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지난 10월 20일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을 전면 검토하고 재조정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을 전담하던 김윤규 부회장의 해임을 비난하면서 밝힌 내용이다. 현대의 대북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북한과 사기업간의
관계지만 남북관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북한의 대외행태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현대와 북측과 조만간 대화가 성사되어 금강산 관광 등 대북사업이 정상화 될 것으로 전망되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번 기회에 몇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첫째, 북한이 한국의 인사문제에 개입하는 모습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곤란하다. 김 부회장 해임 때문에 현대의 대북사업을 재검토한다는 것은 사기업에 대한 노골적인 인사개입이다.
사기업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장충식 대한적십자사 총재, 홍순영 통일부장관, 조성태 국방부장관 등이 재임 중 북한으로부터 해임요구 내지는 공격을 받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얼마 후 그들은 자리를 물러났다.
상대방이 기피하는 인물은 협상 성사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전략상 교체할 수
있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해임을 요구 했을 때 받아들이는 것은 상대의 간섭을 촉발하고 스스로의 자존심을 팽개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둘째, 현대의 대북사업에 대한 북한의 보복적 행태는 쌍방간 합의서도 이해관계에 따라서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북한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현대는 지금까지 북한에 약
1조 50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가 자금압박을 받은 주된 이유는 북한에 대한 과잉투자로 적자를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남북경협 관련 시민단체인 남북포럼은 ‘그동안 대북사업에 참여한 1천여개의 회사가 부도가 났거나 중도포기로 멍들어 회사 간판만
유지하는 상황’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동안 대북 사업은 수익성이 약하기 때문에 현대를 제외하고 타 기업에서는 일반적으로 투자를 꺼린 것이
사실이다.
몇몇 대기업은 정부로부터 대북사업을 권고 받았으나 채산성 때문에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독 현대만이
밑 빠진 시루에 물 붓듯 대북사업에 열중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은 ‘내 전재산을 북한에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할 정도로 대북사업에 강한
집념을 보였다.
현대는 2000년 8월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와 ‘7대 경협합의서’를 체결하여 30년간 사업의 독점권을
보장받았다. 쌍방간 합의서를 특정인에 대한 인사문제를 빌미삼아 일방적으로 무효화시킨다면 앞으로 누가 북한을 믿고
투자하겠는가?
셋째, 현대와 북한간 사이가 벌어진 것이 인사불만이 아닌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이를 밝히는 것이 건전한
대북사업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 이방호의원이 국회 통일외교안보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북한이 현대중공업에서 건조중인 해군 잠수함
설계도를 요구한 것을 현대의 현정은 회장이 거부했기 때문에 관계가 나빠졌다고 한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정부는 이를
유언비어 수준의 이야기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일축하지 말고 사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뜬소문이길 바라지만 만의 하나 사실이라면 대북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 북한의 실체를 똑 바로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주민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껴안고 가야
한다. 헐벗고 굶주리는 북한주민을 동포애를 발휘하여 도와주어야 한다. 이를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 줄때 도움
받는 사람의 체면을 생각해서 지나치게 생색을 내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대북사업도 마찬가지로 북한의
자존심을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북한에 질질 끌려 다니는 대북사업은 더 이상 안 된다. 현정은 회장이 ‘국민 여러분께 올리는 글’에서
밝힌 “비굴한 이익보다는 정직한 양심을 택하겠다”는 말을 대북사업의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야 할 것이다.
(Konas)
홍 득 표 (인하대 교수, 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