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 Manet, Edouard
(1832~1883)
법무관 관료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브라질행 선박의 견습 선원으로 일을
하면서 상서로운 첫발을 내딛었다. 부모의 반대를 극복하고 토마 쿠튀르의 스튜디오에서 6년간 수학했다. 1859년 살롱전에 낙선하자 개인전을 열어
엄청난 물의를 일으켰다. 이러한 양상은 변화는 있었지만 그의 생애 내내 반복되었다. 마네라는 인물에게서는 선동적이거나 반전통적인 면모를 찾아볼
수 없지만 그의 작품은 끊임없이 비평가들의 약점을 건드렸다. 기법상으로 보면 피사로, 모네와 같은 인상파에 비해 좀 더 고전적이었지만, 이들간의
영향관계는 상호적이고 다층적이었다. 마네는 인상파 그룹의 정신적인 지주로서의 위치에 있었고 당시 많은 신문들이 인상파의 거두로 그를 표현하긴
했지만 마네는 한 번도 인상파전에 출품하지 않았다.
모네 Monet, Claude
(1840~1926)
르아브르의 소부르주아였던 가족들은 그가 미술가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애를 썼다. 어린 시절 부댕의 격려를 받았고, 르누아르 등과 함께 글레르의 스튜디오에서 공부했다. 1870~1871년 런던에 머물렀으며 그
이후에는 파리 북부인 아르장퇴유와 베퇴유에서 살았다. 1883년 고향인 노르망디의 지베르니 쉬르엡트에 정착했다. 경제적으로 절박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잦았고, 뒤랑-뤼엘을 통해 1880년대에 가서야 그런대로 벌이를 하기 시작했다. 명성은 1889년 조르주 프티 화랑에서 열린 로댕과의
2인전 이후 찾아왔다. 그와 풍경과의 신비적인 교감(30대에 인물화에서 손을 완전히 뗐다)은 말기에 추상의 미개척지로 그를
이끌었다.
드가 Degas, Edgar
(1834~1917)
세잔과 마찬가지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미술에 대한
폭젋은 지식과 소양을 지닌 애호가였기에 그는 일찍부터 예술적인 분위기에 접할 수 있었다. 앵그르의 제자로 역사화가로서 출발했으나 색채, 테크닉,
구성상의 대담하고 기나긴 실험작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인상주의전에 참여하긴 했지만, 그 자신은 인상파로 분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고전주의의 영향으로 날카로운 관찰을 통한 훌륭한 솜씨의 데생과 사물형태의 윤곽을 명확이 선묘하려느 것, 그리고 강한 명암 및 채도 대비의 효과
등에 치중하였다. 바른말 잘하는 독신남으로, 1876년 동생 르네의 파산때문에 상속받았던 유산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렸다. 사망할 때는 거의 실명
상태였다.
르느와르 Renoir, Pierre-Auguste
(1841~1926)
견습 도기화가에서 출발한 그는 글레르 스튜디오에서 자신이 갈 길을
발견했지만 쿠르베, 디아즈, 코로, 그리고 동료 학생인 모네, 바질르, 시슬레의 영향을 받았다. 인상주의의 선구자이다. 1880년대에는 작품의
중점이 영원하고 견고한 상태로 바뀌었고, 당대의 삶을 다루던 주제도 뒤편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40세에 21살이나 어린 알린느와 결혼하였다.
63세이던 1904년에는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화가의 한 사람이라는 영광을 얻었다. 말년에는 심한 관절염에 의한 고통으로 더이상 붓을
잡을 수 없게 되자 붓을 팔에다 고정시키고 팔레트를 무릎 위에 놓고 여전히 제작을 하였다.
피사로 Pissarro,
Camille (1830~1903)
어머니는 크레올인이고 아버지는 유대계 프랑스인으로 버진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학교공부는 프랑스에서 했고 1855년 프랑스로 영구 이주했다. 사실주의자임을 자처한 그는 1860년 살롱전과 1863년 낙선전에 풍경화를
선보였으며 모네, 르느와르, 시슬레와 더불어 인상주의 기법을 전개했다. 1870년대에는 파리 동북부의 퐁투아즈에서 농민들의 생활을 그렸고, 근처
오베르에 살던 세잔과 함께 작업했다. 언제나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그는 에라니-쉬르-엡트와 파리를 오가며 보내던 60대에 이르러서야
유명해졌다. 말년에는 그토록 애착을 갖고 그려왔던 시골 풍경들에 비견할 만한 도시 풍경들의 연작을 시도한다.
모리조 Morisot, Berthe
(1841~1895)
궁정 회계위원회 수석고문의 딸로, 기샤르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뛰어난
능력과 조숙함을 보여주었다. 1868년 마네를 알게 되고 그의 작품 <발코니>를 위해 포즈를 서주었다. 1874년 마네의 동생인
외젠과 결혼하였다. 인상주의전에 매번 출품했고 1886년의 마지막 전시회 준비도 주로 맡아서 했다. 그녀의 딸 쥘리는 앙리의 아들인 에르네스트
루아르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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