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韓中日) 정치의 심층구조(deep structure)는 사뭇 다르다. 효(孝)의 한국에선, 임금은 버려도 아버지는 버릴 수 없다. 아버지는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따라야 하므로, 아버지가 새 집(새 정당)으로 이사 가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대충 걸치고 잽싸게 따라가야 한다. 아버지가 어제 저녁에 한 말씀을 오늘 아침에 180도로 바꿔도 눈을 똑바로 뜨고 따지면 안 된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맞장구쳐야 한다.
충(忠)의 일본에선, 한국과 정반대로 아버지는 버려도 주군은 버릴 수 없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정당이 새로 생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물며 무소속이 설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또한 지금도 국회의원은 선거야 꼬박꼬박 치르지만 거의 종신직이고 그가 물러나면 친자 또는 양자에 의해 세습되기 십상이다. 김대중이 부부 합작으로 지지리도 못난 아들을 고향에서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준 것이 두고두고 욕 얻어먹고, 김영삼이 사랑하는 둘째 아들을 아직도 국회의원 못 만들어 주는 것이 일본인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왜 그럴까? 김대중과 김영삼을 정치의 아버지로 모시게 되면,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이 아들과 딸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김(兩金)씨의 아들딸도 똑같은 경쟁 상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런 공도 없고 능력도 없는 자가 단지 혈육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내’ 자리를, ‘내’ 상속분을 빼앗아간다? 그건 아무리 아버지라도 용납할 수가 없다. 의절도 불사한다.
의(義)의 중국에선, 그 중간으로 황제는 버릴지언정 친구는 버릴 수 없다(寧能反皇帝, 不能反朋友哉). 현재 중국 공산당의 집단지도체제는 이것의 한 변형이다. 양산박의 108형제(실은 산적)가 탁발승 주원장이 그러했듯이 맹자가 갈파한 천명(天命)을 받아, 황음무도(荒淫無道)한 천자를 몰아내고 큰형님을 새 천자로 모셨다고 보면 된다. 막상 천자가 되자, 큰형님 모강(毛江)이 주화입마(走火入魔)하여 천하를 어지럽혔지만, 그래도 형님은 형님이라 죽을 때까지 묵묵히 따르고,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한 형님으로 모신다. 공(功)이 7이요, 과(過)가 3이느니라.
1960년대 말부터 30년간 한국의 정치계는 양김(兩金)씨의 세계였다. 김대중과 김영삼의 세계였다. 그들은 각각 약 30%의 국민에게 정치계의 아버지로 모셔졌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도합 30년간 임금의 위치에 있었다. 세상의 하늘인 임금에게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머리는 조아리되, 마음속의 하늘이신 아버지가 세상의 새 하늘이 될 기회를 주지 않는 한, 김대중과 김영삼의 아들딸은 승복하지 않는다. 임금이 죽어도 승복하지 않는다. 대를 이어 승복하지 않는다. 이전 임금이 살아 있으면, 살인마로 부정부패자로 낙인찍어 골목 강아지로 만들어 버린다. 임금 박정희와 전두환이 설령 중국 역사상 최고최장(最高最長)의 평화번영 시대였던 강희제와 건륭제 연간의 강건성세(康乾盛世)에 버금갈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고 한들,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랑캐 만주족에 의한 식민통치에 지나지 않는다며, 독재자의 얍삽한 회유책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 공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청나라의 절대다수 한족처럼 한국의 절대다수 노동자농민이 질곡에 신음했을 따름이라고 숫제 역사를 고쳐 버린다.
1980년대에 처음에는 은밀하게 나중에는 공공연하게 적지 않은 한국인에게 새로운 아버지 겸 임금이 모셔졌다. 그가 바로 독재자 김일성이다. 지금은 김일성 2세도 지나 김일성 3세가 그들의 아버지다. 그들은 김씨왕조의 왕자와 공주가 되었다. 이들은 절대 김일성을 비판하지 않는다. 할 수가 없다. 갖은 궤변으로 독재자 김일성을 감싼다. 대한민국은 무조건 헐뜯고 욕하고 저주한다. 미국도 용서할 수가 없다. 일본은 당장 처 죽일 듯 방방 뜬다.
2004년 4월 15일 김일성의 생일에 한국 역사상 세 번째로 정치의 아버지 아니 어머니가 홀연히 등장했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그렇게 스스로의 힘으로 박정희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그녀의 무기는 둘밖에 없었다. 천막당사와 붕대 손! 이 둘밖에 없었다. 저들의 기관단총과 대포에 맞서 돌멩이 하나도 없이 풀잎과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말의 꽃과 마음의 향기로 맞서는 꼴이었다. 돈과 방송과 인터넷과 신문은 모두 저들 편이었다. 최첨단 무기였다. 이런 막강한 적을 상대로, 6.15세력을 상대로 박근혜는 노무현의 천하통일을 저지했다. 개헌 음모를 원천 봉쇄했다. 적화통일의 교두보인 6.15공동선언을 자유통일의 철옹성인 헌법 위에 놓을 수 있는 공공연한 개헌 음모를 원천 봉쇄했다. 열우당은 방송과 인터넷을 총동원하여 선전하고 선동하고 협박했지만, 5000만 국민을 허수아비로 만들었지만, 386운동권은 호언장담했던 국회의원 3분의 2를 확보하지 못했다. 김대중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김정일의 생명줄을 몇 가닥 끊어 버렸다. 비록 전화위복했으나 노무현은 너무도 아쉬워 박근혜와 살림을 합치자고 아름다운 쌍꺼풀을 악어 눈처럼 깜박이며 집적거렸다. 유혹했다. 협박했다. 아버지의 위치에 오르지 못한 김대중의 양아들에게, 급이 맞지 않는 노무현에게, 한 항렬 아래의 노무현에게, 박근혜는 하늘의 달을 쳐다보며 코웃음 쳤다.
사람들은 깨달았다. 겪어 본 후에, 양김씨가 차례로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 박정희는 영원한 아버지임을 알았다. 권력을 휘두른 임금이 아니라 국민을 아들딸로 여기고 엄하긴 했지만, 세종대왕급의 위업을 성취하여 그것을 전부 국가와 국민에게 오롯이 바쳤음을 알았다. 김대중과 김영삼이 퇴임 후 그의 양아들딸들은 많은 이들이 뿔뿔이 흩어졌지만, 박정희의 아들딸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아니, 돌아온 아들딸이 집을 지키며 스스로 거듭 나서 정치계의 어머니로 떠오른 박근혜에게 우르르 달려갔다. 그러나 박정희를 영원한 아버지로 모신 이들이 모두 간 것은 아니다. 절반 정도밖에 안 갔다. 대통령이 되기 전 김대중과 김영삼이 그러했듯이 박근혜의 요지부동 지지층은 약 30%밖에 안 된다. 21%가 모자란다.
박근혜 거부 세력은 김일성 지지파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김대중과 김영삼 지지파와 중도파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박정희는 지지하되 경제성장의 공(功)만 인정하는 이들은, 조선과 동아가 대표적인데, 그들은 아직도 박근혜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을 민주우파라고 할 수 있고, 관념적 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실체적 민주주의자라 아니라, 그들은 서구적 민주주의를 달달 욀 뿐 이해력이 영 떨어지는 데도 그걸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어쩌면 아예 자신의 무지를 모를지도 모른다. 5년 전 이들은 고려대 학생회장 출신 뻐꾸기 이명박을 밀었다. 지금 이들은 스스로 진보라고 우기는 문철수를 은근히 비판적으로 지지한다. 김일성을 임금 겸 아버지로 모신 386운동권이 김대중을 비판적으로 지지한 것과 비슷하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박정희는 누가 뭐래도 독재자로 보기 때문에 박정희에 대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는 중립을 가장하여 문철수와 한 목소리로 반민주적 반헌법적 연좌제를 적용하여 집요하게 사과를 부추긴다. 문철수의 의혹은 작게 보도하고 박근혜의 실수는 크게 보도한다. 무엇보다 박근혜 스스로 김대중과 김영삼에 이어 한국 역사상 세 번째로 요지부동표 30%를 확보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의외로 이런 자들이 새나라당 안에서도 만만찮은 비중을 차지한다. 여기에 박근혜의 깊은 고뇌가 있다. 21%에서 40%까지는 확실히 끌어왔지만, 나머지 11%는 중도파에서 끌어와야 하는데, 문철수의 고정 지지파보다 이들 자칭 민주우파의 방관이나 방해 때문에 지지율이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박근혜는 걱정스럽게도 당선되면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는 좌파적 공약으로 물 타기 작전을 펼치지만, 이들 자칭 민주우파는 날카로운 비판보다 가시 돋친 빈정거림으로 중도파의 발걸음을 잡아 둔다.
NLL과 제주도강정마을에서 문철수의 숨겨진 안보관이 물 위로 점점 뚜렷이 떠오르는 것이 어린 시절에도 전방의 안보 상황을 최우선적으로 걱정한 박근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 모르겠다. 2007년 대선 전에 북한인권운동에 단 한 번 얼굴을 내밀지 않았던 이명박과 달리, 북한의 협박에 공식적으로 허가 받은 전단도 날리지 못하게 원천봉쇄하는 이명박과 달리, 박근혜는 김정일을 만나고 와서도 당당하게 뮤지컬 ‘요덕스토리’ 공연 등 북한인권운동에 얼굴을 내밀고 탈북자와 손을 잡고 등을 두드려 주고, 진실의 풍선 전단 날리기 본부 탈북자 총연합단체의 결성을 축하해 준 것을 한 번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조선과 동아가 이제라도 공정하게 보도하기만 해도, 탈북자들이 거의 한 마음으로 박근혜를 지지하고 김씨왕조가 박근혜를 사갈시하는 것도 공정하게 보도하기만 해도, 중도파들의 표심이 오른쪽으로 많이 기울 것이다. 조선동아의 맹성을 촉구한다.
(2012.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