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對北 관련 자료

金正日의 戰士들이 '트로이 木馬'에서 쏟아져나온다

鶴山 徐 仁 2005. 10. 29. 02:11
金正日의 戰士들이 '트로이 木馬'에서 쏟아져나온다

2005.10.28
지금부터 약 3천 2백 년 전, 그리스 연합군과 전쟁 중이던 트로이 사람들은 자기네 성 밖 바닷가에서 거대한 목마(木馬) 하나를 발견한다. 이것이 ‘트로이의 목마’다. 목마의 바깥에는 시논(Sinon)이라는 이름의 사람이 달랑 하나 있었다. 그리스인이었다.

전날 밤 그리스 연합군은 전의를 상실했다는 듯이 함대와 함께 먼 바다로 퇴각했다. 첩자인 시논은 그 목마가 안전한 것이며 성 안으로 들여 놓으면 트로이 사람들에게 행운을 갖다 줄 것이라고 선전한다. 자기는 그리스 군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이라면서 그리스를 저주한다.

트로이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성 안으로 목마를 옮겼다. 그리고는 축하주들을 퍼 마시고는 잠에 떨어졌다. 그 날 밤, 목마의 뱃속에 들어 있던 오딧세우스를 비롯한 그리스의 맹장들이 나와 트로이의 성문을 안에서 연다. 성 밖에는 물러갔던 그리스 함대의 정예부대가 벌써 돌아 와 있었다.

이것이 9년간이나 그리스의 침략에 성공적으로 항쟁해 온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 트로이 가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고 만 옛일의 전말이다. 트로이의 남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갔다. 여자들은 전리품으로서 노리갯감이 되었다. 그들의 생명과 재산과 자유를 통째로 그리스 사람들에게 내 준 것이다.

그리스 군대가 만들어 트로이에 놓아두었던 목마를 ‘그리스의 목마’라고는 부르지 않고 ‘트로이의 목마’라고 불렀던 것은 싸움에 이긴 그리스 쪽의 작명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북의 김왕조(金王朝)를 위해서 비슷한 복무를 하고 있는 남한 좌파의 그물조직을 ‘김왕조의 목마’라고 부르려 한다.

‘김왕조의 목마’는 이미 남한 자유민주주의의 도성 안으로 들어와 있다. 그 뱃속에서는 친(親) 김왕조 사상으로 무장한 좌파 용사들을 쏟아 내고 있다. 그들은 학교, 노동조합, 시민단체, 문화계, 언론계, 종교계, 국회, 정부, 그리고 수다한 각종 위원회에 소속하여 ‘남한 점령 전쟁’을 싸우고 있는 사상(思想) 전사다.

노태우 정권 시절만 하더라도 남한에는 좌파임을 자인하는 사람이 감옥 바깥에는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수많은 좌익 투사들을 그 속에 담고 있는 ‘김왕조의 목마’를 곳곳에 상륙시켜 놓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좌파라고 지목 받으면 생사람을 빨갱이로 몬다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모르쇠를 울부짖는 은신·위장 위주의 제1단계 시절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좌파가 목마에서 나와 사상적 남한 점령 전쟁을 공개적으로 그리고 당당하게 싸워서 지금처럼 승리를 목전에 둘 수 있게 되기까지 이른 것은 우파가 황당한 백치 증후군에 걸린 탓이었다. 전쟁에서 적을 모르고 나를 모르면 백전백패한다고 손자병법은 말한다. 김영삼 시절에 들어 우파는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것 보다 더 아래 수준으로 미끄러졌다. 적을 적인 줄도 모르고 전쟁을 전쟁인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강정구 교수는 6.25전쟁이 김일성의 ‘통일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그의 이 말에 동의한다. 다만 이 통일은 김왕조에 의한 남한 점령을 먼저 의미한다. 그는 이 통일이 미국의 개입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 했다고 말한다. 그 말에도 나는 동의한다. 그는 그 때문에 미국을 증오한다. 그러나 나는 그래서 미국에 감사한다.

6.25 전쟁에 실패한 다음 김일성은 군대를 동원하는 침략전쟁으로서는 미군이 개입하는 한 백전백패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전쟁의 모양을 바꿨다. 공산 간첩과 통일 사상을 침투시켜 남한을 적화시키겠다는 새로운 전쟁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남한에 누가 있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남한 우파는 오래 동안 망각하고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 사상 전쟁의 결과는 군사 전쟁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김왕조는 전력을 다하여 이 전쟁을 싸우고 있다. 남한 좌파는 이 전쟁에서 김왕조의 전사다. 이 전쟁은 남한 인민의 생사가 걸린 전쟁이다. 그들이 파괴하고자 하는 것은 남한의 법치적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다.

존 로크에 의하면 자유에는 개인의 생명과 재산이 포함된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국가란 것은 이런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며, 국가 권력은 개인의 생명, 재산, 자유를 지키는 일 이외에는 어떤 것을 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자유를 지키는 것 이외의 모든 다른 권력 행사는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법치적 민주주의 헌법은 인민의 생명, 재산, 자유를 지키기 위한 국가의 의무와 국가 권력의 한계를 밝혀 놓는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그런 정신을 가진 헌법이다. 법치적 민주주의는 인민의 생명, 재산, 자유를 보호하자는 정치제도다.

민주주의 가운데는 이런 법치주의와 반대되는 것이 있다. 법이 아니라 목소리 큰 자가 좌지우지하는 포퓰리즘 민주주의가 그 한 예다. 법 대신에 공산당이나, 북한처럼 부자세습 김왕조가 독재하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거짓으로 붙인 전체주의는 다른 하나의 예다.

지금 좌파세력이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포퓰리즘 민주주의다. 이런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없는 유토피아를 내걸고는 그것을 위하여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는 기도와 전략을 서슴없이 실천한다. 결국은 전체주의로 흘러들어 갈 것이다. 그것이 김왕조의 의도다. 개인의 자유가 없어지면 바로 그곳은 생명을 걸고 탈출해야 할 수용소가 된다. 지금의 북한이 그렇지 않고 무언가.

국가연합이니 연방국가니 하는 형태로 북한 체제에 흡수되어 자유를 빼앗긴 수감자로서 살거나 조만간 그곳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탈출해야 할 통일을 원하는가, 통일이 없더라도 자유를 지킬 수 있다면 분단쯤은 즐겁게 참고 견딜 것인가, 이것은 남한사람이 목숨을 걸고 선택해야할 명제다.

이 선택이 없었기 때문에 김왕조가 남한의 자유를 말살하려고 통일이라는 위장된 이름을 걸고 남한의 좌파를 사상 전사로 삼아 우파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이 전쟁을 전쟁인 줄도 모르게 된 것이다. 이 전쟁의 좌파 전사들은 남한 인민의 생명, 재산, 자유를 겨냥하여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데도 이들을 적인 줄도 모르고 저들의 요구대로 ‘상생’을 베풀게 된 것이다. 비겁한 통일이냐 당당한 자유냐. 이것은 남한 우파가 오래 전에 그 선택을 결정했어야 하는 문제다.

김영삼 시절, 우파는 이승만과 박정희 두 사람의 권위주의 독재가 빚었던 부분적인 전비(前非)에 대하여 때 아닌 자학적인 과잉 비판과 참회를 다시 시작하였다. 이 두 사람의 과실은 각각 4.19 혁명과, 그 후 총격 살해로 이어진 부마(釜馬) 사태라는,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충분한 의식(儀式)을 곁들여 역사 속으로 보냈는데도 말이다.

이것은 우파가 좌파에게 보내는 꼬리치기의 시작이었다. 선거에서 좌파의 표를 얻어 보려는 이런 꼬리치기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전쟁을 당하고 있으면서 전쟁인 줄 모르고 사격을 받고 있으면서도 적인 줄도 모르는 것에서 또 한 걸음 나아간 것이 교전 중인 적으로부터 표를 얻어 내려고 그들에게 꼬리를 치는 것이다. 어리석음은 비굴을 잘 동반한다. 그들이 표를 줄 리가 만무한데도 말이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전공(前功)은 묻어버렸다. 북의 김왕조에 비하면 그 비(非)는 사소하고 그 공(功)은 엄청나게 큰데도 말이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공 가운데 첫째는 김왕조로부터 남한 인민의 자유를 지킨 일이다. 남한 안에서 이 두 사람이 짓밟은 인민의 자유는 그들이 김왕조로부터 지킨 자유에 비하면 매우 미미하다.

박정희의 경우 그가 남한의 경제개발에 기여한 공적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역시 김왕조의 침략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시장경제 체제를 지킨 일이다. 오늘날 남북 간의 50배에 달하는 국내총생산 격차가 그것을 말해 준다. 그 밖에 그가 경제를 간섭하거나 독려한 일들은 자유시장적 자원 배분에 왜곡을 일으켜 다소나마 오히려 경제발전에 해를 끼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김영삼 정권 이후 간을 키워 가면서 남한 좌파가 들고 나온 간사한 전략은 좌우 구별 그 자체에 대한 반대였다. 미소간의 동서냉전이 끝났으므로 좌와 우를 구별한다는 것은 시대착오 속에 사는 수구 꼴통들의 냉전적 사고방식의 잔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남한 좌파의 제2단계를 확실하게 정착시킨 것은 ‘햇볕 정책’이었다.

그즈음 좌파는 ‘개혁’과 ‘상생(相生)의 정치’라는 득의에 찬 상징 조작적 언어로 우파를 농락하는데 성공하였다. 개혁은 좌파가 우파를 숙청하는 작전 수행이었다. 상생은 이런 숙청을 우파는 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웃는 낯까지 지어 가며 받아 들여야 한다는 공갈이었다.

독재, 부패, 빈부격차, 정경유착 등이 개혁 대상의 원죄로 매겨졌다. 이런 원죄는 우파의 속성으로 규정되었다. 우파는 심리적으로 여기에 항복해 버렸다.

우파가 이렇게 쉽게 항복한 것은 좌파의 정체를 알지 못 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우파는 좌파가 벌이고 있는 것이 남한 체제의 목숨이 달린 전쟁이란 점을 경시했다. 우파는 남한 좌파가 김왕조의 동력과 조타(操舵)를 전달 받는 구동장치라는 점에 대하여 속수무책이었다. 좌파의 전쟁 목적이 남한에서 법치적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 제도를 완전히 걷어내고 남한을 점령하여 김왕조 통일을 이루는 데 있음을 망각하였다.

남한 좌파의 제3단계 시기는 노무현 정부 출범이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들의 활약은 방자를 극하면서 다양하다. 국회가 노무현 탄핵을 의결한 것을 국회의 쿠데타라고 이름 붙여 연일 국회 앞에서 그 철회를 협박하는 시위를 벌였다. 우파는 또 한 번 자진하여 이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좌파에게 꼬리를 쳤다.

미군전차에 의한 두 여학생 교통사고 사망 사건을 두고 야간 촛불 시위를 통한 미군 철수 운동을 해를 두고 대규모로 벌였다. 통일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끌어 내리려고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헌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들고 나오는 패가 있다.

재벌 해체 운동을 벌여 그것을 계기로 기업과 시장을 사회주의적 체제로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다. 투명성이니, 반독점이니, 부의 세습 반대니, 경제 정의니 하는 이름을 붙이고 말이다. 전교조 교사들은 초등학교에서 반기업, 반시장, 반미주의를 가르치고 있다. 대기업 노조들은 파업과 실력행사로 기업을 초토화하고 있다.

지금 그들은 남한을 김왕조가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일부로 바꾸려는 작전을 적극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김왕조의 목마’에서 나온 자들이다. 지금 남한은 북한의 김왕조와 사상 전쟁 중이다. 남한 인민의 자유와 번영,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헌법이 김왕조의 사상 전사들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받고 있다. 이 전쟁에서 지면 남한은 지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이 전쟁은 우파로 하여금 용감히 맞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가 어떤 지위에 있건 간에 남한 인민 전체의 생명, 재산, 자유를 파괴하려는 적에게는 자유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남의 자유를 파괴할 자유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 자유주의가 가진 최대의 원칙이다. 그런 자에게 주는 형벌은 그의 자유를 탈취하는 것뿐이다.

김왕조의 남한 점령을 선전 선동하는 자유 파괴자에게 이런 선전 선동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 자유의 원칙에 맞다. 국가보안법은 김왕조의 사상 공격으로부터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제도를 지켜주는 단 하나 남은 자유의 보루다. ‘김왕조의 목마’를 구성하는 분자들에게는 이 법을 가차없이 적용해야 한다.


강위석(전 중앙일보논설위원.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