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출발 그리고 추격
전쟁 중 독일 과학자들이 만든 A-4 로켓, 즉 V-2 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으로는 최초로 마하 10 의 속도를 돌파하여 성층권으로 날아가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때문에 이를 응용하여 미국에서 개량하여 제작한 주피터 로켓을 조금만 더 개량하면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충분히 올릴 것으로 독일 출신 엔지니어들과 육군 미사일 개발팀은 굳게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 비록 V-2 는 무기로 탄생하였지만 제작자들은 우주개발을 염두에 두고 개발하였습니다 ]
폰 브라운은 주피터로켓에게 2 % 부족한 마지막 추력을 더하기 위해 위성체 주변에 보조로켓 ( 부스터 ) 을 부착하여 3 단에 걸쳐 서전트 점프식으로 단계적 점화를 하여 추력을 얻는 방법으로 위성이 우주궤도에 진입할 수 있는 초속 7.9 Km 의 제1우주속도에 이르도록 개조하였고 이와 같이 개조된 로켓을 주피터 C 라 명명합니다.
[ 폰 브라운은 V-2 를 개량하여 만든 주피터 로켓을 1단으로 하고
총 3단의 보조로켓을 탄두부에 붙여 추력을 높인 주피터 C를 제작합니다 ]
해가 바뀌어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되고 넉 달이 다된 1958 년 1 월 31 일, 어둠이 내린 한밤중 케이프 케너베럴에 있는 로켓 발사 실험장에서 조명을 받고 있던 주피터 C 형 로켓이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Explorer 1호를 탄두부위에 탑재하고 긴장된 모습으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습니다.
[ 비록 급하게 제작하였지만 주피터 C 로켓이 소규모 위성을
충분히 궤도에 올릴 수 있을 것으로 폰 브라운은 확신하였습니다 ]
불과 50 일전 뱅가드의 처참한 실패를 목도하였던 수많은 관계자들은 초조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피가 마르는 카운트다운이 드디어 0 이 되자 주피터 C 는 굉음과 함께 오렌지색 화염을 뿜어내며 하늘을 천천히 올라가는가 싶더니 가속도를 더 해 순식간 어둠 속 저 높은 곳으로 한줄기 불빛을 보이면서 사라져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 어둠을 가르고 드디어 익스플로러 1호가 발사 됩니다 ]
다음날 아침 미국은 자랑스럽게 익스플로러 1호가 지구궤도를 선회하고 있음을 온 세계에 공표합니다. 인류 3 번째이며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익스플로러 1호는 이로써 지난 넉 달 동안 소련의 공세에 기가 꺾여있던 미국민의 자긍심을 회복 시켜 주었습니다. 대다수의 평범한 미국인들은 비록 시작이 소련에 비해 조금 늦었지만 이제 미국이 우주개발에서도 곧바로 No. 1 이 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 기자회견장에서 익스플로러 1호 모형을 자랑스럽게 들어올리는 개발팀 ]
하지만 익스플로러 1 호는 불과 1 Kg 가 조금 넘는 초소형의 위성으로 스푸트니크에 비한다면 비교가 되기 힘들만큼 작은 위성이었습니다. 반면 비슷한 시기인 1958 년 5 월 15 일 발사된 소련의 스푸트니크 3호는 무게가 1,300 Kg 인 대형 위성으로 지구자기장, 태양복사 관측 장치 등을 갖춘 본격적인 실험 위성이었습니다.
[ 스푸트니크 발사체인 R-7A 와 주피터 C 를 비교한 실측 모형 입니다
초기 우주개발과 ICBM 분야에서 소련이 앞서가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이러한 각론적인 비교는 정책당국자들과 군부지도자들만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었을 뿐이었고 굳이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이러한 세세한 사항을 알릴 필요는 없었습니다. 다만 미국도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추락했던 국민들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정치적으로는 소련의 공세에 대응할 만한 호재가 되는데는 충분하였습니다.
[ 작지만 미국의 즉시 응전으로 치열한 우주개발의 서막이 열리게 됩니다 ]
그 만큼 출발부터 미국은 소련에 한참 뒤져 있었고 이러한 우주를 향한 소련의 앞서기와 미국의 추격은 1970 년 초까지 국력을 모두 투입하다 시피 하는 피 말리는 경쟁으로 불을 뿜게 되었습니다. 새턴 5호 로켓이 개발되어 미국이 달을 향한 유인우주선을 발사하기 전까지 통상적으로 소련이 우주개발사에 있어 기술적으로 미국을 앞서 나간 것으로 평가 되고 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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