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트로이 성은 어떻게 함락될 수 있었을까?

鶴山 徐 仁 2007. 3. 24. 16:06

트로이 성은 과연 어떻게 함락될 수 있었을까? 
미국의 칼 브레건은 호머의 트로이로 알려진 여섯 번째 지층이 지진으로 파괴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성벽은 무너져 있었고 주춧돌들의 위치가 뒤바뀌어 있기도 했다. 터키에서는 근래에도 자주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 10여 년 동안 트로이를 점령하지 못한 그리스 연합군은 마침 트로이가 지진으로 파괴되자 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율리시스가 만들었다는 목마에 대한 이야기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병사들을 숨긴 목마를 남겨 두고 그리스인들이 철수하자 트로이인들은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을지 말지 찬반 토론을 벌이다가 결국 목마를 신들의 선물이라고 생각하여 성안으로 끌고 갔다는 구절이 호머의 서사시에 나온다.

『일리아드』에서 그리스인이 남기고 간 목마를 트로이성으로 들여놓는 것을 가장 반대한 사람은 트로이의 사제였던 라오콘이었다. 그러자 그리스인을 지지하던 포세이돈은 물뱀을 보내 라오콘과 두 아들을 죽인다. 이 장면은 유명한 '라오콘 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라오콘이 죽고 난 후에야 트로이인들은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기로 결정한다.

비록 『일리아드』에 이렇게 적혀 있다고는 하지만 그리스인들과 10년 이상 전쟁을 치룬 트로이인들이 바보일 리는 없다. 따라서 그들이 목마 안에 그리스 병사들이 숨겨져 있는 사실을 모르고 성안으로 목마를 끌어들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 전설 같은 이야기는 당시 트로이가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인한 파괴 때문에 멸망했다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가끔 말로 표현했고, 말로 만든 포세이돈 상에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포세이돈은 그리스인들이 고난에 처할 때마다 항상 바람처럼 나타나 군의 사기를 고취시키고 승전으로 이끌었다는 말이『일리아드』에도 나온다. 그리고 포세이돈은 바로 지진의 신이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지진의 여파로 트로이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면 그리스인들이 지진의 신인 포세이돈의 덕택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기 때문에 ‘트로이의 목마’라는 전설이 생겼으리라는 주장이 정설이다. 콜린 윌슨은 트로이의 멸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던 시기는 소아시아에서 전쟁이 많이 일어나던 때였다. 당시 트로이의 후견인이자 강력한 제국이었던 히타이트 제국은 쇠퇴 기미를 보여 영향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는데 이를 틈타서 그리스인들이 각 지역의 반란을 부추겼다. 이때 트로이의 왕자인 파리스가 스파르타로 아가멤논의 동생인 메넬라우스를 찾아갔고, 메넬라우스의 아내인 헬렌은 자신의 남편보다 더 매력이 있는 패리스와 함께 야반도주를 해 버렸다. 과거에는 왕비라 할지라도 정실에 따라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아내가 도망을 가자 미넬리우스는 씩씩거리며 형인 아가멤논 왕을 찾아갔다. 당시 그리스의 맹주였던 아가멤논 왕은 동생의 하소연을 듣고 나서 트로이의 후견인인 히타이트가 마침 아시리아를 비롯한 여러 주변 국가들과 전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트로이 지역을 공격하기에 적기라고 판단했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트로이를 공격했다. 그의 예상대로 히타이트 제국은 지원군을 보낼 여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로이는 난공불락이었다.

그러다가 전쟁이 일어난 지 10년째 되던 해에 지진이 일어나서 성안은 혼란 상태에 빠졌고 그 틈을 타서 그리스인들이 성을 점령해 버렸다. 남자들은 모두 살해되었고 여자와 어린이들은 노예로 끌려갔다. 트로이는 불탔고 집들은 파괴되었다.”트로이의 멸망으로 고대 세계는 종말을 맞았다. 기원 전 12세기부터 500년 동안 에게 해는 암흑 시대로 들어간다. 아시아에서 온 이민족의 침공을 받아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미케네 문명도 멸망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500년 후, 비로소 그리스 문화가 다시 시작된다.

                                                           -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