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아우라지에 내리면
약 50분뒤에 다시 증산역으로 돌아오는데 총 3시간 정도 걸린다.
다시 증산역으로 돌아온후 그 유명한 카지노를 보기로 했다.
ㅇ 정선 카지노
석탄산업 합리화정책(석탄산업의 사양화에 따라 폐광시키고 이를 보상지원하는)을 추진하던 정부는
폐광에 따른 후속조치로 폐광지원, 광해복구사업등을 전개하였으나 지역경제를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역주민들 또한, 핵폐기물 처리시설 유치방안까지 제시하며 회생을 위한 자구노력을 기울였으나 침체된
지역경기 회복에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할 뿐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95년 12월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폐광지역 일대를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하고 열악한 대체산업유치 여건을 감안하여 폐광지역내에 내국인 출입카지노를 설치키로 한 것이다.
이런 배경으로 국내 22개의 카지노중 유일하게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강원 카지노는 현재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산139번지의 골프텔이 있으며, 2003년 3월 28일에 개장된 본 카지노는 사북읍 사북리 424번지외 16필지에 부지면적
293,263.00m², 건축연면적 134,902.93 m²로 객실 477실 규모이며, 슬롯머신과 테이블게임등이 갖추어지져 있고, 테마파크등이
조성되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카지노 게임으로는 테이블게임, 블랙잭, 바카라, 룰렛, 다이사이, 빅휠, 슬롯머신, 프로그래시브
잭팟등이 있다.
또한 스키장, 골프장을 현재 사업추진중에 있어 가족형 종합 휴양지로 성장할 계획이다
증산역에서 나와 다시 38번 국도를 타고 태백쪽으로 가다보면 사북을 지나치게 되는데
오래전...사북사태로 불리우는 광부들의 봉기가 있었던 가슴아픈 지역이다.
아무튼 심각한 얘기는 생략하고 사북에서 굴다리 밑으로 꺾어들어 가파른 길을 올라가다보면 카지노가
나온다.
카지노에 가기전에 탄광촌 아파트의 남루한 모습이 참 대조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탄광촌 아파트....이것도 옛날 사택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셈이다>
<카지노가 생기면서 나타난 전당포....전당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도박에 돈잃은 사람들이 급전을
바꾸는 곳이다>
<옛날 탄광의 흔적들.....거대한 시설물이 눈에 꽉 찬다....그 뒤로 멀리 카지노가
보인다>
<강원랜드....카지노 건물의 정식이름이다.....>
갑자기 영화장면처럼,,,,시커먼 땅위에 솟아오른 위압적인
건물.....
위의 카지노가 생기기 전까지는 스몰카지노가 운영되었었으며....위 메인 카지노가 오픈한 이후
스몰카지노는 골프장으로 바꾸었다
입구에는 서울 대형 백화점이나 호텔을 무색하게 하는 남/녀 안내원들이 빈틈없이 일을 하고
있었고
평일인데도 주차장은 서울차들로 그득해보였다.
용기가 없어서 카지노 입장은 못해보고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들어올때는 사북으로 들어왔지만 계속 돌아나가면 고한으로 나가게 되는데 고한쪽이 카지노 전용도로의
정식입구가 된다.
<고한쪽 카지노 입구.....성문처럼....>
ㅇ 만 항 재
고한을 지나면 태백으로 가는길이 2가지로 나누어지는데
38번국도를 따라가면 두문동재(싸리재) 터널을 통해 태백으로 가게되며
물론 터널을 피하여 고갯길을 굽이굽이 넘어갈수도 있다....드라이브에 더할 나위없이
좋다
이 두문동재(싸리재)는 전국 국도중에서 가장 높은 고갯길인데 해발
1,268m이다.
그리고 오른쪽 414번 지방도로로 접어들면 만항재를 넘어서 태백으로 돌아갈수 있는데
이 만항재는 포장도로중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고갯길이다....해발 1,313m
지리산 정령치(1,172m)나 강원도 운두령(1,089m)보다 높다.
먼저 만항재 이야기...
만항재를 오르기전에 정암사라는 절을 만났다.
정암사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서 절에 불상이 없는곳이며
경내에 천연기념물인 열목어가 서식하고 있는 아주 아름답고 조용한 절이다.....
<정암사 입구 일주문...>
<절의 이모저모....>
계속 차를 몰아 고개를 올라 가다보면 대한체육회 선수촌 태백분촌이 나오는데
고원지대에 적응하기 위하여 높은곳에 세운듯하며...
그 앞길로 차를 몰고 가면 남한에서 6번째 높은산인 함백산(1,573m)의 정상 코밑까지 올라갈수
있다.
등산이 힘들고 어려운 사람은 그렇게 해서라도 산에 올라 드넓은 전망을
즐겨보시기를~~
고갯길을 힘들게 달려올라가니 마침내 만항재 정상이다.
그 정상아래는 만항마을이 있어 작지만 부락을 이루고 있는데 예전 탄광마을이 남아있는것이라
한다.
<만항재 정상....비내리는 날 찾아갔더니 안개가 자욱하다>
<만항마을>
ㅇ 두문동재(싸리재)
다시 고한읍으로 돌아가서 38번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소두문동이 나오는데
이는 옛날 고려가 망하고나자 조선에 반대한 고려유신들이 개성북쪽에 있는 두문동에 살았던 내력과 관계가
있다.
먼저 개성의 두문동은
황해북도 개풍군 광덕산(光德山) 서쪽 기슭에 있는 옛 지명. 해방 전에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에 속하였다.
1392(태조 1)년 이성계(李成桂)가 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건국하자 이를 반대하던 고려의 유신(遺臣)
신규(申珪)·신혼(申琿)·신우(申瑀)·신순·조의생(曺義生)·임선미(林先味)·이경(李瓊)·맹호성(孟好誠)·고천상(高天祥)·서중보(徐仲輔) 등
72인이 망국의 한을 달래지 못하고 고려에 대한 충성과 지조를 지켜 조선의 녹을 먹지 않으려고 개성을 떠나 동남방 부조현(不朝峴)에 고려 때
입던 조복(朝服)을 벗어놓고 산속으로 들어가 살았다.
그들은 뒷날 이성계에 의해 몰살당해 순절했는데, 정조 때 왕명으로 표절사(表節祠)를 세워 모셨으며,
후세에 이를 추모하여 위국순절(爲國殉節)의 귀감으로 칭송하게 되었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의 어원이 되었다고 일컬어진다.
그중에서 몇몇 충신들이 이곳 정선까지 오게되는데 일곱명의 충신(칠현)이 살았다는 남면 낙동리일대는
'거칠현동(居七賢洞)'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이들이 고려를 그리며 부른 노래가 정선아리랑의 시조가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거칠현동이 정선아리랑의 발상지라고도 하며
싸리재아래 소두문동에도 고려 충신 몇몇이 옮겨와 살았기에 소두문동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런데 이고개는 정선군 고한과 태백시의 경계선에 있기에 태백에서는 싸리재, 고한에서는 두문동재라고
부르는것이다.
<두문동재....터널과 고갯길의 갈림길...왼쪽이 터널,,,오른쪽으로 가면 구비구비 고갯길을
넘어간다>
<비내리는 날 넘는 고갯길은 한적할뿐 아니라 경치가 너무 좋았다....>
<정상.....>
ㅇ 추 전 역
싸리재를 넘거나 싸리재 터널을 지나거나....
38번국도를 타고 태백으로 가다보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다는 추전역이
나온다.
1973년 10월 16일 개통된 태백선을 열차는 차량들이 싸리재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정암터널을 통과하게
되는데
이 정암터널은 4,505m의 길이로써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터널이었으나
전라선의 병풍터널에 1위 자리를 내놓았다.
아무튼 정암터널을 빠져나온 기차는 해발 855m의 추전역을 통과하게 되는데
추전역을 가보니 그저 작고 초라한 볼품없는(?) 간이역.....
가끔 새마을호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하여 잠깐씩 비켜선 기차들이 있을뿐~~
원래 옛부터 이곳을 싸리밭 골이라하여 이름이 추전역이 되었다고 한다.
<추전역 전경>
<광산에서 채굴된 광석이나 탄을 운반하는 광차....추전역앞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