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서울 목동의 특목고 전문 H학원 앞. 승용차 10여대가 서 있다. 잠시 후 수업이 끝난 중3 학생들은 하나 둘 승용차에 올라 타고 서둘러 귀가했다. 학부모 김모씨는 “대원외고를 준비 중인데 원서접수가 코앞이다. 늦게까지 공부하는 걸 보면 안타깝지만 주변 엄마들의 경쟁이 장난이 아니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들은 새벽 1시 반까지 학원에 남아 자습에 열중했다.
올해 특목고 진학 열기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서울·경기의 경우 11일부터 시작되는 특목고 원서접수를 앞두고 막바지 눈치경쟁이 치열하다. 9800여명이 입학정원인 전국의 외고와 과학고 지원자는 지난해 3만2000여명이었으나, 올해는 4만~5만명에 이를 것으로 학원가는 예상하고 있다. 정부가 ‘특목고 죽이기’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과학고를 준비 중인 딸을 둔 김정신(가명·43·서초동)씨는 “대입정책이 아무리 변해도 대학 잘 가는 ‘방법’은 결국 특목고 입학”이라며 “아이를 특목고에 보내야 다른 엄마들한테 기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원들은 이 덕에 유례없는 ‘특목고 특수’를 누리고 있다. 서울의 특목고 전문학원들이 추석 연휴 기간 연 특강에는 서울은 물론 지방 학생들도 대거 몰려들었다.
일부 학원들은 이 틈을 이용해 고액의 특목고 특강을 개설, “지나친 장삿속 아니냐”는 비난을 사고 있다. 특목고 전문 P학원은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 4일 특강(하루 6시간)을 개설하면서 30만원을 받았다. 또 다른 특목고 전문 E어학원은 추석 4일 특강(하루 3시간)에 18만원을 받았다. 학부모 김모씨는 “학원들이 올해 경쟁이 세질 것이라며 학부모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면서 “비용이 큰 부담이지만 열기가 장난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때 잘나가던 특목고 열풍은 2년 전 한풀 꺾인 적이 있다. 당시 정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2008 대입부터 ‘내신 위주의 선발’을 강조하며 사실상 ‘특목고 죽이기’에 나섰다. 학부모들은 불안에 휩싸였고 잘나가던 특목고 인기는 수그러들었다.
▲ 특목고 연합설명회 인파 경기도 평촌의 유명 특목고 전문 학원이 지난달 19일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개최한‘서울·경기 특목고 연합설명회’에 3000여명의 학부모들이 몰려 입시전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 |
하지만 올 들어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특히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이 2008 대학입시에서 논술 비중을 확대키로 발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주요 대학의 국제계열 확대, 서울대 특기자 전형에서의 과학고 약진, 대학에서의 영어수업 확대, 차기 정부에서의 교육정책 변화에 대한 기대심리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일형 대원외고 교감은 “학부모들 대다수가 이제는 특목고에 보내도 대학입시에서 전혀 불리할 것이 없다는 인식이 확고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J학원이 지난달 20일 개설한 외고 특강반은 하루 만에 700명 정원이 찼다. 서울 대치동 J어학원 문모(32) 실장은 “서울대 요강이 나온 후 하루 수십 건씩 상담이 늘고 있다”며 “올해엔 중위권 학생들마저 ‘특목고 열풍’에 휩쓸리는 분위기”라고 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외고준비를 했다는 박성희(16·서울 도곡동)양은 “TV나 신문에선 외고에 가면 내신이 불리하다고 하지만 오히려 분위기는 업(up)되고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올해 경쟁률이 역대 최고일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돈다. 경기도 평촌의 유명 특목고 전문 학원이 지난달 19일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개최한 ‘서울·경기 특목고 연합설명회’에는 무려 3000여명이 몰렸다. 주최측 관계자는 “2000명 정도 예상했는데 너무 많이 와 열기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예년 같지 않은 특목고 열기는 초등학생 단계로까지 급속히 퍼지고 있다. 초등 5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최모씨는 “특목고에 들어가려면 5~6년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게 학부모들의 생각”이라며 “4학년 때부터 시켰다는 학부모들도 많아 은근히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국에 특목고 11곳 신설
서울 국제고·과학고 등 2009년까지 설립
2009년까지 전국에 외국어고, 과학고, 국제고 등 11곳의 특수 목적고의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11곳이 모두 설립되면 세 종류 고등학교의 숫자는 60곳이 된다.
15일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에서는 국제고 1곳과 과학고 1곳 등 2개교가 2008년 3월 설립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인천에 3곳, 강원·제주·경북·충남·울산·경남 창원에 1곳씩 특목고의 신설이 각각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전국 외국어고·과고·국제고는 모두 49개(영재학교 1곳 포함)다.
서울의 국제고는 종로구에 18개 학급 규모로, 서울 과학고는 구로구에 24개 학급 규모로 지어지고 있다.
인천에는 2008년 3월 중구에 15개 학급 규모의 국제고가 문을 열 예정이고 가칭 미추홀외고와 미추홀과학고는 2009년 3월을 목표로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경북 경산에는 3개 학급 규모의 과학고가 내년 3월 개교하고, 충남 외국어고는 18개 학급 규모로 아산시에 문을 연다. 울산에는 외국어고나 국제고 중 한 곳을 2009년까지 설립하기 위해 추진 중이며, 강원도는 외국어고, 제주도는 국제고의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경남 창원시에도 과학고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입력 : 2006.10.16 00:28 28'
서울지역 6개 외고 65%가 서울·연세·고려대 입학
올해 서울지역 6개 외고
서울 지역 6개 외고 학생 10명 중 6.5명꼴로 이른바 SKY대학(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입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외고 출신의 명문대 입학률이 높은데다, 2008년 입시부터 논술 비중이 높아지면서 한때 주춤했던 특목고 열풍이 올 초부터 또다시 불붙고 있다.
본지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임해규 의원으로부터 단독 입수한 ‘2006년 특목고 학생의 대학별 합격 현황’에 따르면 대원·대일·명덕·서울·이화·한영(가나다순) 등 6개 외고 학생들의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3개 대학 합격률은 64.8%였다.
SKY대학 진학률은 한영외고가 76.7%로 가장 높았다. 이어 명덕외고 76.3%, 대원외고 72.9%, 대일외고 59.8%, 서울외고 50.7%, 이화외고 40.9% 순이었다. 여기에 서강대, 교대, 성균관대, 한양대, 이화여대 입학 등 상위권 대학을 합할 경우 진학률은 더 올라간다.
대원외고는 서울대 77명, 연세대와 고려대 각각 123명이 합격했다. 한영외고는 서울대 28명, 연세대 99명, 고려대 90명이 각각 합격했다.
서울과학고와 한성과학고는 고교 2학년 졸업 후 조기진학 관계로 카이스트(KAIST) 입학자 수가 가장 많았다. 131명이 졸업한 서울과학고는 서울대 34명, 카이스트 50명, 한국정보통신대(ICU) 8명, 연세대 17명, 포항공대 2명이 합격했다. 127명이 졸업한 한성과학고는 서울대 19명, 카이스트 38명, 포항공대 12명, 연세대 30명이 각각 입학했다.
입력 : 2006.10.03 22:11 39' / 수정 : 2006.10.04 02:2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