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충북 제천 - 강원 영월 (장릉)

鶴山 徐 仁 2005. 10. 29. 11:43
충북 제천 - 강원 영월 (장릉)
  2005
김신묵     

대한민국에서

역사속에 임금님 흔적이 안 묻은 곳이 없는데

유독 강원도는 임금님하고는 거리가 먼 듯합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영월땅에는 단종애사(哀史)가 깃들어있습니다.

영월.....하면 괜스레 슬픈 느낌입니다.

비감어린 곳...

어린 임금이 숙부에게 쫓겨나 귀양살다가

마침내 사약을 받고 목숨을 끊은 곳...

 

그곳 주민들은

단종임금에 대한 애도와 충심을 넘어서서

토속신앙으로까지 번져있는곳...

강원도 영월....

 

그곳을 한번 가보리라 길을 나섰습니다.

여주까지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구가다가

여주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구 감곡까지...

감곡에서는 고속도로 못지않게 잘 발달된 38번 국도를 타구 제천으로....영월로 이어집니다.

 

38번 국도를 타고가다 제일먼저 만나는 곳...박달재였습니다.

지금은 38번국도가 좋아지면서 박달재 아래에 터널이 뚫려서

고개를 넘어갈 일이 없습니다만

일부러 넘어보았습니다.

 

<박달재 입구....옛날길 초입에는 이처럼 멋들어진 대문이 있다네~~>

 

이 박달재는 옛날 영남지방에 살던 박달이 과거를 보러가던 길에 이 고개 아랫마을 처녀 금봉이를 사랑하여 과거에 급제한 뒤

돌아와 혼인하기로 언약하고 떠났으나 낙방하자 바로 돌아오지 못하고 상사병으로 죽은 금봉이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돌아와

금봉이가 고갯마루에서 박달이를 애타게 부르다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박달도 이곳에서 슬피울다 금봉이의 환영(環影)을 보고

달려가 잡으려다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으니 그 후로부터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는 傳說이다.

그러나 이곳은 고구려의 옛땅으로 '밝뫼고개' 라는 뜻의 고구려 지명에서 유래되었다는 하며, 고려 고종4년(1217년)에 거란군의

침입을 김취려가 무찌른 곳이며, 고종45년(1258)에 이 고을의 별초군이 몽고군과 싸워 크게이긴 호국전적지이기도 하다.

 

<박달재 정상의 금봉낭자와 박달이 동상....>

 

<박달재 정상의 성황당>

 

충북 제천의 [제천 10경]을 보면

제 1경...의림지

제 2경...박달재

제 3경...월악산

제 4경...청풍문화재단지

제 5경...금수산

제 6경...용하구곡

제 7경...송계계곡

제 8경...옥순봉

제 9경...탁사정

제10경...배론성지.......를 꼽는다.

 

그중 박달재를 넘어가며 보고나서 영월로 가는길을 계속 가다보니

제천읍내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의림지(義林池).....제 1경이다.

 

의림지는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에 축조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로

호수주변에 '영호정'과 '경호루'를 비롯해 수백년된 소나무와 수양버들, 30m의 자연폭포등이 어우려져 있는 곳이다.

 

충청도를 호서(湖西)지방, 즉 호수의 서쪽지방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호수란 바로 이 의림지를 말하는것이다.

해마다 1월이면 의림지 겨울페스티벌을 벌이고 있으며

화천의 산천어, 인제의 빙어.....가 유명한데 이곳은 빙어를 공어라고 부른다.

 

빙어(氷魚) : 겨울에는 먹이를 잘 먹지 않아 몸이 투명한 것이 특징. 해방 전 함경남도 용흥강에서 남한으로 전해져 소양호,

                   제천 의림지, 강화 장흥지, 춘천호 등 큰 호수에서 주로 서식하고 있다.

                   고서에서는 빙어를 과어(瓜魚)라고 했는데 이는 빙어의 몸에서 오이의 향이 난다고 해서 오이 과(瓜)자가 붙여진 것.

                   제천에서는 공어(空魚)로도 불리는데 속이 빈 것처럼 보여 이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의림지 전경>

 

 

<의림지 관광단지를 조성중인듯~~~>

 

 

제천을 미처 다 둘러보지 못하고 시간관계로 목적지인 영월로 접어들었다.

예전에는 제천에서 영월가는 길이 꼬불꼬불한 국도였는데 지금은 길이 좋아져 고속화도로로 날아간다....ㅎㅎ

아무튼 구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영월에 진입하는 고갯마루=소나기재 정상에서 오른쪽.....100m 정도 들어가면

거대한 기암괴석이 서강을 굽어보면서 서있는게 보인다.....  바로 선돌(立石)이다.

 

<西江을 배경으로 서있는 선돌...일명 神仙岩이라 불리우는 높이 70m의 기암괴석이다...>

 

선돌을 보구나서 다시 차를 타고 소나기재를 내리막으로 내려오면 영월읍내이다....

내려오면서 왼쪽편이 바로 장릉인데

이 장릉은 17세의 어린나이에 사약을 받고 세상을 뜬 조선 제 6대 임금인 단종(端宗)의 능이다.

부왕인 문종이 일찍 죽어 불과 12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즉위 3년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상왕으로 물러났다가

1457년(세조 3년) 6월, 집현전 학사 성삼문, 박팽년등이 상왕복위사건으로 참형을 당한 6월 21일,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당하고

그 다음날에 영월의 청령포에 유배되었으며, 청령포에서 두어달 계시다가 홍수로 인하여 관풍헌으로 옮기셨다.

그후 다시 다섯째 삼촌인 금성대군의 단종복위대책이 발각되어 노산군에서 폐서인(廢庶人)이 되었고

그해 10월 24일에 관풍헌에서 결국 사약을 받고 승하하시었으니 그때 겨우 17세였다.

 

단종이 승하하여도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시신을 거두는 이가 없자 영월 호장 엄흥도가 시신을 거두어 모신곳이 바로 장릉이다.

그뒤 241년만인 숙종24년(1689)에야 단종이라는 묘호와 장릉이라는 이름을 갖기에 이르렀다.

장릉 주위의 소나무는 모두 능을 향해 절을 하는듯 굽어져 있어 보는이들을 신비롭게 한다.

 

<영월...장릉 전경~>

 

 

 

 

세조의 서슬이 시퍼렇고,,,,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지 않자 영월의 호장인 엄흥도가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하는것은 달게 받겠다"하면서 관을 준비하여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후 이곳에 밀장(密葬)하였다.

 

이후 엄흥도는 충신으로 칭송받게 되었으며 벼슬의 호를 받았음은 물론, 이렇게 충절각을 세워주었다.

 

<엄흥도 정여각>

 

장릉이 영월 초입에 있는지라 먼저 둘러보고 나서

조금 더 읍내로 들어와 오른편 서강변으로 나아가니 단종이 귀양살이를 하던 청령포가 나온다.

 

청령포는 삼면이 깊은 강이고 뒤는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지금도 배를 타고 들어간다

이곳에서 두어달 귀양을 살다가 홍수로 물이 넘쳐 단종은 읍내 관풍헌(객사)으로 거소를 옮긴다.

 

<청령포 전경....영월의 西江이 휘감아 돌아나오는 섬처럼 생긴 곳이다>

 

 

 

 

그밖에도 강원도 영월은 동강 래프팅이나 트래킹으로 유명하며 (2002년 우리클럽에서 래프팅 다녀왔음)

주변에는 별마로 천문대와 고씨동굴과 함께 방랑시인 김삿갓의 유적지등이 돌아볼만하다.

특히 최근들어 영월읍 못미쳐 선암마을에 한반도지형처럼 생긴곳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