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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칼럼´은 표절이다"

鶴山 徐 仁 2005. 10. 14. 13:46
이 름   정창인 날 짜   2005년 10월 14일 금요일
"강정구 ´칼럼´은 표절이다"
"강정구의 ‘글’은 북한 “현대조선역사”를 표절한 선동일뿐"


강정구의 칼럼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를 두고 국가가 분열되어 있다. 북한의 대남전략에 한국정부조차 먹혀들어 이런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 혼란은 강정구와 친북반미반역세력의 교활한 위장책략에 한국사회가 말려들어 생긴 것일 뿐이다. 강정구 자신도 자신으르 학자임을 내세워 그 글이 마치 학문적 연구의 성과인양 선전하지만 사실은 그 글은 북한의 『조선통사』와 『현대조선역사』를 표절한 선동문일뿐이다.

우선 북한에서 1958년에 발행한 『조선통사』에서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조선인민은 위대한 쏘련군대에 의하여 장구한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으로부터 해방되였다. 소련군대에 의한 조선해방은 조선인민의 역사발전에 새 기원으로 되었다”(p. 287). 그러던 것이 1983년판 『현대조선역사』에서는 “조선의 해방은 김일성이 조직영도한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의 빛나는 승리가 가져다준 위대한 결실이었다”(p.169). 이 표현만 보면 북한의 역사날조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금방 짐작할 수 있다. 해방이 소련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미군의 전쟁 승리로 이루어진 것이며, 겨우 대위 계급장을 달고 몇 백명도 안되는 김일성 때문에 해방된 것은 더구나 아니다. 따라서 북한의 역사기술이 날조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강정구의 글을 하나씩 분석해 보자.

강정구의 문제의 글에서 “38선 분단 집행의 집달리 맥아더”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현대조선역사』의 “미제의 남조선 강점과 조선의 분열”이라는 제목 하의 “우선 미국은 38도선을 고안해 내고 조선을 분열시켰다. ... 이처럼 미제는 일본군대의 무장해제를 명분으로 38선이라는 분단선을 고안해 냈으며 조선을 분열시킨 장본인으로 되었다"(p. 173)는 북한의 역사기술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이것은 군사분계선에 불과한 38선이 국토분단선으로 고착된 것은 소련이 북한에 위성국을 만들기 위함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반한다.

다음 강정구는 “식민지 총독과 같은 점령군 사령관”이란 제목으로 맥아더와 치스차코프를 비교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의 『조선통사』“제5편 현대사회, 제22장 위대한 쏘련군대에 의한 조선해방, 북조선 민주기지 창설(1945. 8. 15. - 1947. 2.), 제1절 해방직후의 조선의 정치정세”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조선통사』는 소련군 점령에 대해 “쏘련군대의 북조선 진주는 해방된 조선인민을 제국주의의 새로운 침해로부터 보호하는 튼튼한 담보로 되었으며 조선인민이 민주주의 새 조선을 건설하는 데 결정적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되었다. 민족자결에 관한 레닌적 원칙에 충실한 소련군대는 우리 조국강토에 진주한 첫날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p. 288)라고 시작하여 문제의 그 포고문을 게제하고 있다. 한편 “미군의 남조선 강점”이라는 제목 하에서 『조선통사』는 “이와 같이 해방된 우리조국에는 민주역량이 나날이 장성하고 인민들이 민주걸설의 열정에 들끓고 있을 때인 1945년 9월 7일 돌연히 남조선 상공에 나타난 미군 비행기는 다음과 같은 포고문을 투하하였다”(p. 290)고 하여 강정구 글에 인용된 그 포고문을 게시하고 있다. 그런데 맥아더의 포고문을 인용하면서 느닷없이 제3조와 제5조만 인용하고 그 전문과 다른 조항을 생략하고 있는데, 이것도 북한의 역사 기술과 일치한다. 생략한 포고문 전문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By the terms of the Instrument of Surrender, signed by command and in behalf of the Emperor of Japan and the Japanese Government and by command and in behalf of the Japanese Imperial General headquarters, the victorious military forces of my command will today occupy the territory of Korea south of 38 degrees north latitude.

Having in mind the long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and the determination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the Korean people are assured that purpose of the occupation is to enforce the Instrument of Surrender and to protect them in their personal and religious rights. In giving effect to these purposes, your active aid and compliance are required”.

생략한 원문에는 분명히 미군이 일본의 항복문서에 따라 38선 이남을 점령하며 그 목적은 일본의 항복문서를 실행하고 한국인의 개인적 및 종교적 권리를 보호함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미군을 점령군으로 표현하는 것도 『현대조선역사』의 “‘우리들은 해방군이 아니었다. 미군은 남조선을 ... 점령하기 위하여 ... 온 것’”(p. 175)이라는 미국 기자의 발언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강정구는 맥아더 장군은 “완전히 식민지 총독 부임과 같은 서슬 퍼런 모습으로...”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현대조선역사』의 김일성 저작집 인용문,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에서 ... 미제국주의자들은 남조선에 들어온 첫 날부터 일관하여 남조선을 자기들의 식민지로 만들 뿐 아니라...”(p. 244-245)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강정구는 “미군이 직접적인 군사통치를 자행한 남쪽은 ... 1950년 6.25전쟁 직전까지 무려 10만명의 희생이 발생했다”고 쓰고 있다. 이 표현 역시 『현대조선역사』의 “미군이 남조선에 들어온 이래 1949년 7월까지 애국적 인민들이 9만 3,000여명이나 학살되었는데 ... ”(p. 258)의 기술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특히 강정구는 바로 그 다음 문구로 “곧 이미 한국정쟁의 시발인 작은 전쟁의 연속이었다”고 쓰고 있는데, 이것은 『현대조선역사』에서 “미제와 이승만 정권은 1949년 한해 동안에만도 38도선에서 무려 2,617차례의 무장침습을 감행하였다. ...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방출판물들은 후에 그것을 38도선에서의 《작은 전쟁》이라고 불렀다”(p. 251)의 내용 그대로 이다. 이 작은 전쟁의 개념은 북한이 6.25전쟁이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는 것으로 날조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강정구는 또한 “반면에 간접적인 점령정책과 조선인에 의한 자치정부를 시행한 북쪽에서는 이런 진통과 혼란이 없이 안정을 누렸으며 친일청산과 대대적인 사회경제개혁이 이뤄져 친일파가 더욱 기성을 부린 남쪽과는 극히 대조적이었다”고 쓰고 있다. 이것 역시 『현대조선역사』의 “미제는 인민탄압에 날뛰면서 친일파, 민족반역자 등 반동분자들을 집결시키기에 급급하였으며 그들을 군정기관내에 끌어들여 식민통치의 정치적 지반으로 삼았다”(p. 175)의 내용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또한 강정구는 “바로 이 분단 비호 국내세력은 일본식민지의 군, 경찰, 관리 짓을 한 ... 민족반역세력과 미군정의 여당이라고 일컬어지는 김성수, 조병옥, ... 한국민주당과 같은 친일정치세력 두 부류였다”고 쓰고 있다. 이 역시 『현대조선역사』의 “미제는 대지주이며 친일자본가이며 ... 민족반역자 김성수를 비롯하여 한국민주당 ... 계열의 반동분자들을 군정고문으로 임명하였으며 대법원장, 대법관, 검사총장을 비롯하여 지방말단의 판사, 검사들까지도 모두 친일매국노들로 채웠다”(p. 175)는 글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또한 강정구는 “바로 이 두 분단 국내비호세력인 정치-관료 친일세력의 대부가 이승만이었다”고 쓰고 있는데, 이것은 『현대조선역사』의 “미제는 이것으로도 마음이 안놓여 저들의 오랜 주구인 이승만을 급히 미국으로부터 끌어들여와 반동의 주축으로 삼았다”(p. 175)의 관점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사실 이승만 대통령은 김일성과 비교도 되지 않는 독립운동가이며 탁월한 정치가였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이런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바로 강정구가 북한의 선전 선동 앞잡이가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외에도 강정구의 글이 북한의 역사를 그대로 표절한 흔적은 많다. 애국세력에 대해 “대미 자발적 노예주의의 포로”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현대조선역사』에서 인용한 김일성의 저작, “전체 조선인민은 또 다시 외래제국주의자들의 노예가 되기를 원치 안거든 이승만 매국과 그 군대를 타도분쇄하기 위한 구국투쟁에 다같이 일어나야 합니다”(p. 274)의 관점과 일치한다. 또한 맥아더를 “생명을 앗아간 원수”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현대조선역사』의 “노동당원들과 애국적 인민들은 원수들의 만행이 악랄할수록 더더욱 불타는 적개심을 안고...”(p. 290)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원자탄 투하설”에 대해서도 『현대조선역사』에서 언급하고 있으며(p. 295) 또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이 상부의 공식적인 명령에 따라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쓰고 있는 것도 『현대조선역사』에서 “우리 나라 북반지역에 들어온 미제침략자들은 강점지역들에서 천인공노할 야수적 만행을 감행하였다. ... 침략군대들은 《명령》대로 행동하였다”(p. 288-289)의 표현과 다름이 없다.

또한 강정구는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면서 동시에 내전이었다”고 쓰고 있는데, 이것 역시 『현대조선역사』에서 인용한 김일성 저작집의 내용, “이승만매국정권이 일으킨 내란을 반대하여 우리가 진행하는 전쟁은 조국의 통일독립과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정의의 전쟁입니다”(p. 273)의 내용과 일치한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자유 직접 비밀 투표로 성립된 정통성이 있는 국가다. 그러나 북한 김일성 괴뢰 집단은 공산당 일당독재를 주장하는 무리들이 무장한 반국가단체다. 반국가단체가 일으킨 무력침략은 통일전쟁이 아니라 그것이야 말로 내란이다. 역사를 거꾸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강정구는 맥아더 장군이 “대통령까지도 무시하면서 독단적 전쟁수행권을 행사하려한 과대망상적 영웅주의자였다”든가 “작전오류로 미국역사상 처음으로 참담한 대패를 기록하면서 ...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고 미국에 치욕을 안겨준 지휘관으로 평가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표현 역시 『현대조선역사』의 인용문, “트루만은 패전의 책임을 맥아더에게 전가시키고 그가 미국의 대외정책에 어긋나는 《월권행위》를 거듭하였다는 죄를 씌워 미극동군사령관, 《유엔군》사령관의 직위에서 파면시켰으며...”(p. 303)와 “... 맥아더는 ... 《전쟁은 사실상 종결되고 조선에 평화와 통일이 회복되고 유엔군의 신속한 철퇴가 가능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그러나 맥아더의 성명은 패배의 선언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p. 294)의 내용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강정구는 문제의 그 칼럼이 자신의 학문적 연구의 성과라고 우기면서 학문의 자유, 사상의 자유 등 헌법에서 보장한 개인적 자유권을 내세웠다. 그러나 간단히 살펴본 바에 의해서도 그의 소위 연구성과라는 것이 북한의 공식 역사책의 표절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직업혁명가일 뿐이며 교수직은 위장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직업혁명가로서 목사나 신부와 같은 위장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강정구는 교수로 신분을 위장한 것이다. 그는 북한의 공식적 역사책의 내용을 교묘하게 포장하여 학문적 연구 성과라고 포장하여 사실은 북한의 체제를 선전하고 반미운동을 선동하고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있다. 이런 행위가 반역행위가 아니면 뭐가 반역행위인가? 이런 행동이 국보법 위반이 아니라면 뭐가 국보법 위반인가? 정부는 사태를 똑바로 인식하고 정확하게 대처하기 바란다.

[정창인 독립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