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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 文化參考

"대마도도 원래 우리 땅"

鶴山 徐 仁 2008. 7. 17. 19:23
 
정치권에서 독도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대마도(對馬島) 영유권을 주장하자"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은 16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독도문제가 터질 때마다) 우리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똑같은 대응으로 가는 것이 안타깝다. 대마도도 우리 땅이라고 대응해 나가는 것이 역사의 흐름에 보면 의미 있는 주장"이라고 했다.

실제 대마도가 오래 전 우리 땅이었다는 기록은 사료에 많이 등장한다. '세종실록' 1419년(세종 1년) 7월 17일조에는 "대마도라는 섬은 경상도의 계림에 예속했으니, 본래 우리 나라 땅이란 것이 문적에 실려 있어 분명히 상고할 수가 있다(對馬爲島, 隷於慶尙道之�林, 本是我國之地, 載在文籍, 昭然可考)"는 상왕 태종(太宗)의 말을 기록하고 있다. 태종은 이어 "다만 그 땅이 매우 작고 바다 가운데 있어서 왕래함이 막혀 백성이 살지 않았는데, 왜인(倭人) 중 그 나라에서 쫓겨나 갈 곳 없는 자들이 소굴을 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책 1444년(세종 26년) 4월 30일조에는 "대마도는 본래 조선의 목마지(牧馬地)"라는 기록이 등장하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만든 '팔도총도' 등 많은 지도들에도 대마도는 조선 영토로 표시돼 있다. 고려시대부터 대마도 영주였던 종씨(宗氏)는 한·일 양국 사이에서 중계 무역의 이득을 취하면서 왜구의 본거지를 이루기도 했다.
조선은 1419년(세종 1년) 1만7000명의 군사로 대마도를 정벌한 뒤 영토로 편입하거나 직접 세금을 거두는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으나 이곳이 경상도에 예속된 속방(屬邦)이라는 의식을 계속 지니고 있었다. 15세기에 대마도는 계속 조선에 조공을 바쳤고, 16세기까지도 대마도주는 정기적으로 조선 국왕을 알현하는 사신을 보내 조선으로부터 관직을 임명 받았다. 일본이 정식으로 대마도를 직할지로 편입한 것은 19세기 후반 메이지(明治) 정부 때의 일이었다. 손승철 강원대 사학과 교수는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내놓는 근거보다 대마도가 우리 땅이었다는 역사적 증거가 훨씬 풍부하다"고 했다.
▲ 대마도를 조선 영토로 표시한 1592년 일본의‘조선국지리도’중‘팔도총도’. 현존하는 지도는 1872년 재모사한 것이다. 지리적 개념이 부족해 독도(우산도)가 울릉도의 서쪽에 그려졌지만 명백한 조선 영토로 돼 있다. /조선일보 DB
입력 : 2008.07.17 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