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지역을 답사할때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서산 마애삼존불이었다.
서산마애삼존불은 국보 84호이다.
그런데 서산과 지척에 있는 태안에도 마애삼존불이 있다해서 찾아나섰다.
서울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서산 I.C.로 내려서서 서산市를 지나 계속 서해바다쪽으로
가면 태안읍이 나타나고
읍을 벗어날무렵쯤에 있는 태안여고를 지나 603번 지방도를 따라 6백m만 가면 마애삼존불/태을암 입구
안내판을 보게 된다.
이곳은 표고 284m의 백화산인데 정상에는 군부대가 위치해있고, 그 중턱즈음에 보물 제 432호인
삼존불이 계시다.
이 마애불은 서산의 마애불과 마찬가지로 7세기 무렵에 조성됐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단순, 소박미가
두드러져
서산 것보다는 좀더 앞선 시기에 조성됐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이 마애불은 백제 최초의
마애불이라고 할 수 있다.
높지는 않지만 가파른 경사길을 올라가 태을암입구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내려가니 바로 암자
앞마당이다.
눈을 들어 올려다보니 암자 부속건물과 함께 삼성각과 마애불 보호각이 보인다.
삼성각....삼성각이란 우리의 토속신앙이 불교와 합쳐진 산물의 하나로 절집의 부속건물로 많이
세워지는바
산신(각), 칠성(각), 독성(각)을 하나의 건물에 함께 모시는 이름이다.
<고즈넉해보이는 빛바랜 삼성각>
삼성각앞으로 올라가니 마애삼존불을 서산과 마찬가지로 보호각을 지어 그 안에 모셨음을 알수
있었고
보호각 밖에는 '감모대(感慕臺)'라는...돌로 만든 탁자와 의자모양이 있어 눈길을
끈다.
그 아래는 비록 물길은 말라있지만 '일소계(一笑溪)'흐르는 물과 고이는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연못에서 윗쪽으로는 사람키보다 조금 높은 암벽이 있는데 그 바위에 '태을동천(太乙洞天)'이라고 새겨져
있다.
'태을동천(太乙洞天)'....익히 들었던 말인데 갑자기 그 뜻이 떠오르지 않는다.
'태을(太乙)'은 신선을 의미하는 듯 하기도 하고... 증산도에서 쓰이는 말인것도
같고~~
'동천(洞天)'이라는 말도 꼭 동굴이 아니라도 하늘아래 좋은 동네라는 의미인것도
같고~~
이들을 묶어서 '태을동천(太乙洞天)'이라는 말은 어느 종교단체에서 쓰는걸 본적이 있는듯
하다.
<'태을동천(太乙洞天)'이 새겨진 바위암벽...
이 태을동천(太乙洞天)은 1800년대 후반에 김규황이라는 분이 쓴 글이라고 전해지며,
그아래 일소계(一笑溪)라고 새겨진 글 역시 몇 년 전에 작고한, 그의 자손인 김윤석씨라는
분의 작품이라 한다>
일소계(一笑溪)라니??......한바탕 웃음이 흐르는 계곡? 한번 웃는 그런
계곡?
일소계와 마애삼존불을 모신 보호각 사이에 있는 '감모대(感慕臺)'가 또 눈길을
끈다.
처음에는 저무는 해, 즉 석양을 느낀다는 의미로 해석을 했었다.....慕를 暮로 보았던
까닭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저물 暮가 아니고 사모할 慕 ...(마음 心이 추가됨)
사모하는 마음을 느끼는 자리라면???
여기 돌탁자를 사이에 두고 돌의자에 앉아서 어떤 사모의 마음을 ???
<'감모대(感慕臺)'>
태을동천(太乙洞天)이라고 새겨진 바위는 대략 높이 3.5m의 자연석이며
같은 면에
'가락기원일천팔백십삼년갑자(駕洛紀元一千八百十三年甲子)'와 '김해김씨장보품(金海金氏藏譜品)'
' 계해맹추해초김규항제(癸亥孟秋海超金圭恒題)'등이 음각되어 있다.
일소계(一笑溪)라 쓰인 곳에는 작은 연못이 계곡과
연결되어 있으며 8각의 감모대는 높이 850mm이다.
일소계(一笑溪)와 감모대(感慕臺)에 눈길이 팔려 정작 이곳 주인(?)이신 삼존불을 나중에야
찾다니....ㅠㅠㅠ
태안 마애삼존불 역시 서산 마애삼존불처럼 보호각안에 모셔져있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바위벽에 새겨진 것을 가만히 보면 좌측이 석가여래, 우측에 약병을 들고 서있는 약사여래가 있고
그 가운데에 관음보살이 작은 모습으로 서 있는 형태로서, 이것이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란다.
석가가 약사보다 약간 큰 것은 그만큼 깨달음이 큼을 표현한 것이고,
가운데 관음보살은 석가와 약사의 저만치 뒤에서 따라옴을 원근법으로 작게 보이도록 조각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가운데의 작은 보살이 조금 깊게 조각되어, 정말 저만치 뒤에서 따라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애삼존불을 모신 보호각...>
<보호각 안에 모셔진 마애삼존불>
혹자는 일소계(一笑溪)와 감모대(感慕臺)....운운하니까 언듯 풍류가 느껴지는 이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이곳이 바로 조선시대 불교탄압의 현장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즉, 당시 유생들이 이곳 감모대(感慕臺)에 앉아 맞은편 삼존불 부처님께 돌을 던져 맞히는
놀이를 하고
한 문중의 족보 보관 장소로 일소계 일대를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맞은편 바위 윗편에 새겨진 바둑판은 이런 유생들이
남긴 훼불의 흔적이라고도 한다.
태을동천이 새겨진 암벽의 윗쪽으로 올라가보면 바위의 바닥면에 실제로 바둑판이 음각되어
있다.
신선이 바둑을 두던 자리인지?
누군가의 주장처럼 불교를 우습게 보던 조선시대 유생들이 놀던 자리인지???
<바위바닥에 음각된 바둑판>
마애삼존불을 둘러보고 태을암을 벗어나 다시 산 아래로 내려오려하니 눈길을 끄는
바위하나...
기묘한 형상으로 서있는데....'백조암'이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왜
백조암인지???
<백조암>
서울에서 이곳 태안까지 온 김에 바다를 보자하니
그 유명한 천리포, 만리포 해수욕장과 함께 남쪽으로는 요즈음 주목받는 파도리 해수욕장이
있고...
더 아래로 내려가면 안흥항이다.
망설이다가 백화산아래에서 그냥 북쪽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이름하여 학암포.
조선시대부터 중국의 상인들이 왕래하면서 교역하던 무역항으로서 질그릇을 많이
수출하였으며
1968년 해수욕장 개장이후 학을 닮은 바위가 있다하여 학암포라고 부른다고 한다.
<학암포 해수욕장 전경>
학암포로 가는길에 이정표가 세워진곳....재미있는 조형물이 하나 서 있었다.
밀국낙지유래비...이곳의 이름난 음식인 밀국낙지에 대한 유래비를 세운것이다.
학암포를 둘러본후 다시 태안읍내로 내려와 그 유명한(?) 만리포로 가서
다녀간다는 증명사진 한장 찰칵~~
만리포사랑 노래비가 있어 사진에 담으려니까....노래비앞주차금지 표지판도 보기
않좋구~
표지판을 무시하듯 세워놓은 곶감파는 트럭이 웬지 코믹해보인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