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軍事 資料 綜合

미국의 해외주둔군 전략변화와 주한미군의 장래

鶴山 徐 仁 2007. 3. 1. 23:09
                        홍성표 : 국방대학교 교수  
 
발제
메시지
부시정부 들어 미국의 해외주둔군 전략은 급격히 변화하였다. 특히 2001년 9월 11일 맨하탄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항공테러공격은 세계안보질서를 뒤흔드는 거대한 충격을 가져왔다. 그 후 미국은 대테러전을 주도하면서 전세계에 배치, 주둔하고 있는 해외주둔군 전략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과거 2개 주전장 개념 중심에서 이제는 동시다발로 발생하는 불특정 다수의 안보위협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하여 대규모 병력을 해외기지에 배치하는 대신 미본토에서 정예전투력들을 분쟁지역으로 직접 발진시켜 전투력을 투사하는 해외원정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미국의 해외주둔군 전략변화는 주한미군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반세기 이상 한수이북에 고정배치해온 주한미군을 미국의 세계전략에 부합토록 주변의 분쟁지역으로 신속하게 이동전개할 수 있는 지역안정군 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 체제로 경량화, 기동화하면서 한수 이남으로 재배치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같은 부시정부의 해외주둔군 전략변화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 주요 문헌들을 심층 분석하고 그에 따른 주한미군의 장래를 전망하며 향후 한미동맹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미동맹은 이제 격변하는 세계안보환경에 부합토록 지난 반세기를 냉철히 분석, 평가하고 향후 반세기를 대비하는 미래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기로에 서있다. 이를 위해 한미양국은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상호간 호혜적인 동맹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국가지도부의 혜안과 범국민적인 노력의 결집이 요구되고 있다.

I. 서 언

2001년 조지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의 해외주둔군 전략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2001년 9월 11일 알 카에다에 의한 세계무역센터 항공테러 공격을 기점으로 미국은 범세계적 대테러전을 주도하면서 본토안전을 강화하는 한편 해외주둔군 전략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미국은 해외주둔군 전략변화에 따라 주한미군의 규모를 감축시키고 한국전 이후 서울 북방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주로 한수(漢水) 이북에 고정배치시켜온 주한미군을 한수 이남으로 재배치하면서 미국의 범세계적 군사전략에 부합토록 신속기동군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기존의 주한미군 배치구도를 가능한 유지시키고자 하는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서울과 워싱톤간에는 팽팽한 줄다리기식 협상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양국의 이같은 입장 차이는 한국전 이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기반이 되어온 한미동맹 전반에 대하여 근본적인 재검토를 필요로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긴장감마저 느끼게 하였다. 과연 한미동맹은 와해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가 아니면 보다 굳건한 미래의 결속을 위한 담금질 과정에 있는가.

이같은 맥락에서 본고에서는 미국의 해외주둔군 전략 변화와 주한미군의 미래 대안에 대하여 군사전략적 측면에서 관련 문헌중심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II. 미국의 해외주둔군 전략 변화

부시정부의 해외주둔군 전략 변화는 크게 4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냉전기의 군사전략 기저였던 ‘봉쇄와 억제(Contain & Deter)’ 전략에서 탈냉전기 ‘억제와 격퇴(Deter & Defeat)’ 전략개념으로 전환시킨 것이고, 둘째는 범세계적으로 대테러전 수행과 다양한 불특정 안보위협에 신축성 있게 대처하기 위하여 신속기동군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셋째는 대규모 군사력의 해외 주둔배치 개념에서 주요 핵심전투력을 미본토에서 분쟁지역으로 직접 발진시키는 본토발진 개념의 도입이고 넷째는 안보위협 요소들에 대한 선제예방전략의 채택이다. 이같은 주요 전략변화에 대하여 관련문헌들을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보자.

1. ‘봉쇄와 억제’ 전략에서 ‘억제와 격퇴’ 전략으로

미국의 해외주둔군 전략은 1991년 소비에트 체제의 붕괴를 기점으로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과의 대결구도 속에서 공산세계의 팽창을 저지해야 했던 미국은 자유세계의 중심축으로서 대규모 군사력을 해외에 주둔시켜 자유세계의 공산화를 막는 해외주둔군 전략을 추구하였다. 이른바 ‘봉쇄와 억제’ 전략이 그것이다. 이 시기에 미국은 해외에 전진기지들을 가능한 많이 확보하고 대규모 군사력을 배치, 주둔시켜 공산세력의 팽창을 저지하는데 주력하였다.

이같은 냉전기 미국의 해외주둔군 전략은 1955-59년 기간동안 미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고 퇴임 후에도 국방커뮤니티에서 장기간 지도적 역할을 수행했던 맥스웰 테일러(Maxwell D. Taylor) 대장의 165편에 달하는 주요 연설문에 잘 나타나 있다. 테일러 장군은 미국이 재래식 군사력을 증강시켜 범세계적으로 보다 융통성 있는 군사작전능력을 갖추어야 공산세계의 확장을 저지하고 세계적인 강대국으로서 발돋움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해외주둔미군의 증강과 역할 확대를 강조하였다(Maxwell D. Taylor, 1955A, 1955B, 1956, 1966). 맥스웰 테일러장군의 전략사상과 그 당시 미국의 해외주둔군전략을 살펴보면 오늘날 미국의 해외주둔군 전략변화를 이해하는데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테일러 장군은 1966년 일본에서 행한 그의 연설문에서 트루먼대통령의 해외군사정책 선언을 인용하면서 자유세계를 보호하기 위한 대공산권 봉쇄와 억제전략 추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에 의하면 미국의 해외군사전략 기본방향은 외부세력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자유세계의 자유민들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유럽에서는 동유럽 공산국가들에 의한 그리이스, 터어키의 공산화 기도를 저지하고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월남을 공산세력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Maxwell Taylor, 1966, 6). 이같은 미국의 냉전기 해외주둔군 전략은 한국전과 월남전을 통하여 공산세력과의 직접적인 교전으로까지 표출되었다. 이같은 해외군사전략에 따라 냉전이 한창 고조되었던 시기에 미국의 전체 현역병력 수는 약 220만명을 상회하였으며 해외주둔 작전기지도 90여개에 이르렀다(US Air Force, 1999).

한편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 동서 양 진영간의 갈등과 대결구도는 와해되었고 동유럽국가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는 등 국제전략환경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같은 국제전략환경 변화는 미국의 해외주둔군 전략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냉전기 공산세계의 팽창을 저지하고 자유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군사력과 예산을 해외에 투입하는 ‘봉쇄와 억제’ 전략을 유지하였지만, 1991년 이후 변화하는 탈냉전기 국제전략환경에 부응하기 위해 ‘억제와 격퇴’ 전략으로 해외주둔군 전략을 전환하였다.

칼 코네타와 찰스 나이트는 ‘2001년 미국의 신군사전략’에서 과거 냉전기에는 미군의 임무가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는 단순한 임무였지만 탈냉전기 이후에는 강압, 응징, 분쟁관리, 대확산, 그리고 우호적 환경조성 등 복잡해졌다면서 ‘봉쇄와 억제’전략보다 한걸음 나아간 ‘억제와 격퇴’ 전략으로 전환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Donald H. Rumsfeld, 1998, 2-3). ‘억제와 격퇴’ 전략이란 대테러전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의 안보위협세력들에 의한 무력도발을 최대한 억제하고 이같은 억제에도 불구하고 적대세력들이 무력도발을 감행했을 경우 이를 신속하게 반격하여 격퇴시킨다는 보다 공세적, 적극적인 개념이다.

2. 신속기동군 체제로의 전환

9.11 테러 이후 미군은 범세계적 대테러전 체제로 전환을 추진하였다. 그 일환으로 해외주둔미군은 경량화, 기동화, 고성능화 및 원거리 정밀교전능력을 중점 강화한 신속기동군 체제로의 전환을 강력하게 추진중에 있다. 그 중에서도 미육군은 에릭 신세끼(Eric Sinseki) 전육군참모총장의 지휘하에 육군의 기본전투제대를 중무장 사단체제에서 기계화 경보병여단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였는데 그 이유는 미군이 운용하는 기존 전차와 장갑차들이 그 과중한 무게로 인하여 미본토 이외 지역에서는 도로, 교량, 철로 등 기본인프라가 허약하여 이 과중한 장비들로는 제대로 기동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경보병여단에 장비할 전차와 장갑차는 기존 장비보다 중량을 2/3 이하 수준으로 경감시키고 기동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미육군은 최근 워싱톤주 루이스기지(Ft Lewis)에 있는 제2사단 3여단과 제25사단 1여단을 스트라이커전투여단(Stryker Brigade Combat Team: SBCT)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완료하였다. 대표적인 신형장비로는 8개의 바퀴로 고속기동하는 신형장갑차 스트라이커(Stryker)를 들 수 있는데 이는 기존의 육중한 궤도장갑차량보다 더 많은 인원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운송할 수 있다. 미육군은 이같은 전환을 통하여 2008년까지 추구하는 목표군의 모습을 달성할 것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공군도 신속기동군체제로의 전환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는데 '91년 걸프전 이후 발전시킨 해외원정군 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91년 걸프전 이전에는 해외 전진기지로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이동 배치하고 그곳에서 교전지역으로 전투력을 투사하던 현지 대응전략을 고수하였다. 하지만 '91년 걸프전 이후에는 미본토에서 세계의 분쟁지역으로 주요 전투력을 직접 투사하는 본토출격 대응전략으로 전환하였다. 이같은 전략변화에 따라 전력체계도 과거 전술적 수준의 전투기 중심에서 B-1, B-2, F-117 등의 스텔스 전략폭격기를 비롯하여 C-17 전략수송기 등 전략전력의 비중을 대폭 강화하는 체제로 전환하였다. 이같은 전략수송능력을 비탕으로 미군은 세계 어느 곳이든 96시간 이내에 SBCT 여단전투력을 현지로 전개투입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같은 전략변화에 따라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미공군은 50개의 해외기지를 운용하였으나 냉전이 종식된 2000년도에는 32개의 해외기지로 축소하여 운용하고 있다.

3. 본토발진 개념 도입

다음으로는 전투력을 미본토에서 분쟁지역으로 바로 투입시키는 본토발진개념을 들 수 있다. 미국의 미래전 전문가 제프리 바넽(Jeffrey Barnett)은 1996년에 저술한 ‘미래전(Future Warfare)’에서 미국의 국방발전을 위한 10가지 정책대안들을 제시하였는데 그 중에 합동군공군구성군사령부(Joint Force Air Component Command: JFACC)는 전쟁전구가 아닌 미 본토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Jeffery Barnett, 1996, 102-105).**2) 이는 미공격전력의 핵심지휘부인 JFACC을 적대세력들의 위협이 지척에 있는 전쟁전구에 배치할 경우 지휘통제시스템이 이곳으로 집중되기 때문에 적에게 노출되어 중심표적으로 공격당하기 쉽고 또 이를 보호할만한 안전장치가 취약하기 때문에 적들이 공격하기 어려운 미본토에 위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센서-슈터(Sensor-to-Shooter)로 연결되는 정보의 흐름도 미본토에 위치할 경우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현재 다국적군 작전에서 운용되고 있는 전략정보의 흐름을 보면, 전장에 배치되어 있는 센서에 의해 수집된 정보자료는 미국 콜로라도 덴버의 체이엔느마운틴에 있는 북미방공사령부(North American Aerospace Defense Command: NORAD)로 전송되어 그곳에서 분석, 평가되어진 후 표적정보로 재생산되어 다시 전장에 배치되어 있는 슈터, 즉 타격수단들에게 전달되어 표적을 타격하는 체제로 운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지에 많은 지휘통신장비들이 집중, 설치되어야 하고 정보의 유통체계가 복잡하게 될 뿐만 아니라 중간에 장애요소가 발생하면 복구에 어려움이 따른다. 또한 밀집된 지휘통신장비시설들은 적에게 노출되어 주요 공격표적이 되기 쉽다. 하지만 본토에서 발진하는 체제로 전환하면 이같은 문제들이 자동으로 해결되니 전투효율성 증대에도 크게 기여한다는 주장이다. 제프리 바넽의 국방발전 건의안은 대부분 수용되었는데 이 본토발진 개념도 함께 수용되어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에서는 많은 항공전력들이 미본토에서 전장으로 직접 출격하여 적의 전략중심을 공격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이같은 전략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미공군은 전투사령부 산하의 10개 번호공군사령부를 해외원정군체제(Aerospace Expeditionary Forces: AEFs)로 재편성하여 해외 분쟁지역에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투입될 수 있는 체제로 전환하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은 전략수송기 C-17의 증가확보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같은 본토발진 개념에 따라 미국은 코소보전부터 과다비용과 현지 위험이 우려되는 대규모 군사력의 해외주둔전략 대신에 본토에서 발진하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적용해오고 있다.

4. 선제 예방전략

다음으로는 선제 예방전략을 들 수 있다. 선제예방전략 개념은 부시대통령이 발표한 핵태세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 NPR, 2001. 12), 본토안보전략서(National Strategy for Homeland Security, 2002. 7), 국가안보전략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2002. 9), 그리고 대테러전략(National Strategy for Combating Terrorism, 2003. 2) 등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본토방위를 특별히 강조하였는데 그 이전에는 본토방위에 대한 전문가들의 정책제안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부분 무시하였었다(Gary Hart & Warren Rudman, 2001, 55-58). 하지만 9.11 이후 미국은 본토방위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국가안보전략을 수립하였으며 적대세력들의 적대행위가 확실시 될 때에는 군사적 선제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였다. 이는 부시정부가 이제까지 방어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던 전략으로는 9.11테러와 같은 피해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하에 보다 공세적인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테러를 일삼거나 지원하는 이란, 이라크, 북한을 포함하는 불량국가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들 국가들의 활동을 특별히 주시해왔다. 이같은 불량국가들이 군사적 도발을 시도하거나 대량살상무기를 확산시키는 활동이 확실할 때에는 이를 차단하기 위해 미리 선제 예방조치를 불사하겠다는 전략이다. 미국의 선제 예방전략은 과거의 소극적 방어전략을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대응전략으로 국방혁신의 주요 항목으로써 해외주둔군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II. 부시행정부의 해외주둔군 전략 기저(基底)

부시행정부의 해외주둔군 전략 기저는 대체로 하트-루드만보고서, 앤드류 마샬의 국방전략 검토보고서, 4년주기 국방검토(Quadrennial Defense Review: QDR), 그리고 도날드 럼스펠드국방장관의 ‘탄도미사일 위협평가 보고서’에 의해 그 근간이 형성되었다. 이들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은 부시행정부의 새로운 해외주둔군 전략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1. 하트-루드만보고서

부시행정부의 집권 초기 안보정책에 가장 크고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 문건은 미의회에서 주관하여 3년간 한시적으로 설치했던 국가안보위원회에서 2001년 2월에 완료한 하트-루드만(Hart-Rudman) 보고서 ‘국가안보 전략기획: 변화의 불가피성(Road Map for National Security: Imperative for Change)’이다(Gary Hart & Warren Rudman, 2001). 2명의 전상원의원 게리 하트(Gary Hart)와 워렌 루드만(Warren Rudman)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14명의 상근전문가와 수백명의 비상근 자문위원, 그리고 1,000만불 이상을 투입하여 수행한 이 연구보고서는 미국의 안보정책 전반에 관한 실태를 종합 분석한 후 근본적인 개혁 청사진을 제시하였으며, 부시대통령의 집권 초기 국가안보전략을 수립하는데 전체적인 밑그림을 제공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미본토안보청을 설치해야 한다는 제안은 9․11 테러를 7개월 앞둔 시점에서 시기적으로 매우 시의적절한 정책제안이었다. 9.11 테러공격 후 미의회는 부시정부가 이 정책제안을 수용하지 않은 것은 중대한 실수였다고 지적하였다. 결국 9.11 테러공격이 있고 나서야 부시행정부는 미본토안보청을 설치하였다.

하트-루드만 보고서는 미본토안보청 신설과 함께 다음과 같은 국방성 개혁방안들을 제시하였다. 먼저 국방성의 문제점으로써 1) 방대한 참모조직과 참모활동의 증대로 인한 업무의 중복, 혼란, 지연 2) 많은 국방지원활동들은 아웃소싱과 민영화에 실패하여 엄청난 재원을 낭비 3) 기획예산제도는 효과적인 전략기획을 적용하지 못하고 있음 4) 무기획득절차는 복잡한 법적 규제와 절차로 인하여 혁신적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획득관료제의 병폐는 방산 분야에 재정난을 초래하고 방위산업 자체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트-루드만 보고서는 이처럼 미국의 안보전략 분야 정부조직이 심각하게 비효율적으로 방대해져 있음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하였다. “첫째, 국가안보전략 전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고 둘째, 대통령은 직접 상의하달(Top-Down) 방식의 전략기획절차를 적용하도록 지시하고 안보관련 부서 예산안 제출시 전체 안보예산을 국가안보목표 우선순위에 따라 제출하도록 철저히 통제하며, 셋째, 대통령 안보보좌관과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 NSC) 참모들은 정책기획/집행자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들 본래의 임무인 국가안보활동의 조정 역할로 복귀해야 하며, 넷째, 국가안보회의 참모들은 가급적 언론의 전면에 나서지 않도록 하며, 입법안, 언론보도 및 연설문 작성 등의 기능은 국가안보회의 참모가 아닌 백악관참모에게로 이관되어야 한다.

국방성의 개혁은 대통령, 국방장관, 의회가 직접 관여해야 성공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먼저 신임 국방장관은 국방성, 합동참모본부, 각군 본부, 그리고 지역사령부의 직원을 10-15% 축소해야 한다. 이는 재원절약 뿐만 아니라 신속한 의사결정과 21세기 국가경영의 성공 필수조건인 분권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또한 국방장관은 국방 지원기관들의 활동을 최대한 강화, 재조직, 아웃소싱, 그리고 민영화하여 운영유지비용을 20-25% 절감하는 목표를 세우고 이의 달성을 위해 10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해야 한다. 미래 전력증강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길은 오직 현재 국방예산의 절반에 이르고 있는 운영유지비를 줄이는 방안 뿐이다.

국방성은 이제까지 위협에 기초한(Threat-based) 군사력 건설 절차를 최근의 작전활동경향, 잠재적인 적에 대한 정보판단, 그리고 새행정부가 설정한 국가안보목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군사력건설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방장관은 5대 주요 군사프로그램(전략핵전력, 본토수비전력, 재래식 전력, 해외원정전력, 인도주의적 보안전력)의 범위를 개정해야 한다. 국방성은 원거리 전력투사능력을 개선, 발전시키는데 최우선권을 부여해야 한다.”(Hart-Rudman, 2001, 11-32)

특히 마지막 항목으로 제시된 ‘원거리 전력투사능력의 개선, 발전에 최우선권을 두어야 한다’는 제안은 미군이 과거의 해외 전진배치개념에만 의존하지 않고 미본토에서 전장으로 직접 발진하는 해외원정작전의 확대를 추구하는 개념으로써 부시정부의 해외주둔군 전략의 기저가 되고 있다. 하트-루드만보고서는 기존의 방만한 국방조직구조를 최대한 슬림화하고 국방력 운영체제도 저비용고효율체제로 전환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2. 앤드류 마샬의 국방전략검토보고서(Defense Strategy Review)

다음으로 부시정부의 해외주둔군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국방성 총괄평가국(Office of Net Assessment) 국장 앤드류 마샬(Andrew Marshall)의 국방전략검토보고서를 들 수 있다. 앤드류 마샬은 이 보고서에서 21세기에는 국제 테러, 마약, 대량살상무기 확산, 공해상에서의 해적 등 비정규전 형태의 저강도 분쟁 발발 가능성이 증대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이같은 안보위협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봉쇄 및 억제’ 전략대신에 ‘억제 및 격퇴’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역점을 두어온 2개의 주전장에서 승리한다는 전통적인 세계안보전략 개념보다도 미본토방위를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앤드류 마샬은 1949년부터 랜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던 중 1973년 리차드 닉슨대통령에 의해 국방장관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되어 미국의 냉전기 증강일변도 국방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국방의 기본틀을 저비용고효율 체제로 재설정하여 국방에 대한 범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기반으로 하는 국방정책을 정착시킨 장본인이다.***3) 그 후 앤드류 마샬은 83세인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국방장관 특별보좌역인 총괄평가국장(Director of the Office of Net Assessment)으로 재임명되면서 미국의 국방혁신을 막후에서 이끌어왔다.

앤드류 마샬은 미국 국방의 주요 정책전환기때마다 결정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해왔는데 그의 정책대안들은 대부분 수용되어 정책에 반영되었다. 예를 들면 1960-70년대 첨단전투기 중심의 군사력 건설, '80-90년대 전략폭격기 중심의 전력증강과 90년대 후반 무인기와 C4ISR에 의한 전장가시화 및 센서-슈터(Sensor-to-Shooter)체계 구축 등 주로 혁신적인 기술발전에 부합토록 전략개념과 조직구조를 혁신하여 전투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방안들이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 국방개혁의 모토였던 군사혁신(Revolution of Military Affairs: RMA) 캠페인도 앤드류 마샬의 아이디어였다. 마샬의 정책대안들은 부시정부의 국방정책 수립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미국의 현 국방지도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신속성(Speed), 치명성(Lethality), 산재성(散在性, Ubiquity) 향상에 목표를 두고 있는 국방혁신(Defense Transformation) 캠페인 또한 앤드류 마샬이 선도하고 있는 개념이다(Douglas McGray, 2003, 1). 앤드류 마샬의 이같은 혁신적 전략사상은 미국의 해외주둔군 전략의 기저로써 곳곳에 반영되고 있다. 미국의 안보분야 정책브레인으로서 앤드류 마샬은 글보다는 주로 구두조언으로 국방의 큰 흐름을 전환하도록 선도하였다.

3. 4년주기 국방검토 (Quadrennial Defense Review: QDR)

다음으로는 ‘4년주기 국방검토(QDR)’를 들 수 있다. QDR은 향후 18년간의 국방전략보고서로서 중장기 국방전략을 망라하여 기술하고 있다. 1997년에 발간된 QDR을 보면 미국은 공산세력과의 이데올로기 대결에서의 승리를 자축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 하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존하고 또 새로운 안보질서에 대비하는 군사전략으로 전환할 것을 강조하였다(DoD, QDR, The Secretary's Message, 1997).****4) '97 QDR에 의하면 냉전기 미국은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을 추구하면서 대규모 병력과 재원을 투입하였다. 1985년의 통계에 의하면 미국은 국민총생산액(GNP)의 7%, 정부재정의 28%인 US $400bn을 국방예산으로 사용하였으며, 이 때 현역 총병력은 220만명이었고 그 중 50만명은 해외에 주둔하였다. 방산분야 종사자는 370만명에 이르렀고 US $120bn을 방산분야에 투입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하지만 1985년 이후 미국은 국방예산 38%, 병력 33%, 방산투자 68%를 감축하였다. 그 결과 1997년의 국방예산은 정부재정의 15%, 국민총생산액(GNP)의 3.2%에 해당하는 US $250bn, 총병력 145만명, 그 중 해외주둔병력은 약20만명이었으며 방산 분야 종사자는 220만명으로 감축되었고 방산분야에 투입된 예산도 $44bn으로 감축되었다.*****5)




'97 QDR에서 강조한 주요 국방발전 방안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미육군은 10개 사단을 유지하고 사령부 본부급 이상 제대에서 기간중 15,000명의 병력을 감축하며 90만명에 이르는 예비군도 구조조정을 통하여 45,000명을 감축한다.
2) 해군은 12개 항모전단과 12개 상륙전단을 유지하고 수상전투함을 128척에서 116척으로 감축한다. 공격잠수함도 73척에서 50척으로 축소하며 F/A-18 전투기 확보도 당초 1,000대에서 548대로 축소하고 그 대신 합동타격전투기(Joint Strike Fighter: JSF)를 대체 확보한다. 해외지원함의 구조조정을 통하여 18,000-4,500명의 병력을 감축한다.
3) 공군은 일선비행단의 지휘체계를 강화하고 1개 전투비행단을 예비군으로 전환하며 12개의 전투비행단과 8개의 예비 비행단을 정예화하여 27,000명의 병력을 감축하고 F-22 구매계획도 애초 438대에서 339대로 축소시킨다.
4) 해병대는 3개 원정군체제를 유지하며 신속한 전력투사를 위해 MV-22 가변회전익(Tiltrotor) 항공기 360대를 확보한다.
5) 전체 현역병력을 136만명으로, 예비군을 83.5만명으로 감축하고 군무원을 64만명으로 감축시킨다. 이는 각각 1989년 대비 현역 36%, 예비군 29%, 군무원 42%를 감축하는 것이다.
6) 그 밖에 2회에 걸친 기지 재조정 및 폐쇄(Base Realignment and Closure: BRAC)를 통하여 전체 국방운영의 효율성을 강화한다. 그동안 4회에 걸친 BRAC을 통하여 약 21%의 기지시설을 감축하였으나 병력감축 36%에 비하면 그 성과는 미흡한 수준이다. 향후 2회의 추가적인 BRAC을 통하여 21세기 첨단군으로의 전환을 추진할 것이며, 방대한 기지시설의 재조정은 매년 50억불의 비용절감을 가져올 것이다.


한편 2001년 9월에 발표된 '01 QDR은 국방발전태세 목표를 설정함에 있어서 “미국은 동맹국 및 우방국들의 안보와 이익을 보호하고 유럽, 동북아시아, 동아시아 연안, 중동 및 서남아시아 지역을 포함하는 주요 안보관심지역의 위협들을 완화시키며, 세계적 경제자산과 해로, 항로, 우주 및 통신망과 같은 경제활로를 보호하는 것이다”라고 기술함으로써 해외군사전략의 적극 개입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DoD, 2001, 33).

'01 QDR은 과거 ‘위협에 기초한’ 국방기획에서 ‘능력에 기초한’ 국방기획으로 전환하고 이제까지의 ‘누구와 어디에서 싸울 것인가’에 주안을 두었던 전략개념보다는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주안을 두고 있다. 과거의 ‘보복적 대응’보다는 ‘예방적 대응’에 주안을 두며, 대규모 재래식 전쟁 대비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기습, 기만, 비대칭 전쟁을 획책하는 적들을 식별하고 비대칭 위협에 대한 대응능력을 강화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01 QDR은 지난 20세기에 소련을 봉쇄하기 위해 유지했던 서유럽과 동북아시아 중심의 대규모 해외주둔군 전략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하면서 최근 부상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불특정 다수의 안보위협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체제로의 전환을 강조하였다(DoD, 2001, 33). 이는 구체적으로 해외 전진기지에 배치되어 있는 전력과 원거리 투사능력을 결합하는 형태로써 해외원정군 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동북아와 서유럽만이 아니고 그 밖의 지역에서도 한시적으로 전력을 전개할 수 있는 전진기지들을 더많이 확보하며 원정작전을 위한 해외 전략기동, 부대시설, 군수지원 등의 능력향상을 강조하고 있다(DoD, 2001, 33).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육군성은 신속기동군 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경량화된 기동전투여단을 발전시켜 2008년까지 서유럽부터 배치할 계획이고, 해군성은 서태평양 해역에 항모전단 배치를 강화하고 3-4개의 수상전투단과 순항미사일잠수함들을 추가배치하며, 공군성은 태평양과 인도양에 전진기지를 증가하고 원거리 작전지원을 위한 공중급유 능력을 향상시킬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4년 주기 국방검토’의 근간이 되는 내용들은 많은 부분이 부시정부의 국방정책 수립에 승계되었다.

4. 합동비전서 (Joint Vision 2010 & 2020)

다음으로는 미합참에서 발간하는 합동비전서를 들 수 있다. 1996년 존 카쉬빌리 합참의장 시절 발간된 ‘합동비전 2010(Joint Vision 2010)’은 미국의 군사비전을 위한 기반으로써 인력, 첨단무기, 훈련 및 대비태세, 리더십개발을 통하여 질적인 군대로의 전환을 추진한다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합동비전 2010’에 의하면 21세기 군사작전에서 미합참은 정보우세(Information Superiority)와 기술혁신(Technological Innovation)을 바탕으로 우세한 기동(Dominant Maneuver), 정밀교전(Precesional Engagement), 초점화된 군수지원(Focussed Logistics), 그리고 전차원 방호(Full Dimensional Protection)의 4대 분야에 주안을 두고 이를 기반으로 분쟁의 모든 스펙트럼에서 주도권(Full Spectrum Dominance)을 장악한다는 전략적 비전을 내세웠다(US Joint Chief of Staff, 1996, 19-26). ‘합동비전 2010’은 전력투사능력에 바탕을 둔 군사비전으로써 정보화시대에 걸맞는 기동 및 정밀교전을 강조하였다. 이에 따라 대규모 재래식 전력보다는 첨단 정보화전력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였는데 이는 지난 수년간 미국의 국방개혁을 위한 선도적 개념이 되었다.


한편 ‘합동비전 2020’은 ‘합동비전 2010’에서 제시된 4대 분야별 개념을 바탕으로 평화개입(Peace Engagement), 억제와 분쟁예방(Deterrence & Conflict Prevention), 그리고 전투 승리(Fight & Win)를 추구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US Joint Chief of Staff, 2000, 2). ‘합동비전 2020’은 증대되고 있는 해외원정작전을 위해 다국적군들간의 상호작전호환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증가일로에 있는 국제분쟁을 미국의 군사력만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다국적군을 구성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US Joint Chief of Staff, 2000, 15). 미합참의 합동비전서들이 제시하고 있는 이같은 개념들은 부시정부의 해외주둔군 전략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부시행정부의 해외군사전략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5. 국가안보전략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부시행정부의 해외주둔군 전략에 직접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국가안보전략서로서 2002년 9월 30일에 발표되었다. 국가안보전략서는 미국의 안보를 위한 대테러전 수행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미국민의 자유와 우방국들의 자유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세계 테러조직들을 분쇄하고 그 지도체제를 파괴할 의지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서는 군사혁신과 관련하여 “냉전기 대규모 분쟁을 억제하기 위해 조직된 군 조직은 이제 새로운 적들에 의해 예상되는 도발양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해외주둔미군은 미국이 동맹과 우방국들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의지의 표현이다. --- 다양한 미래 위협들에 대응하기 위하여 미국은 서유럽과 동북아만이 아니고 더 많은 지역에 주둔기지와 한시적 전개기지를 필요로 할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White House, 2002, 26).

국가안보전략서는 미국의 해외 군사개입이 증대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과거 대규모의 해외주둔군 전략을 경량화된 소규모 신속대응군 전략으로 전환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미래 위협은 대량살상무기와 같은 비대칭수단들을 이용한 테러공격이 더 많이 확산될 것이므로 이같은 불특정 테러위협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소규모의 신속기동군을 분산배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또한 과거의 유럽과 동북아 2개의 주전장 중시 전략에서 소규모의 동시다발 위협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분산배치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서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과거 해외에 대규모 군사력배치를 필요로 했던 ‘봉쇄와 억제’ 전략에서 미래의 다양한 불특정 위협에 보다 융통성 있게 대응하기 위한 ‘선제예방전략’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안보전략서는 “미국은 냉전기 대규모 적을 억제하기 위해 조직되었던 군대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복잡다양한 적들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White House, 2002, 28).

대테러전 수행과 관련하여 미국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지만 만일 필요할 경우 미국 단독의 선제공격도 불사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는 방어적 전략에서 공세적 전략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데 이를 위해 미군은 세계 어느 곳이든 분쟁지역으로 신속히 투입될 수 있는 신속기동군 체제로 전환하고 있고 이같은 전략변화에 따라 유럽주둔군은 이미 신속기동군체제로 전환되었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감축 및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는 이유도 이같은 해외주둔군 전략 변화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6. 럼스펠드장관의 ‘탄도미사일 위협평가 보고서’

끝으로 럼스펠드국방장관 자신의 미사일방어전략 개념을 바탕으로 한 국방정책노선을 들 수 있다. 럼스펠드는 1998년 7월 15일 의회가 주관한 9명의 상근위원으로 구성된 미사일위협 평가위원회를 이끌고 7개월간의 연구 끝에 완성한 ‘미국에 대한 탄도미사일 위협 평가’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였다.*6) 이 보고서는 기존의 탄도미사일 위협국가 -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외에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탄도미사일 위협국가로 북한, 이란, 이라크를 추가로 지목하고 향후 5년 이내에 미국의 안전을 위협할 것으로 예견하였다. 이 보고서는 미국정부가 증대되고 있는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비하여 경고 및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더욱 증강시켜야 하며 탄도미사일 방어를 위해 전진방어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Donald H. Rumsfeld, 1998, 3).

럼스펠드장관은 자신이 직접 지휘한 이 미사일 위협평가 보고서에서 제시한 전진방어개념을 근간으로 하트-루드만 보고서와 앤드류 마샬의 정책제안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부시정부의 국방정책을 수립하였다. 해외주둔미군 전략과 관련하여 럼스펠드장관은 유일초강대국인 미국은 월등한 힘의 우세를 기반으로 선제공격과 전진방어전략을 통하여 세계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미국의 안보전략 및 국방정책 문서들을 통하여 채택된 부시정부의 해외주둔군 전략은 그 기본개념에 있어서 냉전기의 ‘봉쇄와 억제’ 개념에서 ‘억제와 격퇴’ 개념으로 전환하고 분쟁 대비개념도 특정지역에 편중되게 초점이 맞춰졌던 과거와는 달리 동시다발 불특정 안보위협들에 융통성 있게 대비하는 개념으로 전환되었으며 이같은 위협들에 보다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하여 해외주둔군을 경량화, 기동화, 고성능화를 목표로 한 신속기동군 체제로의 전환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III. 미국의 해외주둔군 현황

미국의 해외주둔 군사력 규모는 냉전기와 탈냉전기로 구분하여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냉전이 종식되던 시점인 1988년을 기준으로 해외주둔미군 규모는 총 7개 사단, 16개 전투비행단, 3개 항공모함전단을 유럽과 아시아에 중점 배치하였으나 러시아와의 대결구도가 와해된 1999년에는 4개 사단, 7개 전투비행단, 그리고 3개 항모전단으로 그 규모가 현저하게 감축되었다.**7) 해외에 배치되었던 전체 병력 규모도 1988년에는 57만명선이었으나 1999년에는 37만명 규모로 축소되었다(US Air Force, 2000, 3-6).

2003년 11월 기준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세계 130개 국가에 약 25만명 정도로 감축되었다. 이들 중 독일, 영국, 일본의 직접 전투부대가 아닌 부대에 정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상비병력은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들을 모두 합하면 약 35만명 규모가 된다. 이들은 전투작전을 포함한 평화유지활동과 주둔국가의 군대를 위한 군사 교육, 훈련, 연습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 중 독일, 한국,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약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이라크 주둔군과 같이 최근의 분쟁해결을 위해 한시적으로 전개된 군사력도 있다.


이 밖에 7개 여단이 2003년말 이라크와 아프간에 교체 투입되었으며 2개 여단은 스트라이커(Stryker) 장비로의 무장전환을 추진 중에 있어 현재는 작전배치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또한 12만명의 미육군 국경수비대와 예비군들이 동원되어 아프간, 이라크, 그리고 시나이반도에서의 국제감시단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미해군은 3만4천여명의 병력이 해외에 파견, 배치되어 있다. 총 12개 항모전투단 중에서 1개 항모단은 현재 해외에 배치되어 있고 4개 항모단은 배치에 대비한 훈련 중에 있으며 7개 항모단은 훈련중에 있다. 295척의 전투함과 잠수함들 중에서 102척이 현재 해외에 배치 중에 있다.

한편 1990년부터 2003년까지의 기간에 미군의 전체 병력규모는 200만명에서 141만명으로 감축되었고 해외주둔군도 51만명에서 25만명 규모로 축소되었다. 국방예산은 1990년 3,005억불에서 2003년 3,646억불로써 약 21%가 증가되었다. 하지만 해외주둔미군에 대한 예산지원 규모는 가능한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미의회는 2003년 이라크전 수행을 위해 이미 800억불 이상의 추가예산을 지원하였고 이는 '04년 국방예산 편성의 압박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같은 변화는 전체적으로 양적 규모는 감축시키되 국방예산은 증액시키는 전략, 즉 양적 군대에서 질적 군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미군은 지휘통제통신 및 정보감시정찰(C4ISR) 전력과 원거리 정밀타격전력을 집중 육성하였다. 이러한 첨단 군사능력의 향상은 지난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을 통하여 충분히 입증되었다. '91년 걸프전에서는 56만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43일만에 전쟁을 승리로 종결하였지만 2003년 이라크전에서는 27만명의 병력이 투입되어 약 3주만에 전쟁승리를 기록하였다. 미국은 그동안 유지해온 ‘위협에 기초한 군사전략’ 개념을 ‘능력에 기초한 군사전략’ 개념으로 전환하고 해외에 전진배치하던 전략을 본토에서 분쟁지역으로 바로 출격시키는 원거리 정밀타격전 체제로 전환하였다. 또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국가나 테러조직들에 대하여는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는 공세전략개념을 도입하였다.

IV. 주한미군의 미래 전망

주한미군 전략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해외주둔군 전략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의 해외주둔군 전략은 냉전기의 고정배치개념에서 탈냉전기의 신속기동방어 전략으로 전환되었다. 또한 주요 전략전력들은 미본토에서 전장으로 바로 출격하는 본토발진개념을 수용함으로써 해외주둔군 규모를 감축하면서 고기동화, 고성능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해외주둔군 전략에 비추어볼 때 주한미군은 이제까지 거의 서울과 휴전선 사이에 고정배치하는 개념을 유지하여 왔다.

본래 주한미군은 1945년 8월 15일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한반도 남반부에 진주하였다. 1948년 한국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철수를 시작하여 6.25 직전에는 약 500명의 군사고문단만 남기고 모두 철수하였다. 한국전이 종료된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한미동맹은 탄생하였다. 한미동맹은 지난 50년간 한국 안보의 초석으로써 그리고 냉전기 미국의 대공산세력 봉쇄의 최전방으로써 굳건하게 기여해왔다.

하지만 한미동맹에도 불협화음은 있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들의 청와대 기습사건이 터지고 뒤이어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이 벌어졌을 때 미국의 대응조치는 판이하게 달랐다. 한국정부는 미국에 한국방위에 대한 확고한 보장과 군사원조의 증가, 작전권의 이양 및 미북 판문점 비밀회담의 내용 공개 등을 요구하였다(국방군사연구소, 1995, 166).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한미 양국은 국방장관회의를 연례화하기로 합의하였다.

한편 월남전에 대한 미국내 반대여론을 무마하기 위하여 닉슨대통령은 1969년 괌독트린을 발표하고 주한미군 1개 사단을 철수시켰다. 한국은 1973년부터 ‘율곡사업’이란 이름으로 자주국방력 건설을 추구하였으며 점진적인 방위산업 육성으로 구체화되었다.

1977년 1월에 취임한 지미 카터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선언하고 그 중 일부를 시행에 옮겼는데 1977년 42,000명에서 1980년에는 38,000명으로 감축되었다. 한국내에서도 미국이 한국을 포기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고조되면서 이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강구되었다. 그 결과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 4천명 정도를 철수한 상태에서 더 이상의 철군을 잠정 보류하였고 한미양국은 미군철수에 대응한 보완책으로 한미연례안보회의와 군사위원회에서 논의하여 1978년 한미연합사를 창설하였다. 군사전략과 작전 측면에서도 한미양국의 군사지도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안보협력회의가 제도화되었다.

하지만 뒤이어 등장한 레이건 행정부는 이같은 철군반대 여론을 반영하여 주한미군 철수계획을 백지화하고 도리어 주한미군 병력수를 점진적으로 증강하여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에는 45,000명까지 증원되었다. 이 와중에 미의회는 미군의 해외개입전략을 대폭 수정하였는데 유럽주둔미군의 병력감축과 함께 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병력규모를 재검토하고, 특히 한국과 일본의 경제성장에 따른 주한 및 주일 미군의 역할, 임무, 책임을 재조정하도록 국방성에 요청하였다. 이같은 미의회의 요청으로 1989년 8월 넌·워너 법안이 통과되면서 또 다시 감축이 이루어져 현재의 37,000명 규모에 이르고 있다.

넌·워너 법안은 [표5]에서와 같이 주한미군의 3단계 감축안을 제시하였다. 즉, 1990년부터 1991년까지의 1단계에서 7,000명 철수를 결정하였는데 이는 계획대로 실행되었다. 그리고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총 6,500명을 추가 철수하며, 1995년부터 2000년까지는 그때의 전략상황을 고려하여 추가로 감축한다는 구상이었다. 2001년 2월 부시대통령이 이끄는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10여년전 아버지 부시대통령 때에 국방장관이었던 딕 체니부통령과 당시 국방성차관보였던 리차드 아미티지가 국무성부장관으로 복귀함으로써 그 당시 진행되었던 넌·워너 법안에 의한 주한미군 감축계획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2. 인계철선 반세기

주한미군은 한국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이상 한반도의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한수(漢水) 이북에 고정배치되어 더그 반도우(Doug Bandow)의 표현대로 ‘인계철선’ 역할에 충실해왔다. 그동안 해외주둔미군은 신속기동군 체제로 전환되었으나 주한미군만큼은 지난 반세기 동안 아무런 변화없이 고정배치개념을 지속해서 유지해온 것이다. 이를 보는 미국내 여론은 매우 비판적이다. 주한미군을 한수 이남으로 철수시켜 인계철선 이미지를 탈피하고 그동안 미국의 군사원조로 안보무임승차국 이미지를 안고 있는 한국에 안보비용도 분담시키자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것이다. 미의회는 한국이 미국의 새로운 전략개념을 수용하고 주한미군을 한수이남으로 재배치 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주한미군 예산을 지원한다는 기본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주한미군은 한국전 이후 반세기 동안 순전히 한국의 방위만을 위해 기여한 전력이었지 미국을 위한 군사력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수행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냉전기 미소를 양축으로 하는 동서 양진영의 대결구도하에서는 나름대로 공산세계의 팽창을 저지한다는 측면에서 미국의 국익을 위해 상당히 기여했다고 하겠지만 오늘날과 같은 탈냉전 시대에는 그러한 의미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게다가 전 세계에 배치되어 있는 해외주둔미군은 기본적으로 유사시 주변의 분쟁지역으로 즉각 투입할 수 있는 신속기동군 체제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한반도 이외의 타 분쟁지역으로 이동배치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정배치 개념이었다. 따라서 주한미군도 필요시엔 주변의 분쟁지역으로 언제든지 이동배치할 수 있는 신속기동군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보면 ‘주한미군이 한국을 위한 군대이지 어디 미국을 위한 군대인가?’라는 식의 미국측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더그 반도우같은 학자는 한국의 국력이 북한의 20배를 초과한 지금 한국이 독자적으로 북한과 싸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민의 자주적 결단과 자주국방을 저해하고 미국에 대한 영구적인 의존을 조장하고 있는 점, 3만 7천명에 달하는 주한미군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점, 남한의 전략적 가치는 미국 군대와 자원을 희생시킬 정도로 크지 않다는 점 등을 이유로 한미동맹의 파기와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였다(김연호, 2005, 1).

게다가 미군장갑차 사고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을 둘러싼 대규모 반미 촛불시위, 주한미군에 대한 폭행사건 등을 경험한 미 워싱턴정가에서도 주한미군 철수 및 감축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부시정부는 세계 각지에 전진 배치된 미군들을 국방개혁 차원에서 재조정하고 있으며, 한반도에서도 신속기동군 형태로 지상군을 전환시키면서 해공군 전력을 증강시키는 방향으로 대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럼스펠드국방장관은 2003년 2월 13일 상원 군사청문회에서 “서울과 비무장지대에 배치되어 있는 미군 병력을 빼내고 공중과 바다의 전력투사에 더많은 비중을 둘 것”이라고 답변함으로써 지상군을 감축하는 대신, 해공군력을 강화할 의지를 밝힌 바 있다(한국전략문제연구소, 2003, 7).

또한 용산기지의 서울 교외 이전도 추진되고 있다. 한미 양국은 용산기지 이전과 관련하여 오산, 평택지구 대체부지 350만평에 잠정 합의하고 2004년 8월 20일 서울에서 있었던 제11차 미래 한미동맹구상회의에서 용산기지 이전에 관한 포괄협정에 가서명하였다. 2004년 들어 미국은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이 지연되자 주한미군 중 1/3에 해당하는 12,500명을 차출하여 이라크로 파병하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추진하였다. 이는 지난 반세기 이상 인계철선 역할을 수행해온 주한미군의 위상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3. 한미동맹의 주요 현안

지난 해까지 한미간에는 주한미군의 한수이남 재배치와 점진적 감축, 그리고 이라크 파병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식 협상을 지속하였다. 한국의 입장은 그동안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여 서울 이북에 집중 배치되어 인계철선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온 미2사단을 한수이남으로 재배치하는 것은 한반도 기본방위전략개념인 한미연합방위전략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것으로써 한국의 안보에 직결되는 사항이므로 그것이 추진되더라도 중장기 전략기획을 세워 점진적,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라크전 파병과 관련하여 미국은 한국의 소극적인 자세를 불만스러워하였다.***8) 모름지기 동맹국이라면 한쪽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다른 쪽은 당연히 타국가들보다 먼저 나서서 동맹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는데 한국의 입장은 동맹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입장이었다. 그들이 즐겨쓰는 용어로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Friends in need, friends in deed)'라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다 적극적으로 미국편에 서서 대테러전 수행에 동참하기를 요구하였다. 반면에 한국은 중동국가들과의 우호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국제연합 회원국들의 여론을 고려하여 미국의 대테러전을 지원하고자 신중을 기하였다. 돌이켜보면 한국은 1970년대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는데 그 중에는 중동 건설붐이 크게 한 몫 차지하였다. 현재에도 중동지역국가들과의 교역량은 한국경제에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같은 맥락에서 한국은 중동국가들과의 우호관계 유지가 매우 중요한 입장이었다.****9)

이라크 파병을 놓고 한국사회에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되었다. 동맹국가로서 미국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과 아랍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이 있는데 미국의 명분없는 전쟁에 한국이 구태여 개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으로 크게 나뉘어져 갑론을박을 벌였다. 오늘날과 같이 한국사회가 민주화된 상황에서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처럼 정부가 국가여론을 일사분란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같은 점을 고려해볼 때 미국정부는 한국정부의 국론통일과 정책결정 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을 이해하여야 한다.

미국은 이미 주한미군의 일부를 이라크로 이동배치하였다. 미국은 실제로 이라크 주둔군 교체를 위한 가용병력의 부족으로 병력 운용에 애로를 겪고 있으며 이미 예비군 및 국경수비대 전력을 동원하여 이 임무에 투입하였다. 미국은 이라크의 치안유지 임무에 다국적군의 참여를 확대시키고자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데 동맹국인 한국에게는 이라크 북부지역을 담당할 사단지휘본부를 구성할 수 있는 병력과 독립전투여단을 편성할 수 있는 규모인 1만여명의 대병력 파견을 요청하였다.*****10) 하지만 한국의 여론은 파병 찬성과 반대 여론이 논란을 거듭하였고, 2004년 6월 22일 김선일씨 피랍피살 사건을 계기로 반전여론이 확산되었으며 정부는 결국 3,600명 규모의 재건지원부대 파병을 결정하였고 2004년 10월 아르빌지역에 파병하였다.

V. 한국의 전략적 대응 방안

국제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라 미국의 해외주둔군 전략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고 그 일환으로 주한미군 정책이 전환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의 전략적 대응방안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자주국방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처럼 그저 안이하게 대미의존적 국방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세계 12대 경제교역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언제까지고 미국의 안전보장에 안주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범국민적으로 자주국방 의지를 공고히 하고 대미의존적 국방력 체제를 벗어나 자주국방 실현을 위한 실질적인 국방마스터 플랜을 세우고 이를 강력하게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변화하고 있는 한반도 주변 안보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민족의 미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너무나 긴요하다.

돌이켜보면 자주국방은 어제 오늘만의 구호가 아니고 역사적으로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그리고 한국 근대화의 기수 박정희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공통적으로 힘주어 강조했던 민족적 염원이었다. 참여정부가 야심차게 진력하여 추진하고 있는 협력적 자주국방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이 자주국방을 달성하기 까지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많은 부담과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미리부터 인식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정작 그 시점에 이르러 낭패를 면하기 어렵다.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주어지듯이 우리는 민족의 지혜와 열정을 한데 모아 자주국방의 목표와 비전을 설정하고 그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자주국방은 오늘 우리가 바로 시작한다고 해도 그 목표를 달성하기까지는 적어도 10년은 족히 걸리는 대사업이기 때문에 더 이상 늦출 수가 없다.

한미동맹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현안과제이다. 한미동맹은 지난 50년간 이렇다할 대안도 없이 양국이 모두 동맹 자체에만 안주해온 것이 사실이다. 동맹이 건실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안보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동맹에 대한 주기적인 검토와 보완이 지속적으로 제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미 양국은 이러한 노력을 소홀히 하고 상호간의 손익계산에만 열중해왔다. 그러다 보니 ‘인계철선이다’ ‘비용분담이다’ 하면서 동맹 상호간에 피로도만 누적되었고 건실한 미래 대안이 제시되지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50년된 혈맹관계가 위기감마저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 양국은 이제 반세기에 걸친 동맹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경주해야 한다. 그것은 양국이 공동의 방위목표와 전략을 수립하고 상호 이질적인 문화와 입장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연합방위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경제적 부담을 서로 분담하며 서로의 짐을 가볍게 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양국간의 민간 친선 교류협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고 동맹국으로서 공동보조를 취해야 할 때 동맹의 편에 서슴치 말고 서주어야 한다.

VI. 결 언

미국의 해외주둔군 전략은 9․11 테러 이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라크전쟁을 포함한 수차례의 군사분쟁을 통하여 미국은 과거 산업화시대의 대규모 병력중심의 해외주둔군 전략을 벗어나 첨단 정보화시대에 부합하는 소수정예화된 신속기동군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또한 ‘봉쇄와 억제’ 전략에서 ‘억제와 격퇴’ 전략으로, 그리고 본토에서 분쟁지역으로 전투력을 직접 투사하는 본토발진 개념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주한미군도 신속기동군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민들은 주한미군의 이같은 변화가 그동안의 인계철선 역할을 벗어나 한반도 안보에 치명적인 약점을 가져오지나 않을까 우려하면서 주한미군의 급격한 변화를 우려하고 있다.

이같은 안보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한국은 장기적으로 주한미군에 대한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면서 자주국방력 체제로의 전환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세계 12대 경제강국이 언제까지고 주한미군에 의존하여 나라의 평안을 기대해서야 되겠는가. 국제사회에서의 역할과 자주독립국가로서의 위상에 걸맞는 자주국방력 체제를 가능한 신속하게 구축하면서 한미동맹관계를 상호간 원만한 호혜평등적인 관계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참여정부는 협력적 자주국방력 구축을 목표로 한 국방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협력적 자주국방이란 우리나라 군사력에 의한 단독국방이 아니라 활용가능한 연합전력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국방의 주도권을 우리 스스로 행사할 수 있는 국방을 의미한다. 협력적 자주국방을 달성하게 될 때에 우리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융통성에 대하여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고 오랜기간 누적된 동맹피로도도 해소할 수 있다. 이제 5천년 한민족 수난사 속에 민족의 염원이었던 자주국방력 체제를 구축하는데 온국민의 노력을 결집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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