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일주일 째 학교에 나와 책을 버리고 있다.
내가 연구실 앞 복도에 내어 놓은 책들은 순식간에 없어져 버린다. 지독한 독서광임을 자처하는 문학관 경비 아저씨 한 분이 있어서 책을 골라서 거두어 가고,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복도가 지저분해진다고 책들을 치워 버린다.
근 28년간 몸 담았던 이 학교가, 7월 10일부터 새 교지로 이사를 가기로 되어 있다. 한남동 4만 여평 부지에서, 수지에 위치한 30 여만평으로 이사를 간다고 한다.
나는 이 학교에서 거의 일생을 산 셈이다. 싫든 좋든 나는 이 학교와 운명을 같이 하였다.
다른 선생들도 이사 준비를 하는지는 몰라도 나는 두어달 전부터 조금씩 이사 준비를 하였다.
나는 내 사무실의 구석 구석에 박혀 있던 전기 히타를 네 대나 버렸고, 세 대의 워드 프로세서와, 고물 컴퓨터 세 대를 버렸다.
아들놈이 방학이라 미국에서 귀국했길레 그 녀석을 불러다 일을 시켰다. 손 재주가 좋은 녀석은 기계들을 잘도 분해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남겼다.
학교에서 선정한 이삿짐센타에서 기사들이 와서 나의 연구실 책을 약 200 박스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많아야 백 박스 안팎이라는 것이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이 많은 책 더미를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집으로는 더 들려놓을 수가 없다. 좁은 아파트 공간에는 벌써 빈 데가 없다.
도서관으로 가져 가려 해도, 희귀본이 아니면 접수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생을 거쳐 모아온, 그리고 증정 받아온 책들을 버려야만 한단 말인가.
나는 연구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쌓여진 책 한권 한 권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어떤 책을 추려서 버려야 하는가.
책마다 추억이 서려있고, 나름대로의 애착이 갔다.
그러나 이제는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 학교 교지 이전에 대비해야 하기도 하지만, 이제 2년여 앞으로 다가온 정년에도 대비해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아깝지만 버릴 책을 추려내야만 했다. 며칠을 그러고 나니 허리가 빠질 것만 같았다.
이 작업을 나는 나 혼자서만 했다. 조교와 학생들을 부를 수가 없었다. 책을 버리는 선생의 모습이 그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남들이 죽어라 집필하여 힘들게 출간하여 엄선해서 부쳐준 책들, 내가 차마 그것을 어떻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이 책들을 어디에든 간수할 도리가 없었다. 출간된지 오래된 책부터, 저자가 고인이 된 책부터 버릴 수밖에 없었다.
뜻밖으로 저자가 고인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 30년 세월은 인간에게 결코 적은 것이 아님을 실감했다.
남들도 내가 증정한 책들을 이런 식으로 버릴 것이다.
어느 날 오후 늦게 퇴근을 하다가, 나는 그 간 내가 내어놓은 책들이 학교 쓰레기 하지장의 구석지에 버려져 있고, 그 위로 빗줄기가 세차게 뿌려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비가 쏟아지니 청소차가 미쳐 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 내가 저 책을 왜 버렸단 말인가. 죽더라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을...나는 탄성이 일었다.
제행은 무상이라고 하지 않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없어지지 않는 것은 없다.책도 결국 없이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열심히 소설을 쓰고 시를 써도, 문학사 속에서 살아남는 작품은 결국 백년 당 서너권에 불과하다.
내가 버리지 않더라도 그 책들은 스스로 시간 밖으로 내 육신과함께 스스로 버려지는 것이다.
비가 오는 계절에 책을 버려서일까, 이 무더운 날들에 책을 버려서일까, 내 몸의 한 부분이 해체되는 것같은 감각에 오래 오래 빠지는 듯하다.
이 세상에 없어지지 않는 것이 도무지 없다면, 그렇게도 열성스럽게 살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제행 무상임을 밤낮으로 외치면서도 우리는 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을 부처는 무명이라 하지 않았나.
이 무명을 걷고 저 지혜의 광명을 잠시라도 볼 수 있는 여유와 명석함이 아쉽다.
내가 연구실 앞 복도에 내어 놓은 책들은 순식간에 없어져 버린다. 지독한 독서광임을 자처하는 문학관 경비 아저씨 한 분이 있어서 책을 골라서 거두어 가고,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복도가 지저분해진다고 책들을 치워 버린다.
근 28년간 몸 담았던 이 학교가, 7월 10일부터 새 교지로 이사를 가기로 되어 있다. 한남동 4만 여평 부지에서, 수지에 위치한 30 여만평으로 이사를 간다고 한다.
나는 이 학교에서 거의 일생을 산 셈이다. 싫든 좋든 나는 이 학교와 운명을 같이 하였다.
다른 선생들도 이사 준비를 하는지는 몰라도 나는 두어달 전부터 조금씩 이사 준비를 하였다.
나는 내 사무실의 구석 구석에 박혀 있던 전기 히타를 네 대나 버렸고, 세 대의 워드 프로세서와, 고물 컴퓨터 세 대를 버렸다.
아들놈이 방학이라 미국에서 귀국했길레 그 녀석을 불러다 일을 시켰다. 손 재주가 좋은 녀석은 기계들을 잘도 분해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남겼다.
학교에서 선정한 이삿짐센타에서 기사들이 와서 나의 연구실 책을 약 200 박스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많아야 백 박스 안팎이라는 것이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이 많은 책 더미를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집으로는 더 들려놓을 수가 없다. 좁은 아파트 공간에는 벌써 빈 데가 없다.
도서관으로 가져 가려 해도, 희귀본이 아니면 접수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생을 거쳐 모아온, 그리고 증정 받아온 책들을 버려야만 한단 말인가.
나는 연구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쌓여진 책 한권 한 권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어떤 책을 추려서 버려야 하는가.
책마다 추억이 서려있고, 나름대로의 애착이 갔다.
그러나 이제는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 학교 교지 이전에 대비해야 하기도 하지만, 이제 2년여 앞으로 다가온 정년에도 대비해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아깝지만 버릴 책을 추려내야만 했다. 며칠을 그러고 나니 허리가 빠질 것만 같았다.
이 작업을 나는 나 혼자서만 했다. 조교와 학생들을 부를 수가 없었다. 책을 버리는 선생의 모습이 그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남들이 죽어라 집필하여 힘들게 출간하여 엄선해서 부쳐준 책들, 내가 차마 그것을 어떻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이 책들을 어디에든 간수할 도리가 없었다. 출간된지 오래된 책부터, 저자가 고인이 된 책부터 버릴 수밖에 없었다.
뜻밖으로 저자가 고인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 30년 세월은 인간에게 결코 적은 것이 아님을 실감했다.
남들도 내가 증정한 책들을 이런 식으로 버릴 것이다.
어느 날 오후 늦게 퇴근을 하다가, 나는 그 간 내가 내어놓은 책들이 학교 쓰레기 하지장의 구석지에 버려져 있고, 그 위로 빗줄기가 세차게 뿌려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비가 쏟아지니 청소차가 미쳐 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 내가 저 책을 왜 버렸단 말인가. 죽더라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을...나는 탄성이 일었다.
제행은 무상이라고 하지 않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없어지지 않는 것은 없다.책도 결국 없이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열심히 소설을 쓰고 시를 써도, 문학사 속에서 살아남는 작품은 결국 백년 당 서너권에 불과하다.
내가 버리지 않더라도 그 책들은 스스로 시간 밖으로 내 육신과함께 스스로 버려지는 것이다.
비가 오는 계절에 책을 버려서일까, 이 무더운 날들에 책을 버려서일까, 내 몸의 한 부분이 해체되는 것같은 감각에 오래 오래 빠지는 듯하다.
이 세상에 없어지지 않는 것이 도무지 없다면, 그렇게도 열성스럽게 살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제행 무상임을 밤낮으로 외치면서도 우리는 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을 부처는 무명이라 하지 않았나.
이 무명을 걷고 저 지혜의 광명을 잠시라도 볼 수 있는 여유와 명석함이 아쉽다.
출처 : 경대사대 부중고1215회 재경동기회
글쓴이 : 정소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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