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의 본명은 병연(炳淵) 호는 난고, 자는 성심이며 1807년 (조선 순조 11년) 3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회천군 회암리에서 안동 김씨 김안근의 세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김삿갓은 20세 때 한살 연상인 장수 황씨와 결혼 하였고 그해 영월 동현에서 실시한 백일장에 시제 " 논정가산 충절사탄 김익순 좌통 우천"에 대하여 가찬 군수 정씨를 예찬하고 부사이자 방어사이던 조부 김익순을 호되게 비판하는 글을 지어 장원을 하였다. 그러나 후일 모친으로 부터 집안의 내력을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에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 22세 때 아들 학균을 낳은 뒤 이름을 김란으로 바꾸어 한때 공부를 하기도 하였으나 24세 때에 차남 익균을 낳고는 가족들을 남겨 둔채 방랑의 길에 올랐으며 그때 부터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며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고 다녀 김삿갓 또는 김립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금강산을 시작으로 제주도까지 전국을 방랑하면서 서민들의 아품과 양반들의 잘못된 생활상을 시로 옮겼으며 54세 때 전라도 화순군 동북면 구암리에서 쓰러져 병고에 시달리다 집으로 돌아와 1863년(철종 14년) 3월29일 57세로 생을 마감하여 마을 동편 산록에 안장 되었다가 3년 후 차남 익균이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으로 이장 하였다. 김삿갓 박물관
박물관 마당의 시비
길에서 만난 김삿갓 모습을 한사람
외나무 다리
산행 대신에 잔설이 남아 있는 비포장 도로를 걸어면서
계곡 물에는 얼음이
이제사 콩 탈곡을 하네요
돌아 오는 길에 차창에 비친 남한강
후기 : 2006년 12월 3일 일요일 올 가을 들어서는 가장 춥다고 하여 겨울 등산복을 내어 입고 아이잰 까지 준비하여 강원도와 충청도 그리고 경상도를 가르는 삼도봉과 임금님이 다녀 갔다는 전설이 있는 어래산을 가기 위하여 따듯함이 느껴지는 버스에 올랐다. 남한강과 좁은 계곡을 구비구비 돌고 돌은 버스는 어래산을 고개 넘어에 두고는 간밤에 내린 눈으로 얼어 붙어 빙판이 된 길을 더이상 갈수가 없어 근처에 있는 마대산으로 가려고 버스를 돌려 김삿갓 계곡을 지나 김삿갓 박물관 마당에 도착하였고 외나무 다리를 건너 마대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이번에는 입산금지라 산행을 할수 없다고 하여 굳은 다리라도 풀어 보려고 계곡 옆으로 잔설이 남아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면서 산골 마을의 맑은 정취와 "뽀드덕"하며 발아래에서 들려오는 상큼한 소리를 한그릇 담고는 박물관 주차장으로 돌아와 입장료가 1인당 이천원인 박물관을 관람하고 고속도로에서 내려 싸가지고 온 두유 맛이 나는 검은 콩 막걸리와 머묵탕으로 한결 추워진 날씨와 무언가 부족한 마음을 추서리고는남한강으로 지는 저녁 노을을 차창으로 바라보다 잠이 들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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