샅이 재미나게 구경하는데, 마침 사람들이 지붕위에 올라가 새로 볏짚을 올리고 덮는 게 보여서 일하는 아저씨한테 물으니, 한 해에 한 번씩 이렇게 지붕을 새로 얹는다고 합니다.
또, 조선 명종 때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입암 류중영'과 그 아들이 살았다는 '양진당'(보물제306호)은 새로 고쳐 짓느라고 많은 사람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어요.
"그래, 전통마을도 이렇게 고쳐 짓고 하려면 다 돈이 드는 일인데, 우리가 내는 입장료나 여기서 쓰는 돈을 아까워하면 안 되겠지."
구경하는데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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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여기까지 와서 고작 저거 타고 한 바퀴 휙 둘러보고 간단 말이야?"
"그러게. 마차 타는 재미로 하회마을 온 건가?"
"하이고, 사람들이 저렇게 겉핥기만 하고 가니까 여기서 돈 쓴 게 아깝다고 하지. 저렇게 구경하면 아무리 볼거리가 많고 잘해놓은들 기억에 남겠나?"
참말 그랬어요. 우리가 이 마을에 들어온 지 3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둘러보지 못한 곳이 몇 군데 남아 있고, 하회마을 안내장에도 마을 구경하는 코스에 따라 적게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 걸린다고 적어놨던데, 저렇게 골목만 한 바퀴 돌아나가려면 뭣 하러 돈 들여 예까지 왔을까 싶었어요. 그러고 보니, 많은 이들이 그저 한 바퀴 돌아만 보고 가는 듯했어요.
"이거 우리가 잘못된 걸까?"
"요즘 사람들이 다 그래여. 아무리 그래도 구석구석 꼼꼼하게 둘러보고, 안내판도 한 번씩 읽어보면서 그렇게 구경하면 좋잖아. 난 이런 데 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던데 딴사람들은 안 그런갑다."
언젠가 잘 아는 이와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먼 곳에서 일부러 구경하러 온 사람이 어찌나 빨리 다니는지 함께 따라다니기가 버거울 만큼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그도 우리처럼 사진을 찍으면서 구석구석 다니는 것 같은데도 휙휙~ 스치듯 보고 가는 게 우리와는 무척 다르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지요.
여기 와서 보니, 많은 이들이 그랬어요. 어디에서든지 이런 볼거리가 있는 곳에는 꼼꼼하게 구경하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랬다면, 아마도 먼 뒷날에라도 이때를 떠올리면 틀림없이 좋은 추억이 될 테니까요.
하회마을에 바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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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보는 이들이 어떤 눈길로 보느냐에 따라서 생각이 많이 바뀔 거예요. '전통마을'이라고 하니까 오로지 옛것만 고스란히 남아 있기를 바라고 왔다면 그것도 잘못된 생각이 아닐까요? 또 옛것과 어울리지 않게 민박집이나 음료 자판기가 있다고 나무라서도 안 될 거예요. 이곳에 사는 이들은 바로 여기가 삶터이고, 살아가자면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조금만 너른 눈길로 봐 준다면 더욱 좋겠지요.
또, 이런 곳에 와서 쓰는 돈을 너무 아깝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터무니없이 아무것도 없는데, 돈만 많이 들었다고 한다면 문제이겠지만 우리가 가보고 느낀 바로는 쓴 돈이 아까울 만큼 값어치가 없는 곳이 아니었거든요. 아마도 구석구석 꼼꼼하게 제대로 구경을 했다면 틀림없이 '돈값'을 했다고 여길 테니까요.
끝으로 '하회마을보존회'에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되살려 잘 가꾸고 보존하는 모습은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답니다. '세계문화유산'에 오르기를 바라며 12월에 신청한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이렇게 멋진 곳, 선조들의 삶과 얼이 그대로 스민 하회마을이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이 즐겁게 찾아오는 곳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손수 가서 보고 느낀 바로는 몇 가지는 고치거나 바로잡았으면 좋겠더군요. 솔직히 순환버스 삯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어른 한 사람이 1000원씩 내야 한다는 건 값에 견줘 거리가 너무 짧더군요. 많은 이들이 마을 안까지 꽤 멀 것처럼 여겨 탔는데, 생각보다 짧은 거리에 당황하는 이들을 많이 봤습니다. 차라리 입장료를 조금 더 올려서라도 버스를 그저 태워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요.
또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듣기 좋은 소리뿐 아니라, 쓴소리에도 늘 귀를 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게시판에 온통 불만투성이인 소리가 넘치는데도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거나 또는 덮어놓고 글쓴이를 탓하는 글로는 하회마을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아무튼 안동 첫 나들이, 하회마을은 무척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너른 마을 구석구석 옛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나그네 발길을 오랫동안 머무르게 하였지요. 이 마을을 늘 가꾸고 애쓰는 흔적도 많이 봤고요. 서로서로 조금씩 이해하고 너른 눈길로 즐겁게 구경하였다면 누구나 멋진 추억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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