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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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의 한심한 발언록

鶴山 徐 仁 2005. 10. 13. 23:39
이 름   全敬雄 날 짜   2005년 10월 13일 목요일
강정구의 한심한 발언록
지금까지 강정구가 자신의 칼럼과 인터뷰를 통해 밝혔던 발언들이다. 이해를 돕고자 그의 글이 실린 매체와 날짜, 제목을 표시했다.


<민중의 소리> 2002년 3월 22일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중에서

“...해방공간의 민족사적 과제는 첫째, 일제 식민지 통치기간에 구축된 식민지 잔재와 친일파의 청산이었다. 둘째는 미국의 주도에 의해 두 동강이 난 분단을 해소하여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선인의 염원과 과제는 미군정에 의해 철저하게 분쇄되고 결국 친일파 중에 친일파인 박정희가 대통령까지 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우리는 6.25라는 민족상잔까지 겪는 참화 속에 빠졌고,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과 적대가 남북 사이에 가로놓이게 되었다...”


<민중의 소리> 2002년 12월 2일 ‘광화문 촛불 행진을 주권 되찾기의 출발로’ 중에서

“이제까지 대한민국의 주권은 반신불수가 아니라 거의 전신이 미국의 주권에 의해 불구가 되어 있는 상태와 다를 바 없었다. 작전지휘권도 없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기간도 없이 영구조약이 되어 있고, SOFA에는 미국주권 일색이고 한국주권은 찾아보기 힘들고, 한반도평화선언이나 대북한 전력지원 등이 모두 미국의 비토에 의해 좌절되는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 결과 미국은 효순이와 미선이의 기막힌 죽음 앞에서도 여전히 그 오만한 변형식민지 지배를 여지없이 휘둘렀던 것이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강정구 칼럼> 2004년 11월 29일
‘미국의 대북선전포고, 이미 시작됐다’ 중에서

“미국의 앞잡이 노릇만 주로 하는 ‘북한인권 무슨연대’나 인권을 빌미로 생색내고 돈벌이하는 극우기독교집단 등의 대미 자발적 노예주의자들이 제 철을 맞은 듯 기고만장하는 짓이야 이 자리에서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

“인권을 위한다는 탈북기획입국이 그야말로 유인, 납치, 인신매매, ‘강도의 소굴’, 북한 정권붕괴를 노리는 저강도 전쟁의 수준까지 발전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민족사의 앞길을 가로막는 반민족 행위다. 이는 외부세력인 미국으로부터 시작되고 이를 남한 내 대미 자발적 노예주의자들이 그대로 수용해 미국의 책략에 부화뇌동하는 양상을 띄고 있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강정구 칼럼> 2005년 3월 16일
‘그래, 주적이 누구인지 분명히 말하마’ 중에서

“더 꼴불견이고 문제인 것은 이들의 식민지 총독 행세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 땅의 대미 자발적 노예주의 부류들이 우리 고위층에 즐비하다는 사실이다. 군부, 관료, 언론, 정치, 학술, 경제 등의 고위직을 대부분 점유하는 이 땅의 기성 주류는 일제식민지배 35년, 미국의 신식민지배 60년, 도합 100년 가까이 대를 이어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처럼 또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처럼 행세해왔다.”

“직격탄에는 MD처럼 맞받아치는 직격탄이 적격이다. 그래, 주적은 바로 너희나라 미국이다. 왜냐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켜 우리민족을 죽이려는 전쟁주범이 바로 우리의 주적인데, 그게 바로 미국 너희 나라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확인했지만 북한이 한반도 전쟁의 주범이나 주적이 아니라 미국이 바로 주범이고 주적이다. 전쟁주범이면서 주적인 미국에게 한미동맹과 한미공조 운운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도둑에게 곳간 열쇠를 맡기는 것과 같은 자살행위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강정구 칼럼> 2005년 3월 16일
“친일파 양성이 미국의 정책” 중에서

“친일청산의 좌절과 실패의 주범은 미국과 미군사정부였고, 공범은 대한민국 초대정권인 이승만 정권이고, 첨병은 미군사정부 시대 여당이었고 대한민국 야당의 뿌리였으면서 친일파 무리인 김성수, 조병옥, 장택상 등이 즐비한 한국민주당(한민당)과 그 아류였다.”

“선거에서 모든 좌익, 김규식을 중심으로 한 모든 중도, 김구를 중심으로 한 우익 진영의 많은 정당과 사회단체가 5.10선거를 분단선거로 규정짓고 선거참여를 거절했다. 단지 이승만의 독립촉성회, 친일파 주축인 한민당, 테러집단으로 월남한 서북청년단과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던 또 다른 테러집단이었던 대동청년단 등과 같은 정당-사회단체만 5.10 선거에 참여했다. 당시 남한의 400여 정당-사회단체 가운데 불과 10% 정도만 참여한 셈이었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강정구 칼럼> 2005년 5월 3일
“친일청산은 북한이 앞섰다” 중에서

“북한의 친일청산은 일본의 패망이 발표되는 해방공간 시점인 45년 8월부터 조선민중의 자연발생적 힘에 의해 곧바로 시작되어 46년 거의 완벽할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이 결과 북한에는 친일이라는 과거청산 논쟁이 아예 발붙일 틈이 없게 되었다.”

“소련 점령군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친일청산에 대해 도와주고 촉진하는 역할에 불과했다. 곧 소련 점령이 없었다하더라도 친일청산은 조선민중의 자연발생적 욕구에 의해 충분히 청산될 수 있었지만 소련의 도움으로 빨리 청산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친일청산 경우 진상규명에서부터 정신계승에 이르기까지 거의 완벽할 정도로 청산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남한의 경우 부끄럽게도 진상규명조차 안된 수준이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강정구 칼럼> 2005년 7월 27일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맥아더에 대한 짝사랑, 더 이상 적절치 않다” 중에서

“미군이 직접적인 군사통치를 자행한 남쪽은 점령 3년 동안 1946년의 대구 10월 항쟁, 1948년 제주 4.3 항쟁과 여순 항쟁 등 인민항쟁과 야산대와 유격대 투쟁 등 수많은 항쟁과 전투와 폭동의 연속이었다. 이 결과 1950년 6.25전쟁 직전까지 무려 10만 명의 희생이 발생했다. 한국전쟁의 시발인 작은전쟁의 연속이었다. 반면에 간접적인 점령정책과 조선인에 의한 자치정부를 시행한 북쪽에서는 이런 진통과 혼란이 없이 안정을 누렸으며 친일청산과 대대적인 사회경제개혁이 이뤄져 친일파가 더욱 기성을 부린 남쪽과는 극히 대조적이었다.”

“전쟁 전후에 전사한 약 2백만 명, 학살당한 약 1백여만 명, 중국군 약 90만 명, 미군 등 5~6만 명, 곧 전쟁 때문에 생명을 박탈당한 약 400만 명에게는 해당될 수 없다. 오히려 이들 대부분에게는, 미국이란 생명의 은인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간 원수일 것이다. 왜냐면 만약 남의 집안싸움인 통일내전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 달 이내에 끝났을 것이고 사상자는 아무리 많아야 남북한 합쳐 1만 명 미만일 것이다.”

“맥아더는 1.4 후퇴 당시인 1950년 11~12월 전선이 37도선으로 후퇴하자 중국과 북한에 26개의 원자탄을 투하해 코발트 死線(사선)을 형성하고는 중국과 전면전으로 전쟁을 확장하려했다. 실제 미국은 허드슨 작전이란 모의 원자탄 실험을 북한 상공에서 실시해 이런 맥아더의 구상이 실현될 수도 있었다.”


<미디어 오늘 인터뷰> 2005년 10월 4일
6.25를 통일전쟁이라고 말한 것은 국민정서상 비난받을 만 한 것 아닌가는 질문에 대답

"UN이 정한 불법침략전쟁은 국가끼리의 전쟁으로 한정한다. 하지만 6.25는 분명 사변이나 동란 등의 표현으로만 봐도 내란으로 규정돼왔다. 1950년 10월 7일에 발행된 UN총회 376호에서도 이를 전하고 있다. 자료에 바탕을 해서 사실논쟁을 이어가야 하는데 이념논쟁으로 언론에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 부분에 대해 내가 사법처리 된다면 나는 UN총회에 대한민국정부를 제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