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체 게바라"의 최후
무릎 꿇고 살기보다는 서서 죽겠다 - Che Guevara
입회인으로서 체 게바라의 총살을 목격했던 사람은 두 사람의 저널리스트, 볼리비아인
알카사르와 프랑스인 레지 드브레였다.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체 게바라는 부상당한 상태에서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함께 붙잡힌 사람은 볼리비아인 광부 윌리와 시몬 쿠바였다. 10월 8일 오후 세시 반 경이었다.
10월 9일 11시15분, CIA는 게바라를 총살하기로 결정했다.
볼리비아군은 총살을 집행하기 위해 하사관 세 사람을
불렀다. 그들은 그 중 마리오 테란을 선택했다.
테란은 차분히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체 게바라를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테란은 분노에 불타는 체 게바라 의 눈빛에서 자신이 임무를 완수할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 때 체 게바라는 그가 일을 끝낼 수 있도록 격려한다.
"쏴! 겁내지 말고! 방아쇠를 당겨!"
감히 체 게바라를 쏘지 못했던 심약한 볼리비아 병사는
오후 12시가 되고, 술까지 한잔 한 상태에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 직후 다시 다른 볼리비아 군인 페레스 중위가 확인사살로 게바라의 목에 총을 쏘았다. 후일 마리오 테란은 라파스의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쫓겨 다니다가,1968년 4월 자신이 살던 집 4층에서 투신자살했다.
체 게바라의 사살을 확인하기 위해 미 국방부와 CIA는 총력을 기울여 움직였다.
여기서, 그의 사형에 대한 미 국방부와 CIA의 보고서 내용을 일자별로 잠시 요약해 보겠다.
미국방부 기밀 문서 1967년 4월 28일
미국 정부는 게바라의 게릴라부대를 볼리비아에서 제거하기 위해 파나마에 있는 미 8사단의
특수부대 소속 그린베레 16명의 최정예 요원과 CIA 전문가들을 파견하여 볼리비아 제2보병
대대를 훈련시키고 체 게바라를 제거하겠다는 내용.
백악관 기밀문서 1967년 5월 11일
메모 형식의 이 보고서는 미대통령에게 체 게바라의 행적을 CIA가 계속 추적하고 있으며,
대통령에게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계속 인지 시켜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백악관 기밀문서 1967년 10월 9일
존슨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모로 볼리비아부대가 체 게바라를 사살했다는 미확인 정보 내용.
백악관 문서 1967년 10월 10일
1967년 볼리비아 부대의 보고 내용으로 볼때, 10월 8일의 공세에서 체 게바라가 게릴라
희생자들 사이에 있다는 확신을 할 수 없다는 내용.
백악관 보고서 1967년 10월 11일
이 보고서에서 Walt Rostow는 존슨 대통령에게 99%의 확신을 가지고, 체 게바라가 지난
전투에서 사살되었음을 확신한다고 보고한다. 또한 미국에 16명의 그린베레 최정예
요원들에게 훈련받은 볼리비아 제 2보병대대가 그를 코너로 몰았고, 그리고 그를 사살
했음을 보고한다.
미 국무부 보고서 1967년 10월12일
체 게바라의 죽음이 라틴아메리카와 미국 그리고 소련에 미칠 중요한 의미를 중심으로
지역 전문가가 만든 보고서이다.
백악관 기밀문서 1967년 10월13일
백악관은 체 게바라가 제거 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정보국 CIA 기밀문서 1967년 10월 17일
CIA가 1966년 9월부터 1967년 6월까지 수집한 쿠바와 소련사이에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혁명활동에 대한 불화와 이견에 대해 본국에 보내는 보고서이다.
볼리비아 주재 미 대사 핸더슨의 보고서 1967년 10월 18일
볼리비아주재 미 대사인 핸더슨이 본국에 보내는 체 게바라의 죽음에 관한 보고서로써
체 게바라는 확실히 사살되었으며, 그 증거로 CIA요원의 감시 아래 두 손목을 잘랐으며,
시신은 비밀리에 빌라그란데 근처의 활주로에 매장 되었음을 보고한다.
볼리비아 제2보병대대의 훈련경과와 활동, 체 게바라의 체포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상세히
기술한 보고서이다.
특히 마지막으로 체 게바라를 쏜 볼리비아 병사의 보고가 흥미롭다.
체 게바라가 그에게 한 마지막 말은 "Know this now, you are killing a man"이었다.
그는 죽음 앞에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후에, 이 병사는 방아쇠를 당길 때의 심정을 이렇게 진술한다.
"그의 눈은 강하게 빛나고 있었고, 전 그의 눈에 매혹 당했죠.
나는 그 위대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CIA 보고서 1967년 10월 18일
체 게바라의 죽음에 관한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국민을 향한 연설을 번역.
1967년10월9일 12시 쿠바혁명의 주역
이었으며,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을 꿈꾸던,
한 젊은이의 파란 많은 일생은 39세를
일기로 볼리비아의 이름 없는 작은 촌락
라이게라(La Higuera)에서 수발의 총성
으로 막을 내렸다.
부르조아의 아들이었으나, 진정 민중을
사랑하여, 안락한 의사의 직업도, 국가
중앙은행 총재라는 명예도 쿠바의 2인자
라는 지위도 모두 포기한 채, 항상 민중과
함께 먹고, 함께 입으며, 억압에 대항하는
민중해방 전쟁의 최전선에서 투쟁했던 이
위대한 게릴라 전사는
"무릎 꿇고 살기보다는 서서 죽겠다"고 한
자신의 말처럼, 두 눈을 감지 못한 채
신화(神話)가 되어 쓰러졌다.
체 게바라의 죽음 이후, 최근까지 활발한 역사적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흔히들 말하는 "역사가 말해줄 것이다."란 말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체 게바라는 "산타클라라 전투의 영웅", "위대한 민중의 사령관", "전사 그리스도",
"20세기 최후의 전사", "최후의 게릴라"등등
온갖 미사어구가 난무할 정도로 역사적으로 위대하게 평가 받는
가운데, 또다른 쿠바혁명의 영웅 피델 카스트로는 이 재평가 작업
에서 체 게바라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미국의 견제와 미국과 문제를 일으키기 싫었던, 소련의 압력은 피델이 조직했던, 체 게바라 구조특공대의 해체를 요구했고, 피델 카스트로는 이에 굴복해 체 게바라에게 원조 병력을 보내주지
않았다.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체 게바라는 결국 부상을 당한 채
체포되어, 볼리비아군에게 살해되고 말았다.
과연 피델 카스트로는 위의 내용처럼 소련의 눈치를 보느라 쿠바 혁명의 둘도 없는 동지인 체 게바라를 버렸을까?
사실을 알 수는 없지만, 만약 정말 그랬다면, 그는 이미 체 게바라와 쿠바의 혁명을 이야기
하던 그가 아니다. 권력에 눈이 먼 또다른 독재자일 뿐이다...
쿠바의 대다수 민중들은 그때 왜? 피델이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는지 의심하고 있다.
그리고, 피델 카스트로가 죽은 후에 그가 과연 체 게바라 만큼 민중의 존경을 받을 수 있을지도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체 게바라는 최후의 순간까지 피델을
믿었던 것 같다. 아니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사형당하기 직전 그가 한 유언 내용이
"피델에게 전해 주시오. 이 실패가 혁명의 종말이
아니라고......"라고 말한 것을 보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체포된 직후, 그를 처음으로
만났던 구스만이라는 사람이 게바라의 최후 순간을
공개했는데, 당시 헬리콥터 조종사였던 구스만은 체
게바라 등 생존 게릴라들이 억류된 마을로 파견됐다.
그는 게바라가 처형되기전 그와 장시간 마지막 대화를
나눈 증인으로, 대화는 볼리비아 군인 수명이 둘러싼
작은 방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데 구스만에 따르면 체 게바라는 피맺힌 목소리로
"피델이 날 배신했다"고 몇번이나 되풀이했다고 한다.
게바라는 혁명의 실패 원인에 대해 "쿠바와 볼리비아
공산당으로부터의 지원이 줄고, 당과 볼리비아 노동자
세력의 분열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데 구스만은 게바라에게 담배를 주었고 부상당한 체 게바라는 고마움의 표시로 장화속에서 갈색표지의 육필로 쓴 소책자를 꺼내 구스만에게 건냈다고 한다. 진정 피델 카스트로는 그를 배신했단 말인가? 이 역시 시간이 더 흐른 후
"역사가 말해 줄 것이다."
어쨌든, 체 게바라를 쿠바민중들의 품으로 꼭! 찾아오겠다는 피델 카스트로의 약속은 지켜
졌다. 비록 유해로 돌아왔지만.......
체 게바라를 살해한 볼리비아군은 이 위대한 게릴라의 두 손목을 잘라 그를 사형
시킨 증거로 그의 친구 피델 카스트로에게로 보냈다.
그리고,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암매장했다.
그는 갔지만,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혹자들은 그에게 "최후의 게릴라"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틀린 말이란 것을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시체 위로 또다른 게릴라들이 민중을 위해 싸울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패배해도 승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에베레스트 산정에 도달하려다가 많은 사람이 실패했지만,
결국 에베레스트는 정복되었습니다."- Che Guevara
(비밀리에 매장된 체 게바라의 시신은 1997년에야 발견되었고, 그가 죽은지 30년만에 그가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켰던, 조국 쿠바로 돌아와 묻혔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는 서서 죽겠다 - Che Guevara
입회인으로서 체 게바라의 총살을 목격했던 사람은 두 사람의 저널리스트, 볼리비아인
알카사르와 프랑스인 레지 드브레였다.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체 게바라는 부상당한 상태에서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함께 붙잡힌 사람은 볼리비아인 광부 윌리와 시몬 쿠바였다. 10월 8일 오후 세시 반 경이었다.
10월 9일 11시15분, CIA는 게바라를 총살하기로 결정했다.
볼리비아군은 총살을 집행하기 위해 하사관 세 사람을
불렀다. 그들은 그 중 마리오 테란을 선택했다.
테란은 차분히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체 게바라를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테란은 분노에 불타는 체 게바라 의 눈빛에서 자신이 임무를 완수할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 때 체 게바라는 그가 일을 끝낼 수 있도록 격려한다.
"쏴! 겁내지 말고! 방아쇠를 당겨!"
감히 체 게바라를 쏘지 못했던 심약한 볼리비아 병사는
오후 12시가 되고, 술까지 한잔 한 상태에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 직후 다시 다른 볼리비아 군인 페레스 중위가 확인사살로 게바라의 목에 총을 쏘았다. 후일 마리오 테란은 라파스의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쫓겨 다니다가,1968년 4월 자신이 살던 집 4층에서 투신자살했다.
체 게바라의 사살을 확인하기 위해 미 국방부와 CIA는 총력을 기울여 움직였다.
여기서, 그의 사형에 대한 미 국방부와 CIA의 보고서 내용을 일자별로 잠시 요약해 보겠다.
미국방부 기밀 문서 1967년 4월 28일
미국 정부는 게바라의 게릴라부대를 볼리비아에서 제거하기 위해 파나마에 있는 미 8사단의
특수부대 소속 그린베레 16명의 최정예 요원과 CIA 전문가들을 파견하여 볼리비아 제2보병
대대를 훈련시키고 체 게바라를 제거하겠다는 내용.
백악관 기밀문서 1967년 5월 11일
메모 형식의 이 보고서는 미대통령에게 체 게바라의 행적을 CIA가 계속 추적하고 있으며,
대통령에게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계속 인지 시켜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백악관 기밀문서 1967년 10월 9일
존슨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모로 볼리비아부대가 체 게바라를 사살했다는 미확인 정보 내용.
백악관 문서 1967년 10월 10일
1967년 볼리비아 부대의 보고 내용으로 볼때, 10월 8일의 공세에서 체 게바라가 게릴라
희생자들 사이에 있다는 확신을 할 수 없다는 내용.
백악관 보고서 1967년 10월 11일
이 보고서에서 Walt Rostow는 존슨 대통령에게 99%의 확신을 가지고, 체 게바라가 지난
전투에서 사살되었음을 확신한다고 보고한다. 또한 미국에 16명의 그린베레 최정예
요원들에게 훈련받은 볼리비아 제 2보병대대가 그를 코너로 몰았고, 그리고 그를 사살
했음을 보고한다.
미 국무부 보고서 1967년 10월12일
체 게바라의 죽음이 라틴아메리카와 미국 그리고 소련에 미칠 중요한 의미를 중심으로
지역 전문가가 만든 보고서이다.
백악관 기밀문서 1967년 10월13일
백악관은 체 게바라가 제거 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정보국 CIA 기밀문서 1967년 10월 17일
CIA가 1966년 9월부터 1967년 6월까지 수집한 쿠바와 소련사이에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혁명활동에 대한 불화와 이견에 대해 본국에 보내는 보고서이다.
볼리비아 주재 미 대사 핸더슨의 보고서 1967년 10월 18일
볼리비아주재 미 대사인 핸더슨이 본국에 보내는 체 게바라의 죽음에 관한 보고서로써
체 게바라는 확실히 사살되었으며, 그 증거로 CIA요원의 감시 아래 두 손목을 잘랐으며,
시신은 비밀리에 빌라그란데 근처의 활주로에 매장 되었음을 보고한다.
볼리비아 제2보병대대의 훈련경과와 활동, 체 게바라의 체포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상세히
기술한 보고서이다.
특히 마지막으로 체 게바라를 쏜 볼리비아 병사의 보고가 흥미롭다.
체 게바라가 그에게 한 마지막 말은 "Know this now, you are killing a man"이었다.
그는 죽음 앞에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후에, 이 병사는 방아쇠를 당길 때의 심정을 이렇게 진술한다.
"그의 눈은 강하게 빛나고 있었고, 전 그의 눈에 매혹 당했죠.
나는 그 위대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CIA 보고서 1967년 10월 18일
체 게바라의 죽음에 관한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국민을 향한 연설을 번역.
1967년10월9일 12시 쿠바혁명의 주역
이었으며,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을 꿈꾸던,
한 젊은이의 파란 많은 일생은 39세를
일기로 볼리비아의 이름 없는 작은 촌락
라이게라(La Higuera)에서 수발의 총성
으로 막을 내렸다.
부르조아의 아들이었으나, 진정 민중을
사랑하여, 안락한 의사의 직업도, 국가
중앙은행 총재라는 명예도 쿠바의 2인자
라는 지위도 모두 포기한 채, 항상 민중과
함께 먹고, 함께 입으며, 억압에 대항하는
민중해방 전쟁의 최전선에서 투쟁했던 이
위대한 게릴라 전사는
"무릎 꿇고 살기보다는 서서 죽겠다"고 한
자신의 말처럼, 두 눈을 감지 못한 채
신화(神話)가 되어 쓰러졌다.
체 게바라의 죽음 이후, 최근까지 활발한 역사적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흔히들 말하는 "역사가 말해줄 것이다."란 말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체 게바라는 "산타클라라 전투의 영웅", "위대한 민중의 사령관", "전사 그리스도",
"20세기 최후의 전사", "최후의 게릴라"등등
온갖 미사어구가 난무할 정도로 역사적으로 위대하게 평가 받는
가운데, 또다른 쿠바혁명의 영웅 피델 카스트로는 이 재평가 작업
에서 체 게바라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미국의 견제와 미국과 문제를 일으키기 싫었던, 소련의 압력은 피델이 조직했던, 체 게바라 구조특공대의 해체를 요구했고, 피델 카스트로는 이에 굴복해 체 게바라에게 원조 병력을 보내주지
않았다.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체 게바라는 결국 부상을 당한 채
체포되어, 볼리비아군에게 살해되고 말았다.
과연 피델 카스트로는 위의 내용처럼 소련의 눈치를 보느라 쿠바 혁명의 둘도 없는 동지인 체 게바라를 버렸을까?
사실을 알 수는 없지만, 만약 정말 그랬다면, 그는 이미 체 게바라와 쿠바의 혁명을 이야기
하던 그가 아니다. 권력에 눈이 먼 또다른 독재자일 뿐이다...
쿠바의 대다수 민중들은 그때 왜? 피델이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는지 의심하고 있다.
그리고, 피델 카스트로가 죽은 후에 그가 과연 체 게바라 만큼 민중의 존경을 받을 수 있을지도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체 게바라는 최후의 순간까지 피델을
믿었던 것 같다. 아니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사형당하기 직전 그가 한 유언 내용이
"피델에게 전해 주시오. 이 실패가 혁명의 종말이
아니라고......"라고 말한 것을 보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체포된 직후, 그를 처음으로
만났던 구스만이라는 사람이 게바라의 최후 순간을
공개했는데, 당시 헬리콥터 조종사였던 구스만은 체
게바라 등 생존 게릴라들이 억류된 마을로 파견됐다.
그는 게바라가 처형되기전 그와 장시간 마지막 대화를
나눈 증인으로, 대화는 볼리비아 군인 수명이 둘러싼
작은 방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데 구스만에 따르면 체 게바라는 피맺힌 목소리로
"피델이 날 배신했다"고 몇번이나 되풀이했다고 한다.
게바라는 혁명의 실패 원인에 대해 "쿠바와 볼리비아
공산당으로부터의 지원이 줄고, 당과 볼리비아 노동자
세력의 분열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데 구스만은 게바라에게 담배를 주었고 부상당한 체 게바라는 고마움의 표시로 장화속에서 갈색표지의 육필로 쓴 소책자를 꺼내 구스만에게 건냈다고 한다. 진정 피델 카스트로는 그를 배신했단 말인가? 이 역시 시간이 더 흐른 후
"역사가 말해 줄 것이다."
어쨌든, 체 게바라를 쿠바민중들의 품으로 꼭! 찾아오겠다는 피델 카스트로의 약속은 지켜
졌다. 비록 유해로 돌아왔지만.......
체 게바라를 살해한 볼리비아군은 이 위대한 게릴라의 두 손목을 잘라 그를 사형
시킨 증거로 그의 친구 피델 카스트로에게로 보냈다.
그리고,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암매장했다.
그는 갔지만,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혹자들은 그에게 "최후의 게릴라"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틀린 말이란 것을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시체 위로 또다른 게릴라들이 민중을 위해 싸울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패배해도 승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에베레스트 산정에 도달하려다가 많은 사람이 실패했지만,
결국 에베레스트는 정복되었습니다."- Che Guevara
(비밀리에 매장된 체 게바라의 시신은 1997년에야 발견되었고, 그가 죽은지 30년만에 그가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켰던, 조국 쿠바로 돌아와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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