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想像나래 마당

[1901년 11월 27일] 노벨상 제정

鶴山 徐 仁 2007. 11. 27. 15:38

노벨상이 1901년 11월 27일 제정됐다. 노벨상이 제정된 후 12월 10일 오후 4시 30분, 스웨덴 스톡홀름에선 제1회 노벨상 시상식이 열렸다. 창시자 알프레드 노벨의 5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물리학상 뢴트겐(독일), 화학상 호프(네덜란드), 생리·의학상 베링(독일), 문학상 프뤼돔(프랑스), 평화상 앙리 뒤낭(스위스). 각 수상자들에게는 각각 메달과 함께 4만3000달러의 상금이 수여됐다. 지금은 상금 5천만엔 짜리 교토상 같은 것도 있긴 하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인 액수였다.

 

그러나 뜻밖에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우선 시상자인 오스카르 2세 스웨덴 국왕이 시상식 참석을 거절했다. "이처럼 막대한 상금이 외국인들에게 빠져나가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이유에서였다. 스웨덴 학계는 "국내 연구비도 없는 판에…"라며 심사 자체를 거부했다.

 

노벨상의 가장 큰 역설은, 물론 폭약으로 번 돈이 인류평화를 위해 쓰인다는 그 드라마틱한 전변이다. 또 하나는 처음엔 가족과 조국으로부터도 외면당했다는 것. 그러나 만약 노벨이 `국적 불문` 조건을 달지 않았다면 노벨상은 스칸디나비아 조그만 나라의 집안 잔치로만 끝났으리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니트로글리세린과 검은 폭약을 혼합한 다이너마이트를 포함, 평생 355개의 특허를 획득한 이 거부가 노벨상을 구상한 것은 55세 때인 1888년, 형 루드비히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잘못 안 프랑스 한 신문이 `죽음의 상인 알프레드 노벨`이란 제목으로 오보한 데 충격을 받으면서였다.

 

 

http://srchdb2.chosun.com/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