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軍事 資料 綜合

그녀의 위대한 도전 [ 上 ]

鶴山 徐 仁 2008. 3. 25. 09:55

august 의 軍史世界

 

그녀의 위대한 도전 [ 上 ]

 

 

 

또 하나의 이정표

 

보스토크 Vostok 5호가 발사되고 2일후인 1963년 6월 16일,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놀 우주기지에서 시리즈의 마지막 위성인 보스토크 6호가 굉음을 내며 발사되어 성공적으로 지구궤도에 진입합니다.  이로써 미국과의 피 말리는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던 소련은 우주개발 분야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를 기록합니다.

 

1-1.jpg

[ 인류 최초의 유인우주선이었던 Vostok 모형 ]

 

이 우주선은 테레슈코바 ( Valentina Vladimirovna Tereshkova  1937 ~  ) 라는 여성이 조종하였는데, 그녀가 바로 인류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였습니다.  거기에 더불어 그녀는 최초의 민간인 우주 비행사라는 금자탑도 새겼는데 그녀 이전에 우주에 다녀온 소련과 미국의 비행사는 모두 군인 신분이었습니다.

 

1-2.jpg

[ 최초의 여성이자 민간인 우주비행사 테레슈코바 ]

 

그녀는 먼저 궤도에 진입하였던 보스토크 5호와 우주공간에서 위성간의 통신 및 정보공유 등과 관련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등 약 3일간에 걸쳐 지구궤도를 48회 돌고 무사히 귀환함으로써 소련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우주 체공 기록은 당시까지 미국의 모든 유인 우주비행 시간을 합친 것 보다 많았을 정도로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1-3.jpg

[ 보스토크 6호에 탑승하여 발사대기 중인 모습 ]

 

그런데 그녀의 우주비행과 관련하여 이후 밝혀진 사실이 있는데 여성이 우주에서 겪게 될 신체반응에 대한 과학적 자료를 얻기 위한 목적이 컸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구를 주도한 사람은 이전의 에피소드에서 수차례 언급한 소련 우주 개발의 아버지 코롤레프 ( Sergey Pavlovich Korolyov 1907 ~1966 ) 였는데 그는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어떻게든 이를 활용하려 노력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1-4.jpg

[ 테레슈코바와 함께한 우주과학의 아버지 코롤레프 ]

 

코롤레프는 언젠가 인간들이 우주에 영구히 살게 될 날이 오리라고 생각하던 미래학자이기도 하였습니다.  우주에서 사람이 살고 후손을 번식하려면 당연히 여성들도 우주에서 생활하여야 하는 점이 전제되어야 했는데 여성이 우주로 나갔을 때에 생리적인 변화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는 궁금하였습니다.

 

1-5.jpg

[ 지상훈련 중인 테레슈코바 ]

 

우주 개발 초기인 당시에 이런 연구만을 위해 체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을 우주로 보내는 것은 당연히 정책 입안자들의 반대를 받기 쉬웠습니다.  이제 막 인간이 지구궤도를 돌고 귀환하는 초기 유인 우주비행 실험이 시도되고 있는 중이었는데 코롤레프의 이러한 생각은 누가 봐도 시대를 앞서가도 너무 앞서갔기 때문이었습니다.

 

1-6.jpg

[ 발사체 결합직전 페어링으로 보호된 보스토크 캡슐 ]

 

하지만 스탈린시대 대숙청을 당하여 수용소에서 고통의 시기를 경험하였던 코롤레프는 자신에게 항상 좋은 기회만 찾아온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영웅칭호를 듣지만 내일은 인민의 적이 되어 처단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는 항상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어려서부터 꿈을 키워온 그는 아무리 우주개발 초기라 하더라도 한번 찾아온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1-7.jpg

코롤레프는 어렵게 찾아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대한 이용할 줄 알았던 인물이었습니다

( 그가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낙점한 가가린 ) ]

 

우주개발에는 막대한 국력이 소요되는 관계로 권력지도부의 용단이 없으면 차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힘든 사실을 너무나 잘 알던 그는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역이용합니다.  즉 권력층에게 자신에게 연구기회를 줄 수 있는 충분한 명분과 동기를 유발시켜야 했는데 다행히도 우주개발은 체제 선전을 위한 훌륭한 도구가 되었는데 그 핵심은 바로 냉전이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