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핌 베어벡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29일 서귀포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중동의 전통 강호 이라크와 평가전에서 후반 염기훈, 이천수, 이근호의 연속골에 힘입어 3-0으로 대승했다.
아시안컵 본선 상대 사우디 아라비아, 바레인을 가상한 첫 모의고사에서 화끈한 화력쇼를 펼쳐 자신감을 드높인 한 판이었다.
또 프리미어리거 3인방과 김남일이 빠져 전력 공백을 우려했던 한국 축구는 K-리그에서 발굴해낸 염기훈, 이근호 등 젊은 대체 자원의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했다.
베어벡호는 지난 2월 그리스전 1-0 승리 이후 넉 달여 만에 승리를 맛봤고, 출범 이후 4승2무4패로 승패 균형을 맞췄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84위 진출국 이라크와 역대 전적에서 5승9무2패로 확실한 우위를 점했고, 작년 연말 도하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이라크에 당한 0-1 패배의 빚도 깨끗하게 갚았다.
베어벡 감독은 이동국을 1년3개월 만에 A매치 선발로 내세우고 염기훈, 최성국을 좌우 날개로 배치했다.
중원에는 성남 트리오 김두현, 김상식, 손대호가 삼각형으로 포진했고 포백은 김치우, 김진규, 김치곤, 오범석으로 짰다.
이라크는 카타르리그 득점왕 유네스 칼레프를 전방에 놓고 역습을 노렸다.
전반엔 단 한 번 역습 위기를 빼면 상대를 완전히 압도했다. 하지만 고질적인 결정력 부족이 아쉬웠다.
4분 이동국의 발리슛으로 포문을 연 한국은 슈팅 세례를 퍼부었다.
최성국은 18분 2선으로 물러선 이동국의 로빙 스루패스를 터치슛으로 연결했고 2분 뒤 가슴 트래핑에 이어진 왼발 터닝슛을 때렸다.
골키퍼 누르 압바스의 다이빙에 연달아 막혔지만 골이 될 뻔한 상황.
이동국은 주특기인 터닝 발리슛으로 기회를 넘보더니 25분 김상식의 스루패스를 받아 문전 오른쪽에서 회심의 슈팅을 날렸다. 이번에도 골키퍼 선방.
전반 종료 직전엔 코너킥 세트플레이에서 김상식이 돌고래 점프 헤딩슛을 시도했다.
수비 조직력의 불안 요소도 노출됐다.
전반 32분 이라크의 역습에 포백 라인이 무너지면서 하와르 타헤르에게 결정적인 한 방을 얻어맞을 뻔 했다.
이운재 대신 골문을 지킨 김용대의 선방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45분을 뛴 이동국을 빼고 후반 베테랑 장신 공격수 우성용을 투입한 태극호는 좌우 측면 크로스에 이어진 고공전을 펼쳤다.
선제골은 오른쪽 돌파에서 나왔고 주인공은 아시안게임의 한을 품은 ‘왼발 스페셜리스트’ 염기훈이었다.
윙백 오범석이 측면을 파고들어 어렵게 크로스를 올렸고 수비수에 스치고 문전으로 올라온 볼을 골키퍼 압바스가 손으로 쳐냈다.
그러나 볼은 골문 왼쪽으로 파고든 염기훈의 가슴팍으로 굴러 올라왔다.
문전에 너무 가깝게 붙어 각이 없었던 염기훈은 교체 수비수 마디 아질을 앞에 둔 채 장기인 왼발로 반대쪽 골포스트를 겨냥했다. 인사이드에 가볍게 맞은 슈팅은 오른쪽 골 포스트에 맞고 그대로 네트를 휘감았다.
후반 중반 공격형 미드필더 김두현을 빼고 이천수를 투입한 베어벡호는 또 한 번 아찔한 역습을 당했다.
수비 라인이 흔들리자 칼레프가 페널티지역 오른쪽으로 공간을 열어줬고 나샤트 알리의 슛은 네트로 빨려들었으나 방어막을 편 김용대의 손끝에 맞고 겨우 골문을 벗어났다.
후반 중반 이후 그동안 결정력을 고민해온 베어벡 감독의 주름을 확 펴는 골 폭죽이 잇따라 터졌다.
대량득점의 물꼬를 튼 해결사는 이천수였다.
목이 좋지 않아 ‘조커’로 그라운드에 나선 이천수는 후반 34분 오범석의 크로스가 오른쪽에서 다시 올라오자 문전으로 쇄도하며 컴퓨터 헤딩슛으로 골문 오른쪽 상단을 꿰뚫었다.
후반 41분 이근호의 쐐기골도 이천수의 돌파에서 시작됐다.
이천수는 왼쪽 측면을 완전히 허물고 수비진을 무너뜨린 뒤 엔드라인에서 공간이 열려있던 이근호에게 패스를 내줬다.
A매치 데뷔전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담한 플레이를 펼치던 이근호는 빨랫줄 같은 왼발 논스톱 슛으로 이미 허물어진 이라크의 골문을 뚫었다.
5년 만에 열린 A매치에 몰려든 3만2천여 제주 팬들은 태극호의 골 퍼레이드에 원없이 환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