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면상만호(東北面上萬戶)가 되어 둥북면의 여진족을 토벌하여 영토를 길주(吉州), 갑산(甲山)에까지 이르게 하고 혹은 개성에 쳐들어 온 몽고의 홍두적(紅頭賊)을 반격하여 궤주케 하였으며 혹은 운봉(雲峰), 해주 등지로 들어와 멋대로 행악을 하던 왜구를 도륙하여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성계의 명성은 전국에 떨치고 아동주졸까지도 이성계를 이장군이라 부르면서 그를 존중하였다. 전공이 귀신을 울릴 정도였으므로 벼슬이 여러번 승진되어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고려의 벼슬로 최고의 정승 벼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성계의 존재가 이러했으므로 일반 사람들은 그를 한 번 보려고도 했고 또 딸을 가진 부모들은 그런 사위를 두려고도 했다. 그가 동정북벌(東征北伐)하는 사이에 세월은 흐르고 흘러 그의 청춘은 흘러가 어느덧 나이가 들어버렸다.
이때 황해도 해주에 강윤성(康允成)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당시 양반급에 속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서민(庶民) 중에 있어서는 학행이 있는 사람이었다. 특히 그에게는 남달리 미(美)와 덕(德)을 겸한 과년한 딸이 하나 있어 천하 제일의 사윗감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는 어느 기회에 친구를 통해 이성계의 문객(門客) 홍(洪)이란 사람을 알게 되었다. 강은 홍과 가까이 하는 사이에 이성계의 생활 사정도 알게 되고 또는 경처(京妻)로서 미처녀(美處女)를 널리 구한다는 말도 듣게 되었다.
강윤성은 어느날 밤에 그의 부인과 자리를 같이 하고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 받고 하다가 딸 시집보낼 문제를 내놓고 부인과 의견을 교환하였다. 강윤성은 새삼스럽게 부인을 자기 앞으로 가까이 불러서 물었다.
"방실(芳實=딸)이의 나이가 지금 열아홉살인가?"
"내년이면 스무살이 될 테니까 지금은 열아홉이죠."
"그러면 시집가는 것이 몹시 늦어진 모양인데… 부인도 사윗감을 좀 구해 보았소?"
"구해 보기는 좀 했지만 방실이의 짝이 됨직한 총각은 안 보입디다. 이대로 가다간 방실이를 늙히겠는데… 영감도 좀 구해 보셨소?" "나도 구해 보기는 했으나 모두 다 신통치 않군 그래.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소?" 마누라의 이 말에 윤성은 고개를 숙이고 뭣인가를 생각하고 있다가 말했다. "내가 개성으로 가서 홍진사를 한 번 찾아 볼까?"
"왜요?"
"내 말 좀 들어 보오. 이성계 장군 같은 양반에게 왜 부인이 없겠소마는… 근년에 들어서 부터는 서울에서 몸을 자주 뺄 수가 없게 되었다 합디다. 그래서 서울에도 아내를 두고자 작년부터 미(美)와 덕(德)을 겸한 규수를 구하고 있다고 개성의 홍진사가 말한 일이 있었소. 그래서 개성으로 가려는 것이요."
"잘 알겠어요. 시골에는 정실부인(正室夫人)이 있겠죠?"
"있지." "그러면 우리 방실이를 첩으로 주잔 말이죠?"
부인은 고개를 숙였다.
"나도 방실이의 신랑감을 구하다 못해 이런 생각을 한 것이요. 이를 양해하고 말을 해야 하오."
"그런데 지금까지 구하지 못했을까요? 그런 양반이 구한다면 문이 메어졌을 텐데…"
"글쎄." "그 양반의 나이가 지금 얼마나 되었나요?" "글쎄, 한 사십은 됐을 걸!"
"한 사십요? 그러면 방실이 아버지 뻘이 되는구먼… 우리 방실이가 좋아할까요?" "그건 한 번 부인이 방실이에게 물어보구료."
윤성은 한 마디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 이튿날 윤성은 개성을 향하여 출발했다. 그리고 홍진사를 개성에서 만나기가 무섭게 이성계의 경처가 결정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결정되지 않았음을 알고 비로소 안심하고 홍진사를 상대로 자기 딸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홍진사님, 미안합니다. 갑자기 폐를 끼치게 되어서…"
강윤성은 다시금 이렇게 인사를 올렸다.
"그런 인사는 그만두고 돌연히 찾아준 곡절이나 말해 보시구료."
"제 딸년 혼인 문제 때문에 별안간 오게 된 것이올시다."
"누구와 혼인하게 되었나요?"
"누구와가 뭣입니까? 저 이장군(이성계)에게 제 딸이 어떨까 해서요."
"정말이요?"
"그럼 정말이죠."
"지금 딸의 나이가 몇 살이나 됐소?"
"열아홉이올시다."
"열아홉? 꼭 좋은 나이구먼! 나도 한 번 딸을 본 일이 있지만 그 동안에 더 예뻐지고 더 맵시가 있어졌겠군!"
"그 애가 이젠 다 자라서 만개한 모란꽃같이 보입니다. 그리고 위인도 어질고 고와서 이 애를 한 번 본 사람들은 입의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합니다."
"어떻게 그런 딸을 두게 되었소? 그런 딸을 두게 된 것도 큰 복이요. 내가 이장군에게 이런 말을 하고 권할 것 같으면 장군도 싫어하지 않을 것이요." 강은 이말에 희망을 걸었다. "저는 다 결정된 것으로 믿고 그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장군이 오랫동안 수많은 처녀를 물색해 왔지만 아직도 교양있는 미처녀가 발견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강형의 딸은 남달리 현숙해 보이고 꽃 같으니 성공할 것 같소."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의 집안은 양반이 아니올시다. 몇 대를 두고 농사를 하며 장사를 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학행만은 양반 집안 못지 않도록 힘썼습니다. 이 점을 참고로 말씀해 주십시오."
"잘 알겠소. 내가 중매를 잘하면 무슨 수가 나게 될까?"
홍진사는 웃음을 섞어 이렇게 말하였다.
강윤성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머리를 숙였다.
"잘해 주시면 큰 복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윤성은 홍진사 집에서 술대접까지 받고 그날로 개성을 떠나서 해주로 돌아갔다. 고향 해주로 돌아온 강윤성은 돌아온 날 밤에 자기의 부인은 말할 것도 없고 딸까지도 불러놓고 개성으로 가서 홍진사에게 단단히 부탁한 것을 이야기하고 부인과 딸의 의견을 묻기로 했다.
"나는 홍진사 집에서 술대접, 밥대접까지 받으면서 저 애의 혼인문제를 내놓고 부탁하였소. 그동안 여러 집에서 말이 있던 모양인데 아직도 결정은 되지 않은 모양입디다. 그래서 열심히 부탁했더니 홍진사도 저애의 편이 되어 힘쓰겠다고 확언했소. 홍진사가 힘만 쓰면 우리 애가 경처로 될 것은 틀림없을 것으로 믿어지오. 며칠 동안 기다리고 있으면 기별이 올 것 같은데. 당신 생각은 어떤지 있으면 말해 보오."
그리고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의 이장군은 장군 지위에 있지만 그 명성은 천하를 울리니 반드시 고려를 대신하여 임금이 될 것이라고 홍진사는 장담을 합디다. 이 나라 백성의 마음이 모두 다 이장군에게로 돌고 있으니까… 그래서 청하는 자가 많아지는 것 같소."
"그리된다면 방실이가 왕비가 되어 크게 호강을 하겠군요!"
그러나 방실이는 아무 기색도 보이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이를 보고 있던 윤성은 부인에게 물었다. "부인도 처음에 탐탁히 여기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은 어떠하오?"
"이젠 이장군과의 결혼이 이루어지기만 바랄 뿐이고 아무 생각도 갖고 있지 않아요."
"얘, 방실아! 너는 이장군에게로 시집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니? 이장군은 가까운 장래에 이나라의 임금이 될 분이다. 그의 신(身), 언(言), 서(書), 판(判)이 남자다워 보인다고 홍진사는 극구칭송 하던데. 좀 말해 보아라."
방실이는 이 말을 듣고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대답했다.
"제가 외람되게 무슨 말을 드리겠습니까? 아버님께서 옳게 생각하신 일이시라면 그대로 복종하겠습니다."
윤성은 시선을 방바닥에 떨어뜨리고 말했다.
"너를 남의 부실(副室)로 주는 것을 나도 좀 섭섭히 생각한다. 그러나 너는 일개 노리개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 안심하여라."
"방실아! 불만을 품을 것 없다. 여자의 팔자는 남자에게 달렸다. 일생의 고(苦)와 낙(樂)이 남자의 성공, 불성공에 달렸기 때문이다. 네가 크게 호강을 하게 되면 우리도 좀 호강을 하게 된다. 너는 딸의 덕에 부원군(府院君)이 된다는 말을 못들었니?"
윤성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홍진사의 기별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윤성이 해주로 돌아온지 한 열흘 남짓해서 홍진사가 친히 해주로와 윤성을 찾았다. 홍진사는 윤성을 보기가 무섭게 물었다.
"이장군을 모시고 왔는데 이찌하겠소?"
"지금 어디 계신가요?" "지금 읍내 어느 객사에 계신다오."
"그러면 어찌해야 좋을까요?"
"글쎄, 오늘은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까 나는 되돌아가 하룻밤을 객사에서 새우고 내일 정오까지 이리로 모시고 오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강형은 어찌 생각하오?" "글쎄, 올시다. 그러나 촐촐히 돌아가시게 될 것이 걱정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읍내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 곧 돌아가야 하겠소. 내일 한잔 톡톡히 하기로 하고 나는 그만 돌아가겠소."
홍진사는 이렇게 말을 하고 윤성의 전송을 받으면서 객사로 돌아갔다.
윤성은 집으로 돌아와 부인에게 일렀다.
"홍진사가 이장군과 함께 해주로 왔는데 진사만이 홀로 찾아왔다가 돌아갔소."
"그런데 왜 문전에서 보내셨수?"
"실은 홍진사가 이장군을 모시고 왔는데 날이 저물었기 때문에 읍내 객사에 머물러 계시게하고 나를 찾아온 것이요. 내일 정오쯤 해서 이장군을 모시고 오겠다 하고 돌아갔소."
"그러면 어찌하면 좋소?"
"뭣을 어찌하면 좋아? 첫째 집안을 깨끗이 소제하고 둘째 우리 집안엔 산해진미(山海珍味)가 상비돼 있지 않으니까 있는 대로 정결히 만들고 셋째 무명옷이나마 깨끗이 입고 대하면 좋겠지. 알겠소?"
윤성은 이와같이 말하고 특별히 당부를 하였다.
"내일 자리를 건넌방으로 할테니까 특별히 잘 소제해 주오. 그리고 내가 부인이나 방실이를 들어오라 하거든 조용히 대답하고 들어와 이장군이며 홍진사에게 정중하고 겸손히 절을 하오. 그리고 묻는 말이 있거든 조용히 대답하고 함부로 웃음을 터뜨려서는 안 되오."
날은 밝아 정오가 되었다. 이성계는 홍진사를 따라 윤성의 집으로 왔다. 윤성은 이성계이며 홍진사에게 절을 하고는 건넌방으로 인도하여 상좌에 앉게 한 후 다시 절을 했다.
"천민(賤民)의 집에 오시게하여 죄송만만이올시다. 그러니 이놈의 집에 대해선 자자손손에 이르기까지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인사를 한 후 이번엔 홍진사에게 말했다.
"크게 수고를 끼쳐서 아뢸 말씀이 없습니다. 진사님 덕분에 이장군 어른까지 만나뵙게 되어 마음이 흐뭇합니다. 그 은혜는 길이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한 후 윤성은 한편에 자리 잡고 응구첩대하다가 그의 부인과 딸을 불러 이성계며 홍진사에게 인사를 하게 하였다. 이성계 장군은 방실이의 절을 받은 후 홍진사에게 물었다.
"이 처녀가 본인이요?"
"그 처녀가 바로 본인이올시다."
홍진사가 이렇게 대답하자 이성계는 다시금 방실이를 주의해 보았다.
"홍진사의 말이 헛말이 아니었구만… 잘못했더라면 시골에서 세상을 보내고 말 뻔했는데."
그리고는 부모를 쳐다보며 말했다.
"참 따님 잘 두셨습니다. 왜 지금까지 시집을 안 보냈습니까?"
"이장군님께 보내려고 그렇게 되었나 봅니다."
윤성은 웃음의 말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윤성의 부인과 방실이는 윤성의 명령에 따라 점심상을 차려다 놓고 안방으로 물러갔다.
이때 이성계는 윤성에게 술을 권하면서 말했다.
"댁은 음식범절이 보통이 아닌 집안인가 봅니다. 저 같은 놈이 이런 집안의 규수와 혼사를 갖는다는 것은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에게 따님을 주신다면 감사히 받아 드리겠소이다."
윤성은 이성계가 권하는 술을 마시고 나서 대답했다.
"그 말씀이 정말이신가요?"
"정말입니다. 저는 술을 먹어도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시다면 저의 집 산소에 꽃이 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겸사의 말씀은 마십시오. 저는 이날 이좌석에서 홍진사를 증인으로 장인되실 어른, 장모되실 어른 앞에서 댁 따님을 경처(京妻)로 맞아드릴 것을 맹세합니다. 그리고 비용은 홍진사에게 맡겨 전하게 할 것이고 또 준비가 다되면 길일(吉日)을 택하여 적당한 장소에서 정식으로 식을 올리겠습니다."
이성계는 자기의 심경을 피력하였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나라에 매인 몸이므로 내일은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객사에서 하룻밤만 더 묵고 돌아가겠으므로 결혼 후 아니면 만나 뵈올 틈이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성계는 홍진사와 함께 윤성의 집을 하직하고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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