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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보면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을 때가 있다. 별 기대 없이 찾은 곳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때도 그중 하나. 남쪽 바다 거제도 일운면에 자리한 공고지수목원을 찾았을 때도 그랬다. 그저 그러려니 싶었지만 그곳으로 들어서는 순간 ‘와’ 하는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공고지수목원. 아직까지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세포에서 구조라 방면으로 14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보면 왼쪽으로 ‘공고지수목원’이라고 적힌 이정표를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그 팻말은 겨우 학생 노트 크기. 그냥 지나쳐도 결코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듯하면서도 드러나지 않은 곳. 공고지수목원이 바로 그런 곳이다.
어쨌든 공고지수목원으로 가려면 그 이정표를 놓치면 안 된다. 예구마을 쪽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사실도 알아두자. 이정표가 안내해주는 방향을 따라 길을 가다보면 해수욕장이 하나 나타난다. 와현해수욕장이다. 거의 대부분 몽돌로 이루어진 거제 동부바다에서 흔치 않은 모래사장 해수욕장이다. 여름으로 달려가는 5월. 파라솔까지 꺼내든 해수욕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와현해수욕장을 지나 길을 조금 더 달리면 예구마을이다. 갈고리처럼 생긴 만 형태의 해변을 지닌 어촌마을. 그러나 길은 이곳에서 끝나고 만다. 갑자기 당혹감이 밀려든다.
‘찻길’은 이곳이 끝이지만 공고지수목원으로 가는 ‘사람길’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예구마을 낚싯배 주차장 왼쪽으로 난 산길. 역시나 작은 팻말로 가리키는 그 길이 수목원 가는 길이다. 수목원은 이곳에서부터 1.5㎞ 정도 떨어져 있다. 그곳으로 가려면 산 하나를 넘어야 한다.
공고지수목원 쪽에서 나오던 한 가족은 연신 ‘헉헉’대며 “좋기는 한데 너무 멀다”며 투정이다. 초행길이라 막막해 남은 거리 가늠이 되지 않아 “얼마나 더 가야 되냐”고 묻자 “금방”이라면서도 “꽤 힘드실 것이다”라고 은근히 겁을 준다. 그러나 빨리 닿겠다는 생각만 버리면 훨씬 여유로워지는 게 바로 여행. 설렁설렁 걸으니 그다지 힘든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예구에서부터 30분쯤 걸리는 수목원 길. 그 정도의 수고도 없이 그 아름다운 풍경을 가슴에 안겠다면 ‘도둑놈심보’가 아닐까.
수목원은 그렇게 사람들을 걸러내며 조용히 봄을 맞고 있다. 감히 말하건대 수목원 입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통로다. 200m 가까이 계단이 산허리에서부터 바닷가 수목원 방향으로 나 있다. 이 계단은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너비. 계단의 양옆에는 동백나무가 빽빽이 심어져 있다. 동백나무는 머리 위에서 맞닿아 터널을 이룬다. 4월 초까지만 해도 이 터널 안은 수만 송이의 동백꽃으로 환했다. 지금은 거의 다 떨어지고 없지만 계절을 잊고 몇몇 남아 있는 동백들이 애써 터널의 호롱불 역할을 한다. 동백이 진 자리는 진달래가 이어받았다. 터널 곳곳에 심어진 진달래. 만개한 이 선홍빛 꽃으로 인해 터널은 여전히 밝고 아름답다.
계단 양옆으로 호위하듯 늘어선 동백나무 옆으로는 후박, 동백, 종려나무 밭이 자리해 있다. 계단을 다 내려가면 갈래길이다. 왼쪽은 수선화밭 쪽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은 바로 몽돌해안.
수선화밭 가는 길에는 집이 한 채 서 있다. 이곳을 일군 노부부가 사는 곳. 공고지수목원은 이 부부가 40년 동안 만들어낸 역작이다. 처음 수선화 몇 뿌리를 마당 앞에 심다가 점점 그 면적이 넓어졌고 종려나무와 진달래, 동백도 산기슭 빈 공간에 채워졌다. 이곳은 인공미가 넘치는 수목원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무들이야 사람 손으로 심었다지만 자연과 어울려 숨을 쉬고 있어 이질감이 적다. 어디가 수목원이고 어디가 원래 있던 숲인지 분간이 안 된다. 수목원은 입장료가 없다.
수목원 앞은 몽돌해변으로 이루어진 바닷가다. 이곳의 몽돌은 거제의 명소 중 하나로 이름 난 학동해수욕장의 몽돌보다 훨씬 크고 단단하다. 몽돌해변은 500m 정도 이어져 있다. 수목원의 담은 이 몽돌을 이용해 쌓은 것이다.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차곡차곡 쌓아올린 담들. 보통의 정성으로는 해낼 수 없는 작업이다.
이곳 해변 바로 앞에는 섬이 하나 떠 있다. ‘안섬’이라 부르는 내도다. 그 뒤로 보이는 섬이 해상공원으로 잘 알려진 ‘바깥섬’ 외도다. 공고지란 명칭은 바다 쪽으로 뾰족이 튀어나온 해변 모양의 ‘곶’ 때문에 생긴 것. 처음에는 ‘공곶이’로 불렸다고 한다. 이곳의 곶은 바로 앞에 있는 내도가 먼 바다로부터 밀려드는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내면서 형성됐다.
모처럼 세상과 담을 쌓고 조용히 수목원을 둘러보고 나가는 길. 기왕이면 해질녘까지 수목원에 머물다 가길 권한다. 산 위에서 바라보는 예구마을의 일몰 풍경이 기막히다. 비록 야트막한 산에 가로막혀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해를 볼 수는 없지만 마을 앞 바다와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만큼은 그 어느 곳에 비해서도 떨어지지 않는다.
공고지수목원 주변엔 볼거리가 많다.
장승포해안을 드라이브 코스 삼아 능포로 달려가면 양지암조각공원과 장미공원이 있다. 능포가 다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한 공원으로 5월이면 이 곳은 가장 찬란해진다. 장미가 가득 피어 향을 사방으로 뿌려대기 때문이다.
여행 안내
★길잡이: 경부고속국도→대전·통영 간 고속국도→통영IC→14번 국도→예구마을→공고지
★잠자리: 거제 시내 고현리에 거제관광호텔(055-632-7002) 등을 비롯한 숙박업소가 몇 곳 있다. 학동이나 장승포, 구조라 등 관광명소에는 콘도와 모텔, 펜션이 많다.
★먹거리: 공고지에는 음식점이나 편의시설이 없다. 인근 구조라나 능포 쪽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구조라에는 횟집단지가 조성돼 있다. 그러나 자연산 회를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곳으로는 거제대교 건너자마자 만나는 성포횟집단지를 추천한다. 그중 특히 파도횟집(055-633-5678)은 커다란 통유리를 통해 바다를 바라보면서 회를 먹을 수 있어 좋다. 4인 기준 7만 원. 도다리쑥국 1인분 1만 원.
★문의: 거제시청 문화관광포털(http://tour.geoje.go.kr) 055-639-3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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