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북한의 대선개입을 우려하는 내용의 기사와 칼럼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는 북한이 대선이라는 큰 정치적 행사를 앞두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목적으로 한 것이고, 또 아직 권력기반이 취약한 김정은 체제 안정을 위한 내부 충성경쟁을 유도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 달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은 통일부 국정감사 자료를 인용해 북한 매체가 국내 선거와 관련된 내용을 직접 거명한 횟수 등을 놓고 볼 때 북한의 대선 개입 시도가 5년 전에 비해 3배가량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북한이 유튜브와 트위터 등 SNS 온라인 매체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사실도 지적했다.
이제 북한의 남한 대선개입은 일시적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5년마다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대선 상수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주로 특정 후보와 정당을 비방하거나 특정 정치진영을 비난하는 모습으로 자주 나타나지만, 여든 야든 간에 북한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남한 정치권뿐 아니라 사회에 끼침으로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거나 자신들의 내부권력 싸움에 이용하려는 것만은 분명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올해 대선은 그런 측면에서 북한의 동향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 간에 의견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김정은이 아직 내부 권력체계를 제대로 다지지 못했고, 얼마 전에는 당과 군 사이에 권력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을 우리 당국이 포착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었다.
이에 따르면 노동당과 군부 각 파벌들이 자리다툼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고, 김정은 정권이 겉으로는 안정화의 길에 접어든 듯 하지만 내부는 매우 복잡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북한 내부에서 권력 갈등이 심해지면 남한을 이용해(도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파워게임에 악용하려는 시도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대선 앞두고 북한공작원을 시켜 KAL기 폭파란 만행을 저지른 김정일
그런 측면에서 지난 1987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북한이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기를 공중폭파해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렸던 사건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당시처럼 북한이 공작원을 동원해 시한폭탄과 폭발물로 우리의 민간항공기를 폭파시키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기는 어렵다고 본다.
테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철저한 대비능력, 방지기술을 볼 때 그런 비극은 다시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된다. 또한 남한과 세계의 원조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북한이 전혀 뒷감당을 못할 그런 무모한 테러를 감행하리라는 것도 상식적으로 볼 때 가능성이 매우 적다.
하지만 문제는 북한은 근본적으로 예측불가능한 집단이고, 최첨단 사이버테러전까지 감행할 정도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기술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또다시 어떤 방법으로 제2의 칼기 폭파사건을 일으킬지 모르는 집단이라는 데 있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김정은의 권력게임 과정에서 당과 군부 어디에서 무모한 도발이 다시 계획되고, 시도될지 모르는 일이다.
당시 북한이 저지른 대한항공 폭파사건은 다시는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사건이었다. 여객기는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기착한 후, 다시 방콕에 기착하기 위해 비행하던 중이었다. 기내엔 중동에서 귀국하던 우리의 해외근로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승객 93명과 외국승객 2명, 승무원 20명 이렇게 총 115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여객기는 11월 29일 오후 2시경 미얀마의 벵골만 상공에서 무선보고를 끝으로 소식이 끊겼고, 사건발생 15일만인 12월 13일 양곤 동남쪽 해상에서 공기주입펌프 등이 파손된 KAL기 구명보트 등 부유물 7점이 발견됨으로써 비행 중 폭발에 의해 추락한 것이 확인됐다.
결국 치밀한 수사 끝에 이 여객기는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라는 일본인으로 위장한 북한 대남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가 김정일의 친필지령을 받아 기내에 놓고 내린 시한폭탄과 술로 위장한 액체 폭발물(PLX)에 의해 폭파된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미국은 북한을 즉각 테러국가로 규정해 제재했고, 일본 역시 북한 공무원의 입국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유엔에선 긴급안전보장이사회가 소집돼 우리 국민을 상대로 엄청난 테러를 저지른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기도 했다.
지난 6월 미국 국무부는 ‘대한항공 858’이라는 제목으로 당시의 비밀외교 전문 57건을 공개한 바 있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과 미 국무부가 주고받은 전문에 따르면 미국은 자체 조사 등을 통해 김현희를 북한 공작원으로 결론 내렸던 것으로 확인이 됐다. 미국이 해제시한을 앞당겨 이와 같은 비밀전문을 일찍 공개한 데엔 아마도 이른바 ‘김현희 가짜 논란’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북한은 대선 앞둔 국내 여론 분열 등 다목적 위해 얼마든지 비상식적인 일을 벌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종북세력의 여전한 가짜 주장에도 불구하고 김현희를 두고 벌어진 진위 논란은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두 차례에 걸친 조사결과 진짜 범인이라는 게 다시 확인된 바 있다. 더 이상 이 문제를 가지고 논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저지른 대한항공 폭파 만행은 상당 기간 동안 국내 여론을 분열시켰고, 정치적으로 악용돼 온 게 사실이다.
이 사건을 저지른 김정일의 아들이 김정은이고, 젊은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서구의 선진국에서 유학하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은 김정은이 설마 그럴 수 있겠는가 하는 시각도 대부분의 시각일 것이다. 하지만 대한항공을 폭파한 그런 김정일도 상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국내 일각으로부터 받기도 했다. 단순히 개인을 평가하는 좁고 단편적 시각으로는 북한이란 집단에 대해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북한이라는 집단을 이해할 수 없는 외계집단처럼 봐서도 안 되겠지만,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집단으로만 봐서도 안 된다. 상식적으로 볼 때 현재 일어나선 안 되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도발을 해온 집단이 바로 북한이기 때문이다. 제2의 칼기 폭파사건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최근 북한에도 개혁개방 바람이 불고 있다곤 하나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권력이 교체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수선한 정국이고, 우리는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이다. 이럴 때 일수록 북한의 미세한 움직임이라도 놓쳐선 안 된다. 더불어 각종 테러 가능성 등에도 철저히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박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