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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1. 체 게바라 사령관이여! 영원하라! (상)

鶴山 徐 仁 2005. 9. 30. 13:17
11. 체 게바라 사령관이여! 영원하라! (상)

"
Hasta Siempre Comandante Che Guevara"

야만의 세기라는 20세기가 저물고 또 다른 세기가 밝아오던 지난 1997년 여름
볼리비아 비야그란데의 공동묘지에서 한 무덤이 열리고 한 게릴라가 신화로 되살아났다.
그는 바로 체 게바라였다.
그는 죽어서 영원히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되살아났다.

체 게바라의 귀환을 환영하는 쿠바 국민들과 체 게바라의 대형 깃발 ◀◀◀(귀환하는 체 게바라를 환영하는 쿠바 국민들)
60년대 저항운동의 신화적 게릴라 체 게바라의 유해가 쿠바로
돌아오던 날. 쿠바의 모든 국민들은 이 위대한 게릴라의 귀향을 열렬히 환영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쿠바의 모든 거리에서 "
체 게바라와 함께
"라는 구호가 메아리쳤고, 체 게바라의 깃발이 넘쳐 흘렀다.
의사출신의 엘리트, 쿠바의 제 2인자의 자리를 박차고 있는
자들의 억압과 착취에 대항하여 전쟁터를 누빈 이 검은 베레모에 멋진 콧수염를 기르고, 열정적인 눈빛을 지녔던, 영웅이
그가 해방시킨 쿠바의 품에서 편히 잠들기를 빌면서...
거리는 온통 게바라의 모습으로 도배되었고, 그의 사진이 찍힌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중앙 방송국에서는 매일 체 게바라의 기록영화를 방영했으며, 그의 인생을 재조명하는 학술행사들이 잇따랐고, Hasta siempre(음악듣기)와 같은 추모음악과 그가 생전에 남겼던, 저작들의 출판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외형적인 것들이 아니다.
없는 자, 착취 당하는 자, 억압 받는 자들을 위해 싸웠던 그를 마음속에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열기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그가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이들의 영웅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하기 때문이다.
집안에 걸려있는 체 게바라의 초상(전사 그리스도)"체
게바라는 나에게 성인이었어요.
이 세상에 체 게바라처럼 좋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볼리비아에 체가 투쟁한 지역의 농민들이 집에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와 함께 게바라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들도 아마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요.
그는 예수와 같이 가난하고 힘 없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으니까요"
59년 쿠바혁명 당시의 게바라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며,
한 노인이 한 말이다.
왜? 그를 "
전사 그리스도"라고까지 칭하는지 알게 하는 대목
이다.
체 게바라를 직접 대했던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 체 게바라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니 잊어서는 안되는 존재다.
쿠바를 해방시킨 뒤 국립은행 총재 등 고위직에 있으면서도
사탕수수밭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똑같이 먹고,
똑같이 입으며, 함께 노동을 했던 체 게바라의 모습은 가식
없는 진정한 영웅의 이미지로 뚜렷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영향력도 그의 죽음과 함께 쇠퇴해 버리는듯 했다.
그를 직접 접해보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그는 게릴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그가 제국주의의 간섭을 타파하기 위해 주창했던, 게릴라전이 점점
세력을 잃어가고 있고, 그의 사상적 뿌리 마르크스 주의도, 동유럽 사회주의도 붕괴되면서
빛이 바래져 버렸다.그는 이대로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았다.
90년대 이 영웅이 없는 시대가 60년대의 영웅인 그를 부르고 있었다.
사망 30주기를 맞이해 그의 영향력은 쿠바와 남미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던 것이다. 체
게바라가 목숨을 잃은 볼리비아에는 유럽과 미국, 남미등지에서 성지순례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체 게바라가 66년 8월 볼리비아에 도착해서 67년 10월 최후를 마칠 때까지의 "게바라 루트"를 그대로 답습한다.
암스테르담에서 온 한사람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우리는 대학 교정에서 게바라의 깃발을 흔들었다. 그는 우리에게 평등과 정의를 의미한다"
좀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체 게바라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던져 본다.
과연 체 게바라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렇게 건재할 수 있을까?
확답을 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체 게바라의 초상화 체 게바라는 행동과 사상을 일치시킨 특별한 사람이었다.
점점 이기적이 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사람은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찾기가 힘들다.
나약하기만 한 현대인들에게 격동의 시대를 불꽃처럼 살다 간
체 게바라와 같은 영웅을 다시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체 게바라는 앞으로도 "
이상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싸우는 위대한 전사의 이미지"로 존재할 것이다.
지금의 체 게바라는 현실적 폭발력을 상실했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잠재된 폭발력은 여전하다.
80년대 우리 사회의 많은 지식인들이, 민중들이 전태일 평전을
통해 그들의 안락한 일상에서 떨쳐 일어났던 것처럼, 체 게바라 역시 사람들이 보다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위력적이다.
"
부자에게 부를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준다"는 우리나라의 의적 홍길동이 주장
했던 것과 같은 체 게바라의 목표는 아직도 부익부 빈익빈이 편재한 인간사회에서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변함없는 목표이기도 하다.
사상운동, 노동운동 혹은 시민운동의 형태로든 이 목표를 추진하는 이들에게 체 게바라는
죽지 않았다. 언제나, 손을 잡아주는 믿음직한 동지로써 계속 살아있는 것이다.


 
가져온 곳: [꿈깡끼꾀꼴]  글쓴이: 가인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