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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철수 원년… 反美결사항전"

鶴山 徐 仁 2005. 10. 12. 16:09
6·25때 국군 5명 살해하고 訪北허가받은 김영승씨
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입력 : 2005.10.11 18:45 35' / 수정 : 2005.10.12 03:01 18'


▲ '민중의 소리'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김영승씨의 최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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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빨치산, 미군철수, 맥아더 동상 철거
지난 7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범민련) 관계자들의 금강산 통일 기행 당시, 국가정보원이 방북(訪北) 승인에 반대했던 보안관찰처분 대상자 5명이 포함된 것으로 11일 밝혀졌다. 이 중에는 6·25 당시 빨치산 활동을 하면서 우리 군부대를 습격, 국군 5명을 살해했던 김영승(70)씨가 포함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이 이날 공개한 국정원 자료에 따르면 김씨는 “6·25 때 노동당에 입당한 후, 20여회 민가에 침입하여 식량 등을 강취하고, 군부대를 습격하여 국군 5명을 살해한 자”로 기록돼 있다. 김씨는 중학교를 다니던 50년 15세에 ‘소년 빨치산’으로 입산했다. 54년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은 후 감형됐다가 89년 출소했다. 김씨는 현재 비전향장기수 모임인 통일광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범민련 홈페이지에는 지난 8월부터 ‘해방 60년 해방공간을 찾아서―소년 빨치산 김영승의 눈으로 바라본 해방’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그는 인터뷰 형식의 이 글에서 “국민학교 시절에는 학내 스트라이크도 일으켜 소위 빨갱이로 지서에 고발하겠다는 교장선생의 엄포를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50년 7월 23일 인민군에 의해 해방이 되었다”며 “두 달 동안 해방공간이었다. 내가 소년단장으로 활동했다. 후퇴할 때 기관원 동지들과 함께 입산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체험으로 얻어진 것이 사상성으로 축적된다. 그래서 강철의 사상을 갖게 되는 것”이라며 “나의 경우는 어릴 적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변함없다. 본질적으로 변함없다. 떳떳하게 사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밝혔다.

김씨는 이어 “우리는 (올해를) 자주통일 원년, 미군철수 원년으로 바라보고 있다. 감옥에 들어갈 각오로 싸워야 한다. 오늘날 남쪽에서 노동, 농민, 빈민 문제의 본질적인 문제 해결은 바로 반미 자주화투쟁을 어떻게 가열하게 전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인천에서 냉전시대의 유물인 맥아더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 문학산 패트리엇 미사일 기지도 철거시켜야 한다. 자유공원이라는 명칭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모두 반미 결사항전의 길로 총매진하기 바란다. 제2의 8·15 해방을 맞이하기 위하여”로 끝을 맺었다.

김씨는 이에 앞서 지난 5월 ‘민중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평양에 가보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대해 “아니다. 묵묵히 남아서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북조선에 가는 사람들은 (중략) 서로 대화하면서 남쪽의 정확한 현실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국군 살해는) 반세기 전 전쟁 때의 문제인데, 왜 그것이 나의 방북과 관련해서 지금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 때 한 행동을 그대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 당시는 고문을 해서 서류를 허위로 꾸민 것이 많았다. 돈이 있으면 다 풀려나던 시대였다”며 더 이상 통화하기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김씨의 방북을 허용한 통일부는 “신원특이자의 경우 남북관계 특수성을 감안해 다소간 방북 제한이 불가피하지만, 인권 측면에서 금강산관광을 제한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