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文學산책 마당

[스크랩] 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鶴山 徐 仁 2008. 11. 4. 20:37

 

 

 

  

      

     

     


    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 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출처 : 해바라기 연가
글쓴이 : 킬리만자로표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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