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엽 빼어난 풍류객이자 천재 방랑시인인 김삿갓...
그의 본명은 김병연(金炳淵)이며,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로서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그는 평생을 삿갓을 쓰고 방랑생활을 했기때문에 김삿갓이라 불리웠다 하며
1807년(순조 7년)에 경기도 양주땅에서 김안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그가 다섯살 되던해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때
선천부사로 있던 할아버지(김익순)가 반란군과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여 역적의 집안이 되어 멸족의 화를
입게 되었으나
후에 정상이 참작되어 벌은 감해졌으나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자식들이 멸시받는것이
싫어서
신분을 감추고 영월땅으로 옮겨서 살았으니 나이어린 김삿갓은 그러한 집안사정을 모르고
자라났다.
그는 5세에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열살 전후에 이미 '사서삼경'을 통달아혔고 시를 짓는 재주가
뛰어났으며
그의 나이 20세, 결혼하던 그 해에 영월 고을 백일장에 나가 장원을 하였으나 그 내용이 할아버지인
김익순을 욕하는 내용이었는바 그때의 시제(詩題)가 '가산군수 정시의 충성스런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정도였음을 통탄해보아라'였는데 그는 그가 자신의 할아버지인줄도 모르고
'백번을 죽여도 아깝지 않은 비겁자'라고 경멸하는 시를 써서 장원급제를 한것이다.
이후 어머니로부터 집안의 내력을 전해듣고 역적의 자손이며,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때문에 처자식을 둔채
방랑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방랑생활 4년만에 집으로 돌아와 1년정도 묵기도 했으나 다시 집을
떠났으며
중간에 찾아온 아들을 따돌리기를 여러번,
마침내 몸이 쇠약해진 김삿갓은
전라도 화순 어느 선비의 집에서 5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으니
아들 익균이 유해를 영월로 옮겨
장사지내고 와석리에 묘를 쓰게 된것이다.
방랑시인으로 전국을 누비던
김삿갓은 방랑초기에는 지방 토호나 사대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나름대로 품위를 유지했으나 점차 변두리로 밀려나면서 서민들속에서 섞여 날카로운 풍자로 상류사회를 희롱하고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의
애환을 읊으면서 일생을 보내게 되니 특히 부정부패를 일삼는 세도가와 거만한 부자들의
허풍을 마음껏 풍자하고 조롱하는 그의 시에는 산과 들, 그리고 사람들에 얽힌 그의 시는 한수한수
철학이 깃들어져 있으며 풍자성이 강한 즉흥시를 남긴것으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단종이 모셔져 있는
장릉으로 유명한 강원도 영월...
그 영월군 하동면에 김삿갓
생가와 묘소등 유적지가 있어 그곳엘 다녀왔다.
영월읍에서 88번 지방도를
타고가면 고씨동굴이 나오고 조금 더 지나가면 하동면이 나오는데
면사무소를 지나자 바로 우측으로
김삿갓 계곡이 안쪽으로 6Km정도 이어지면서 유적지가 나타난다.
<하동면에 들어서자 다리
난간 조각이 이곳이 김삿갓 고을임을 알려준다>
<88번 도로에서 우측으로 접어드는 김삿갓 계곡의 초입에 서있는 동상과
노래비...>
ㅇ 도로 분기점의 표지판
ㅇ 김삿갓 동상
ㅇ 김삿갓 노래비.....죽장에 삿갓쓰고 방랑 사암처언리~~~ ♪ ♬
1933년에 명국환 선생이 부른 노래이다.
<묵산 미술관....김삿갓 계곡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유적지보다 먼저
나타난다>
ㅇ 묵산 임상빈이 운영하는 개인미술관으로 찻집과 전시관이 있으며 개울을 건너는
다리가 멋스럽다...
김삿갓 묘역이 이내 나타난다.
묘역의 입구에는 이런저런 조형물들과 한시들이 조각품으로 전시되어 있어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김삿갓의 묘소는
입구 조형물들을 보아서는 잘 정비되었을법 한데
막상 다가가보니 아무런 인공적 손질없이 마치 이름없는 묘소처럼 남아있다.
거칠게, 일부는 벗겨진 채 봉분이 남아있고 이름을 새긴 비석하나에 평편한 제단석하나와
좌우로 시립해있는건 그저 아무런 모양도 없는 자연석 2개뿐....
사람들 접근을 막기위해서 몇줄을 둘러친 모습이 어쩐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차라리 묘소주변은 개망초가 밭을 이루어 하얗게 피어있어서
마치 가을철 메밀꽃밭을 보는듯 하다.
묘소 입구에 성황당.....
팻말에 무엇인가를 적어서 줄지어 매달아 놓은 모습이 조금은 생경해보인다.
마치 일본에서 신사에 들어섰을때 본 모습같고,,,어쩐지 우리네 전통모습은 아닌듯해보인다...
김삿갓 유적지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
영월땅 구석구석에는 생각보다 많은 루드베키아 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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