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 전국시대의 인물
가운데 韓非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韓 나라의 왕족이었다. 기원전 3세기에 그가 쓴 책이 「韓非子」이다. 韓非子는 또한 韓非를 높여 부르는
존칭어이다. 이 책은 55편22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韓非子는 말더듬이로서 말은 서툴렀지만 글은 잘 썼다. 「韓非子」에 실린 문장은 단순
명쾌하여 지금 읽어보아도 요사이 감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 여러 가지 생각하게 하는 바가 있다. 그는
君主, 즉 위정자가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고 신하들을 어떻게 부리며 백성들의 마음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주로 조언과 충고를 하고 있다.
그는 군주가 法治를 엄하게 실천함으로써 권력기반을 확고하게 하고 신하들의 발호를 견제하여야만 백성들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고 富國强兵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韓非子는 유교를 숭상하는 유자(儒者)들은 글로써 법을 어지럽히고 협자(俠者), 즉 무사들은 무기로써 금명(禁命)까지 마음대로
범하였으며 평화시에는 영예있는 사람을 높이다가도 사태가 급하면 무사들을 쓰게 되므로 그들의 맡은 직무가 평소 배운 것과는 달라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경향을 개탄했다.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하기 전에 「韓非子」를 읽고서 큰 감명을 받았다. 진시황은
"아, 이 사람을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구나"라고 감탄했다. 진나라가 한나라로 쳐들어 간 이유도 韓非를 얻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한나라 왕은 韓非子를 중용(重用)하지 않았는데 진나라가 쳐들어 오자 화평사신으로 진시황에게 보냈다. 韓非子는 여기서 친구를
만났다. 韓非子와 이 친구는 성악설(性惡說)의 주창자 순자(筍者)의 제자였다. 친구는 말은 잘했으나 글은 韓非子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자기보다 실력있는 韓非子의 등장에 위협을 느낀 그는 韓非子를 모함했다. 그리하여 韓非子는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이국의 감옥에서 독살되었다. 이
친구가 李斯(이사)이다. 참모는 지도자를 잘 만나야 뜻을 펼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하겠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 군주론, 정략론, 전략론 등을 써 근대 정치학의 문을 연 마키아벨리도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플로렌스에서 불우한
나날들을 보낸 관료였다. 마키아벨리도 끝내 자신의 웅대한 뜻을 펴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의 꿈을 담은 「군주론」은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의 참고서가 되었다. 마키아벨리도 군주의 힘을 강화하여 신하들을 눌러야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은 약
1천7백 년의 시차(時差)를 가진 사람이지만 나라를 부강시키고 국민들을 배불리 먹이려면 군주가 힘이 있어야 한다는 데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서양의 한비자인 셈이다. 책 「韓非子」의 도입부는 신하가 군자에게 진언(進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설명하는 난언(難言)이란 제목의 글이다. 그 요지는 이러하다. 「말을 지나치게 잘 하면 믿음이
가지 않고, 빈틈이 없는 말은 옹졸하게 들리며, 事例를 많이 인용하여 쉽게 설명하면 내용이 공허하고, 요점만을 말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가면 무례하게 들리며, 듣는 이의 마음을 살펴 그럴 듯하게 설명하면 군주는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고 불쾌감을 갖게 된다. 시경(詩經)이나
서경(書經)에 있는 가르침을 무조건 인용하는 사람은 지금 세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만을 말하고 있는 꼴이다. 이것이 내가 함부로 말함을
두려워하고 어떻게 하면 나의 진정이 받아들여질까 항상 근심하는 이유이다」 韓非子는 孔子와 孟子의 유교가
관념적인 도덕론만 주장하고, 老子-莊子의 도교는 허황한 이야기만 퍼뜨린다고 비판했다. 그는 법치의 확립과 경제발전은 나라를 다스리는 핵심이라고
파악했다. 이런 韓非子의 실용적 통치설을 이어받은 동양정치가로는 진시황(秦始皇), 한무제(漢武帝), 등소평(鄧小平), 이광요(李光耀),
박정희(朴正熙) 같은 이들을 꼽을 수 있다. 「韓非子」는 권력자들의 교과서라고 하여 유학자(儒學者)로부터 비판을 많이 받았다. 도덕을 앞세운
유교적 정치노선이 주류(主流)를 이룬 동양에서는 韓非子 계통(系統)을 이단시(異端視)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이 천사이면 민주주의가 필요하지
않고 법률도 필요없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인 한 韓非子의 법치론은 영원히 유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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