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강천석 칼럼]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 CEO' 차이

鶴山 徐 仁 2008. 2. 29. 23:31

27일 통일부 장관 후보와 환경부 장관 후보가 사퇴했다. 24일 물러난 여성부 장관 후보까지 합하면 벌써 3명의 장관 후보가 인사청문회장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채 거꾸러졌다.


 

 두 장관 후보가 이렇게 굴러 떨어진 다음날 청와대는 새 국정원장을 공식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점 찍어 뒀다는 소문과 함께 오래 전부터 하마평(下馬評)에 오르내리던 인사다. 정보원장·법무장관·검찰총장·청와대 민정수석·경찰청장 등 나라의 정보·사정기관의 장(長) 모두가 영남 출신 일색이라는 논란에 휘말릴까봐 잠시 뒷전으로 물러나나 싶더니 ‘사람 본위(本位)’ ‘능력 본위’라는 명분을 딛고 되살아난 모양이다. 속이야 어떻든 겉으론 안배를 내세웠던 역대 정권에선 좀체 못보던 일이다. ‘사람 본위’ ‘능력 본위’라는 대통령의 인사 기준이 ‘알고 지내온 고향 선배 하나가 관청 도장 열개 보다 낫다(十個公章 不如一個老鄕)’고 굳게 믿고 있고, 실제 어느 정도는 그렇기도 한 국민정서와 이 나라 현실에 부딪쳐 무슨 장대비를 뿌릴지는 두고 볼 일이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사에도 여러 뒷말이 따랐다. 그때도 기준은 ‘사람 본위’ ‘능력 본위’였다. 사실 듣기 따라선 ‘아는 사람 골랐다’는 말보다 더 거북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다. ‘사람 됨됨이를 재고, 능력을 달아봤더니 그쪽 출신들밖에 없더라’는 뜻으로도 들리기 때문이다. 집권당 안에서조차 인사에 대해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오자 ‘대부분의 인재(人材)가 지난 10년 사이 좌파 정권에 가담해버려 인재 풀(POOL)이 말라버렸다’는 해명도 나왔다고 한다. 이 역시 엉뚱한 사람들을 괜히 좌파 정권 가담자로 몰아서 듣게 될 원성(怨聲)은 헤아리지 못한 발언이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은 여기 더해 ‘매년 7%씩 경제를 성장시켜 10년 내에 국민소득 4만달러에 도달해 세계 7위의 경제 대국을 이룩한다’는 이른바 ‘747 점보 선거 공약’도 실현해야 한다. 이 어려운 일을 해내려면 국민 마음에 ‘해보겠다’는 의욕의 불길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만들고, ‘견뎌내겠다’는 국민의 인내심을 키울 수 있을 만큼 키워야 한다. 탕평(蕩平) 인사는 계층ㆍ지연ㆍ학연ㆍ종교연(緣)등 갖가지 인연(因緣)의 그물이 국민들의 생각과 행동을 뿔뿔이 흩어 놓게 하는 사태를 미리 막아줄 수 있는 울타리다. 그 울타리를 이렇게 허물어버리고선 무슨 얼굴로 ‘손에 손잡고’를 합창하자고 할는지 궁금하다.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나는 기업체 사장·회장, 국회의원, 서울시장을 거치며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과거에 거쳤던 이런 자리와 대통령 자리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대통령에게는 언뜻 비효율적인 듯 보이지만 효율을 높이기 위해선 절대로 빠뜨려서는 안될 것을 짚을 줄 아는 ‘정치 본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내각의 알토란 자리는 국무·재무·국방장관 세 자리다. 60년 미국에 ‘뉴 프런티어(New Frontier)’라는 신천지를 열겠다고 약속했던 민주당 출신 케네디 대통령은 본인 스스로가 사실상의 국무장관으로서 미·소 대결을 진두에서 지휘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무장관에는 사람 좋은 딘 러스크를 앉히고 재무장관은 공화당원으로 월가(街) 재벌인 더글러스 딜런에게, 국방장관 역시 공화당원으로 포드자동차 사장이던 로버트 맥나마라에게 내주었다. ‘뉴 프런티어호(號)’가 이륙(離陸)할 때의 엔진 잡음을 줄이고 역풍(逆風)을 최소화(最小化)하려면 반대 세력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겠다는 것을 느낀 ‘정치 본능’의 표현이었다.


 대통령은 서울시장 때 ‘CEO 시절에 기업 오너(owner)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려고 하면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여러 사람이 모인 회의에선 잠자코 듣고 있다가 회의가 끝나면 혼자 찾아가 문제점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그러면 오너가 100%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상사(上司)의 체면을 살리면서도 회사가 잘되게 할 방법을 찾았다는 말이다.


 지금 대통령 아래 회의가 끝난 뒤 상사의 방문을 조용히 다시 두드렸던 CEO 시절의 이명박 같은 인물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 대통령이 부하의 옳은 지적에는 언제든지 생각을 바꿀 줄 알던 그때 그 상사의 유연한 마음가짐을 지녔더라면 또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어제 오늘과 같은 사태는 빚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28/20080228015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