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군의 충돌
맥아더 UN 군 총사령관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던 알몬드 ( Edward Mallory Almond 1892 ~ 1979 ) 미 10군단장은 전쟁의 조기종결을 위하여 예하부대의 쾌속 진격을 독려합니다. 그것은 상관인 맥아더의 의중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기도 하였지만 서부전선에서 압록강을 향하여 진군중인 미 8군 사령관 워커 ( Walton Harris Walker 1889 ~ 1950 ) 와의 보이지 않는 경쟁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맥아더는 워커와 알몬드를 경쟁시켜 북진을 독려합니다 ]
알몬드가 지휘하는 미 10군단은 인천상륙 작전 때부터 함께 활약해온 미 해병 1사단과 미 7사단 그리고 미 8군 사령관 워커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미 10군단으로 배속이 결정되어 한반도로 이동 중에 있던 미 3사단 그리고 한국군 수도사단, 3사단 등 여러 예하부대로 구성되었습니다. 그 중 10군단의 주력이자 선봉은 단연코 미 해병 1사단이었습니다.
[ 인천상륙작전의 선봉이었던 미 해병 1사단 ]
그런데 문제는 선봉부대인 미 해병 1사단의 지휘관 스미스 ( Oliver Prince Smith 1893 ~ 1977 ) 가 상관인 10군단장 알몬드와 사사건건 대립을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작전의 수립부터 시행과정에 이르기까지 끓임 없이 충돌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대립의 이유는 한마디로 육군과 해병대라는 이질적인 두 집단의 문화차이로 요약 될 수 있었습니다.
[ 스미스 미 해병 1사단장 ]
알몬드는 버지니아 군사학교 Virginia Military Institute 를 졸업 후 1, 2차대전을 모두 섭렵한 경력을 가진 풍부한 경험의 지휘관이었습니다. 비록 한국전 당시에는 맥아더의 지휘 하에 있었지만 제2차 대전당시 유럽전선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이었고 로마전투에서 얻은 경험에 의거 도시를 방어하고 있는 군대는 포위당하면 후퇴하는 것으로 믿고 있던 전통적인 육군 엘리트였습니다.
[ 알몬드 10군단장 ]
이에 반하여 서부의 명문 UC 버클리 출신으로 해병대에서 군무를 시작한 스미스는 2차대전을 태평양전선에서 복무하여 일본과의 교전 경험이 풍부하였기 때문에 동양인들의 전투의지에 대하여 상당한 이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동양의 군대는 상부로부터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으면 최후의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라도 사수한다고 믿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 스미스는 태평양전쟁의 경험으로 동양인의 전투의지에 대한 이해가 넓었습니다 ]
거기에다가 스미스는 적진에 상륙한 이후 부대원들의 단합과 결속을 통하여 안전한 교두보를 확보한 후 전진하는 것만이 생존의 지름길이라는 투철한 해병대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었습니다. 때문에 한국전에서 해병대가 육군 부대의 예하부대로 편성되어 참전하는 것과 육군교리에 의거 작전을 수행하여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 해병대가 육군예하부대로 작전을 펼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습니다 ]
인천상륙 작전 후 서울탈환에 나섰을 때 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북괴군이 도시외곽에 참호를 파고 강하게 저항을 하여 예상외의 출혈이 발생하자, 알몬드는 " 요새화된 적진지에 대한 정면공격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해병대가 남측을 우회 포위하여 적에게 퇴각을 강요하는 것이 최선이다 " 라고 주장하며 해병 1사단 일부연대로 하여금 서울 남부로 우회진격 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 서울 외곽 돌파방법을 놓고 격론이 오고갑니다 ]
그러나 스미스는 " 북괴군의 전투의지는 서울을 사수하는 것이다. 서구의 사고방식으로는 서울사수는 무의미하지만 동양인에게는 동양인의 사고방식이 있다. 때문에 적을 포위하더라도 적에게 퇴각을 강요할 수는 없으며, 사수의지를 가지고 있는 적은 아군의 전력을 한곳으로 집중하여 맹공을 가하는 것이 더 좋다 " 고 아군전력을 분리하자는 알몬드의 의견에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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