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의 가르침을 믿고 받아들이고, 배우고 익히며
자기의 덕을 닦아서 성현의 경지에 도달하는 과정과 방법에 관한 이론.
천지와 인생을 관통하는 이법(理法)·법칙을 상제(上帝)의 도(道)라고 했으며,
〈중용 中庸〉·〈대학 大學〉에도 천도(天道)·천명(天命)에 대한 주장이 있다.
이 천도를 외경하고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수양론의 연원이 된다.
원래 〈서경〉의 단계에서 수양은 하늘의 덕을 자기 몸에 체현하여
천명에 대응해야 하는 자(者)인 천자(天子)에만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천자의 지위나 정치를 얻을 수 없었던 공자가 이것을
개개인의 내면적인 것으로 끌어내리면서 천자의 덕·수양이 일반인에게까지 확대되어갔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이것을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모두 수신으로써 근본을 삼는다"고 표현했다.
따라서 공자는 수양을 강조하고,
이를 배움이라고 불렀다.
그는 학문이란 성인이 되는 것을 배우는 것이며,
그것은 일상적인 의식주생활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 수양의 방법에 대해서 〈역경 易經〉에서는
궁리진성(窮理盡性)으로서 명(命)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천명·천도에 합치하며
〈중용〉에서는 수양의 길은 다름 아닌 성(誠)을 생각하고 이와 같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다.
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복성(復性)·복초(復初)라고 했는데,
이는 현실의 인생이 인욕과 물욕에 가려져 천리·천도를 벗어나고 있으므로
공자에게 그것은 선왕의 예(禮)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
맹자(孟子)는 그것을 사람에게 차마 할 수 없는 마음[不忍人之心],
사단(四端)을 깨달아 확충시키는 것이며,
그 방법은 진심(盡心)·존심(存心)에 의해 자기의 내면에 돌아와서
본래부터 있는 성품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수양론이 체계화된 것은 송대의 성리학(性理學)에서인데,
공자가 말한 경(敬)을 중요시했다.
수양·학문의 내용은 〈근사록 近思錄〉에 구체적·체계적으로 보이는데,
이 〈근사록〉을 일관하는 것은 '거경궁리'(居敬窮理)이다.
이것은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제거한다"는 것으로서
거경궁리에 기초한 수양으로
인욕·물욕을 통해 드러나는 현실적인 악의 상태로부터
본래의 완전함에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수양론을 보다 심화시킨 것은 왕수인(王守仁)이다.
그의 언행록인 〈전습록 傳習錄〉에서는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제거하는 공부를 진지하게 추구하고 있다.
그는 그 방법으로 지행합일(知行合一)·치양지(致良知) 등을 논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황(李滉)은
주희와 같이 거경궁리를 수양의 요체로 삼았다.
그는 〈천명도설 天命圖說〉에서 인간의 본성을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으로 구분하고,
모든 사람은 본연지성을 가진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현실적으로는 기질의 맑고 흐림에 따라
사람마다 차이가 생겨 상지(上智)·중인(中人)·하우(下愚)가 생긴다고 했다.
여기서 중인·하우를 기질의 변화에 의해 상지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그 수양론의 요점이었다.
그는 천리의 보존과 인욕의 억제를 통해 공(公)과 의(義)를 추구하고
사(私)와 이(利)를 멀리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거경을 도학의 요점이라 했으며,
성현의 모든 가르침이 경(敬) 한 글자로 요약된다고 했다.
한편 이이(李珥 )는 〈격몽요결 擊蒙要訣〉·〈학교모범 學校模範〉에서
그의 수양론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안으로는 존심궁리(存心窮理)를,
밖으로는 수기치지(修己致知)를 주장했다.
그는 〈답성호원서 答成浩原書〉에서
기를 본연의 기와 본연이 아닌 기로 구분하고,
수양을 통해 각 개인이 자신의 기를 다스려
본연의 기, 즉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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