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제 벽골제 (碧骨提)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둑이다.
<삼국사기>에 축조 연도가 330년(백제 비류왕 27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벽골제는 길이 3.4km, 높이 4.4m, 상단폭 7.5m, 하단폭 17.5m이고, 관개면적이
금만평야를 비롯 정읍, 부안 일부 등
1만ha에 달했던 제방으로 수문도 5개나 있었는데, 수문의 이름이 각각 수여거, 장생거, 중심거,
경장거, 유통거였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둑의 한가운데를 파서 수로를 만들었기 때문에, 둑은 두개로 잘려지고 수문도 3개가
사라지고,
현재 벽골제는 2500m의 제방과 장생거와 경장거 2개의 수문만이 남아있다.
<벽골제 표석과 누각... 뒤에 보이는것은 쌀농사(稻作) 박물관이다>
벽골이란 김제의 백제 때 지명인 볏골을 한자로 옮겨 적은 것이다.
<중앙 수문.... 장생거>
<용두레... 논에 물대는 장치>
<무자위.... 용두레와 마찬가지로 논에 물 대는 장치>
<입석에 감아놓은 정월 대보름 줄다리기 동앗줄.... 일년내 감아놓고 풍년을
빈다>
벽골제에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기리는 문학비가 서있다.
아리랑은 김제지역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 벽골제 보수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조선 태종 때의 수리공사는 장정 1만 명에 사무직 300명이 동원된 대규모 공사였다.
그 공사의 규모를 말해주듯,
포교리에는 신털뫼(草鞋山)와 되배미가 남아 있다.
신털뫼는 벽골제 공사에 동원되었던 일꾼들이 신에 묻은 흙을 털거나 낡은 짚신을 버린 것이 쌓여 언덕을 이룬 곳이며,
되배미는 수많은 일꾼을 일일이 셀 수가 없어서 500명이 들어가는 논을 만들어
되로 되듯이 한꺼번에 500명씩 세었다는 이야기가 얽힌 논이다.
★★★ 벽골제에 얽힌 단야의 사랑이야기 전설도 있다.............
■ 심포항과 망해사(望海寺)
김제시 서부 지역에서 서해를 향해 돌출한 진봉(進鳳)반도는 북으로 군산(옥구)반도, 남으로는
변산반도 사이에 끼어 있다
물이 빠지면 갯벌이 30Km가 넘는다고 하지만, 이제 몇년후에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아주 작은항이다
<심포항 전경>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절들이 꽤 있습니다.
양양의 낙산사나 여수 향일암, 남해 금산의 보리암, 정동진 바로 위쪽의 등명 낙가사,
서산 어리굴젓으로 유명한 간월도의 간월암 정도가 쉽게 떠오르는 곳이지요.
이런곳의 절들은 산속의 절과는 또다른 맛을 주는 곳이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조망도 좀더 특별한
생각이 들고요...
망해사는 백제 의자왕 2년(642년) 창건된 아주 오래된 절입니다.
오랜 역사에 걸맞지 않게 규모가 초라한 편이지만 바다를 굽어보는 해변 언덕에 위치해 있어,
절 자체보다는 서해를 바라볼수 있는 아름다움이 좋았습니다
망해사를 정점으로 심포 어항 등 서해연안에서는 가장 바다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 곳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서해의 낙조(落照)가 보는 이의 넋을 빼게 하고 있다.
<망해사 전경.... 아주 작은 절이다>
<극락전.... 망해사도 대웅전이 없다>
<바다를 향해 자리잡은 범종각...>
<진묵대사가 세웠다는 락서전(樂西殿)>
<절 밖의 부도탑은 가꾸지 않아서 잡초가 무성하다........>
★★★ 망해대
망해사 뒤편의 전망대....망해대에 오르면 확 트인 시야만큼 가슴이 시원해진다.
서쪽과 서남쪽은 망망대해요, 동쪽으로는 우리 나라 제일의 곡창 김제 만경평야가 아스라히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스라히 멀게 보이는 고군산열도까지 새만금 방조제에
갇혀버릴터~~~
<전망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심포항>
<전망대에서 바라본 넓은 평야>
망해사를 나와 귀경길에 오르려는데
절 밑 큰길가에 보이는 오래된 이발관 간판........ 친숙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