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충남 공주... 무령왕릉

鶴山 徐 仁 2005. 10. 29. 13:00
충남 공주... 무령왕릉
  2005
김신묵     

나는 충남 공주를 생각하면 부끄러운 고백을 안할수가 없다.

오래전 무심코 충남 공주를 들렸을때.... 여기 저기 웅진(熊津) 상호나 간판이 유독 많았다.

그래서 생각한것이... 아! 이곳출신으로 재벌의 반열에 오른 웅진(학습지, 코웨이등)의 조OO 회장이 공주사람이라는 자부심...

그래서 너도나도 웅진(熊津)이라는 간판을 내걸었구나~~

ㅎㅎ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공주가 백제의 옛 수도... 웅진(熊津)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던 이 무지몽매함이라니???...ㅠㅠㅠ

그리하여 그뒤로는 여행이란 아는만큼 보이고, 보인만큼 느낄수 있다는 생각을 좌우명으로 갖기에 이르렀다.

 

공주하면 생각나는 또 한가지...

왜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신라는 경상도, 백제는 전라도....하는 식으로 이분법을 갖게되는지?

얼마전 영화화되었던 황산벌을 보아도 그렇구....

물론 신라, 백제 두나라의 백그라운드가 경상도, 전라도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역사적으로 백제의 수도는....최초는 한성(서울)에서 => 충남 공주 (웅진) => 충남 부여 (사비성)....으로 이어졌다.


한성이 백제의 도읍이었던 475년 초겨울 고구려 장수왕은 3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백제를 침공하였으며

결국 한성은 함락되고, 백제의 개로왕은 체포, 피살되었는데 백제는 이때 이미 한번 망했다고 봄.

지금의 공주땅인 웅진성(熊津城)에 새로운 국가의 터전을 급히 마련하였으며
그후 516년에 성왕이 부여(사비)로 천도, 국호를 남부여라 칭하였으며

마침내 660년 7월 신라와 당나라 동맹군은 백제 공격에 나섰으며, 백제의 의자왕은 항복, 당나라로 압송되고 백제는 끝났다.

이상이 대략 700년에 못미친 백제의 역사, 도읍의 이전을 살펴본것이다.

즉, 공주는 한성을 고구려에 빼앗기고 남으로 밀려난 백제가 부여로 천도하기 전에

임시적인 성격으로 머물었던 곳이라는 생각이다.....모두 5대왕에 걸쳐 64년간 공주에 머물렀다.

 

아무튼 삼국시대를 통털어 누구의 무덤인지 확실히 밝혀진것이 무령왕릉이라니

커다란 기대를 걸고 무령왕릉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실제의 무령왕릉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굳세게 잠그어놓았고

그 아래에 모조 왕릉을 만들어놓고 관람객들을 받고 있는데...

실제로 왕릉에 있었던 국보급 보물들은 왕릉에서 조금 떨어진 공주박물관에 전시되어있으니

진짜 왕릉은 잠겨있어 못보고...가짜 왕릉을 볼수 있되....결국은 텅비어 있거나 모조품만 보여주고

진짜 보물들은 박물관에 가야 볼수 있다는것인데...

우스운것은 가짜라고 할수 있는 모형고분은 입장료가 1,500원

진짜가 전시되어있는 국립공주박물관은 입장료가 400원이다............ㅎㅎ

 

아무튼 무령왕릉은 송산리 고분군, 즉 송산리에 있는 고분들중의 하나로

1971년에 지금의 고분들을 정비하다가 우연히 발견하여 조사되었는바

앞서 말한대로 삼국시대 무덤들중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명기한 유일한 릉이다.

 

<송산리 고분군>

 

위 사진에서 앞에 보이는 언덕은 5호분, 6호분, 무령왕릉이 있는곳이며 마주보이는 입구는 6호분이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4개의 봉분이 1, 2, 3, 4호분이 나란히 있는 모습이다.

이것들은 모두 실제이지만 꽉 잠겨있어 지형만 볼수 있을뿐...

그 아래...고분군 모형을 만들어놓고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어 조금은 맥이 풀린다....

 

무령왕릉 외에 나머지 6개의 고분은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아마도 이미 모두 도굴된 상태로 조사되었기에

주인을 밝힐수 있는 아무런 근거조차 남아있지 않아서일게다...

무령왕릉도 거기 있는지 모르고 있다가 배수로 정비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되어서 고스란히 조사되었기에 망정이지

존재자체를 알고 있었다면 아마도 이미 몽땅 도굴되었을터이고 결국 누구 무덤인지 모르지 않았을까???

 

송산리 고분군을 둘러보고 차량으로 5분거리쯤에 있는 국립공주박물관으로 향하였다.

2004년에 새로지어 개관한 박물관은 아담하면서도 깨끗하고 조용했다.

1층은 무령왕릉실....국보급 보물들이 실제 전시되고 있었고

2층은 웅진문화실....공주일대의 문화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말은 국립공주박물관이지만 무령왕릉 박물관이나 다름없었다.

(이 박물관이 무령왕릉과 너무 멀어서 실패라고 유흥준교수가 지적했었는데, 그럼 먼저 박물관은 시내 어디였던가?)

 

<국립공주박물관>

 

박물관에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석수, 목관, 왕과 왕비의 부장품들이 진품으로 전시되어 있으며

무령왕릉 전시실에만 모두 108종 2,906점이라고 한다.

눈길을 끄는것은 누구의 무덤인지를 적어놓은 지석(誌石)....결정적 단서가 된 근거이며~

이 지석에 쓰여있는 기록이 '삼국사기'와 단 하루도 틀리지 않는다는 사실...

즉, 삼국사기는 정확한 기록이라는 반증이라는것이다.

또한 재미있는것은 왕일지라도 그 무덤을 쓰기위해서 토지신에게 땅을 샀다는 매지권....돈 1만닢을 주었다는 기록이었다.

 

유물들에 대한 상세설명은 기행문으로서 무의미하며...

답사여행시에 박물관을 돌아보는 일정을 권장하기 위하여... 남겨둔다~~

 

 

한가지 재미있는것은

최근에 스포츠 영웅 2명.......박찬호화 박세리가 모두 이곳 공주 출신이다.

박찬호 공원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송산리 고분군 앞... 문화회관 마당에는 박세리의 첫 우승을 조각한 조형물이 서있었다.

 

<세리 박.....조형물>

 

 

 

 

 

 

 

 

 

 

 

 

백제 무령왕비 나이는 30대?

유물서 치아·생선뼈 새로 발견
신형준기자 hjshin@chosun.com
입력 : 2005.02.15 18:06 06'


 


▲ 최근 발견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사람의 치아 조각(위 사진)과 생선 등뼈. 무령왕비 나이와 백제 왕실에서 제사 때 썼던 생선 종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백제 왕들의 제사상에는 어떤 생선이 올라갔을까? 백제 무령왕(서기 462~523)의 왕비는 30대 후반의 젊은 여성이었을까?

국립공주박물관(관장 신창수)은 15일 “1971년 발굴된 무령왕릉 출토 유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치아 8조각과 생선 등뼈로 추정되는 유물 12조각을 새로 찾았다”며 “형태와 성분 분석 등을 통해 치아가 누구의 것인지, 생선 등뼈가 어떤 종류인지를 분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971년 처음 발굴된 백제 무령왕릉은 아직도 숱한 비밀을 안고 있다. 발굴이 졸속으로 이뤄지면서 놓친 부분이 많은 데다 최근 고고학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연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유물도 하룻밤 만에 급하게 발굴한 무령왕릉 유물을 수습한 뒤, 무덤 내부 바닥의 흙을 쓸어담아 놓은 상자에 담겨 있어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박물관측은 새로 발견된 치아 8조각 중 여성의 치아가 있다면 무령왕비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관측했다. 치아로 나이를 관측하는 것은 닳은 정도(마모도)와 발육 정도 등으로 치는데, 지금까지는 사랑니만 나왔기 때문에 왕비가 30대인지 50대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왕릉에서 생선뼈가 나온 것도 처음인데 이번에 나온 것은 0.4㎝ 길이의 등뼈 조각으로, 조기인지 도미인지 구체적인 생선명을 유전자 감식 등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