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필 김형효교수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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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학교 교육에서 철학은 인기가 없어서 거의 시들기 일보직전의 일이 되었다 한다. 철학이 취직하는 일과 별로 상관없는 내용을 강의하기에 학교교육에서 배척받는다고 한다.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예부터 따져볼 때 언제 철학이 취직하는 데 직접 도움이 되는 지식을 공급한 적이 있었던가? 우리의 철학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철학이 인생에 필요한 활구(活句)가 되지 못하고, 사구(死句)의 형해로 잔존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 아닌지? 물론 여기서 활구와 사구의 개념은 선가(禪家)에서 쓰는 의미가 아니고, 그냥 일상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겠다. 인생 자체가 의문투성이인데, 어찌 철학적 생각이 푸대접받겠는가?
그러나 철학은 세상보기의 수준과 차원을 말한다. 세상보기의 수준이 낮으면 높은 차원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철학은 세상보는 차원을 높이는 공부이기도 하다. 어떤 과학자가 일가견을 갖고 있으면 그의 과학은 철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깔고 있고, 예술가가 철학이 빈곤하면 그의 예술은 금방 유치해진다. 그런 측면에서 철학은 확실히 세상을 보는 마음의 눈을 깊게 한다. 철학은 마음과 생각의 깊이를 가능케 한다.
깊이가 있는 정신문화는 쉽게 울렁거려 어지럼을 타지도 않고, 가볍게 흔들거리지도 않고, 더러운 물이 섞여도 스스로 자정능력을 갖춘다.
우리는 지금 무엇보다 마음과 생각의 깊이를 필요로 한다고 느껴진다. 도처에 악을 쓰고 흥분하여 지르는 큰소리가 횡행하고, 얕은 행동이 정의의 사도인 양 경박하게 칼을 휘둘러 착한 마음을 움츠리게 한다. 선의지와 도덕을 외치면서 비도덕적 행위를 자행하는 위선이 난비하는 이런 풍토를 어찌 걱정하지 않겠는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까 겁이 난다. 사유의 깊이는 이데올로기의 경직으로 죽어가고, 자유가 자유의 이름으로 억압당하는 배리(背理)가 일어나기도 한다. 천함이 고귀함이라고 양적으로 우격다짐하려는 양화(量化)의 지배시대를 획책하고 있다.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 한다. 열광적으로 모인 사람들은 단세포적으로 생각하도록 길들여진다. 그런 이들은 가장 반철학적이다. 대중은 깊이 사유하지 않는다. 깊은 사유는 양화의 지배를 방해한다.
서울신문사가 새해 들어 장기 연재물로 기획,5일부터 시작하는 ‘테마가 있는 철학 산책’은 이런 상황 속에서 태어났다. 우리 모두는 상황 속에 던져져 있다. 우리의 정신적 상황을 구원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 또한 지혜 아니겠는가? 우리 다 함께 행복하게 살아보자.
■ 약력
●1940년생
●경남 마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문리과대학 철학과 졸업
●벨기에 루뱅대학교 철학최고연구원 졸업(철학박사)
●공군사관학교 인문학과 조교수 역임
●서강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부교수 역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부원장, 한국학대학원장 역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역임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 수상 및 저서/ci0000
▲제10회 열암학술상 수상▲제7회 율곡학술상 수상▲노장사상의 해체적 독법▲물학, 심학, 실학▲하이데거와 마음의 철학▲하이데거와 화엄적 사유▲사유하는 도덕경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