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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수복 기념 거부한 박원순 서울시장

鶴山 徐 仁 2012. 10. 2. 00:35

 

서울수복 기념 거부한 박원순 서울시장

 

 

 

추석연휴에 국군의 날 행사가 뭐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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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수복 기념식에 불참한 골수 좌익분자 박원순 서울시장

9월 29일 SBS는 “'서울시' 없는 '서울 수복 기념식'”이라는 ‘취재파일’을 통해 올해 ‘9.28 서울수복 기념식’에 서울시장인 박원순이 없었고, 서울시도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음을 알렸다. 이날 ‘호지명 숭배자’로 보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 서울수복 기념식에 참석하는 대신에 대신, 합정동 시민농성장(대형마트 입주 반대시위) 현장에 참석했다고 한다. 골수 종북좌익분자로 알려진 박원순은 뚜렷하게 빨갱이나 보여줄 그런 ‘반서울적인 행동’을 한 것으로 정상적 국민들의 눈에 비쳐진다. 제주4.3사태를 뒤집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골수 좌익분자인 박원순에게 빨갱이들을 물리치고 서울시를 국군이 수복한 역사적 사실은 뼈아픈 날인지도 모른다. 이런 박원순의 행태에 대해 시스템클럽의 한 네티즌(우주)는 “서울시를 빨갱이로부터 탈환한 기념일에 서울시장이 불참하다니, 이런 사람이 서울시장 자격이 있는 겁니까?“라고 반문했다.

SBS는 “62년 전 어제(9월28일)는 해방 이후 수도 서울이 가장 환희로 넘쳤던 날입니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100일 가까이 지난 1950년 9월 28일,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우리 해병대와 미 해병대가 격전에 격전을 치른 끝에 서울을 탈환했습니다. 역사적인 '9.28 서울 수복'입니다”라며 “매년 이날 서울에선 기념식이 열립니다. 어제도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9.28 서울 수복 62주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당시 탈환작전에 참가하셨던 노병들도 오셨고, 예비역 해병대, 시민, 학생들도 왔습니다. 외국인들도 '서울 수복'을 축하하기 위해 비를 맞으며 자리를 지켰습니다”라며 “그러나 서울시는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런 박원순 시장의 행태에 대해 시스템클럽의 한 네티즌(멸공동악)은 “그런 者를 市長으로 뽑은 어리석은 시민들. 自業自得이 아닌가?”라고 반응했다.

SBS의 이 ‘취재파일’은 “비도 오는데 굳이 안 오셔도 되는 분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오셔야 마땅한 분들이 없었습니다. 바로 서울시청 분들입니다. 서울과 서울시민을 대표하는 기관이니, 서울을 되찾은 날을 기념하는 행사에 오셔야지요. 시장 바쁘시면 부시장 오시면 되고, 이도저도 안 되면 실국장님들 오시면 될텐데 아무도 안 오셨습니다”라며 “예전에는 서울시 관계자들이 왔습니다. 어지간하면 시장이 왔고, 정 바쁘면 부시장, 비상기획관이라도 오곤 했습니다. 목숨과 영혼을 걸고 서울 탈환에 나섰던 우리의 영웅들의 희생을 기리는 자리이니 시장을 비롯한 서울시청 관계자들, 아무리 바빠도 왔었는데 어제는 안 왔습니다”라며 “추석 민생 점검에 바쁘다”는 서울시의 핑계를 소개했다. 박원순의 눈치를 긁은 서울시 직원들도 서울시가 빨갱이들의 손에서 벗어난 날의 기념식에 일체 얼쩡거리지 않았던 것이다.

서울시가 해병대에 밝힌 불참 명분은 “시장님이 추석을 맞아 민생현장을 둘러보느라 틈이 없다”였다고 전한 SBS는 “추석 연휴 하루 전날, 공무원 입장에선 마지막 근무일이니 바빴겠죠. 너무 바빠서 단 한 사람도 서울 수복 기념식에 들를 틈이 없었을 정도였다는 겁니다”라고 전했다. 사실은 박원순이라는 철저한 종북좌익분자가 정치적 노선에 따라 서울시 수복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 ‘서울수복 기념식 불참’일 게다. SBS는 또 “서울시는 행사 주최 자격도 버렸습니다. 추석이라서 바쁘다는 핑계가 무색해지는 지점입니다. 기념식에도 안 오고 행사 공동주최도 안한다는 것은 시장부터 말단까지 추석 한참 전부터 민생 점검에 바빴다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라며 “올해 해병대 혼자 서울 수복 기념식을 주최하니 무척 초라했습니다. 목숨과 영혼을 바쳐 서울을 탈환한 노병들이 자기들끼리 노고를 치하하는 어색한 자리로 비쳐져 보는 이를 안타깝게 했습니다”라고 전했다.

SBS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타공인 진보 정치인입니다(종북좌익분자를 ‘진보’라고 부르는 SBS는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 그래서 박 시장의 서울 수복 기념식 불참을 두고 기념식 현장에서는 ‘진보 정치인의 진보 색채 안보관을 엿볼 수 있다’, ‘안보를 등한시하는 정치인’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라며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진보와 보수가 다를 수 없습니다. 내 나라, 내 민족 지키자는데 사상의 틀은 무의미합니다. 안보는 가치중립적이고, 초당파적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안보관에도 진보가 있고 보수가 따로 있어서 논란이 빚어지곤 합니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진보 정치인 박원순 시장이 통 크게 어제 서울 수복 기념식에 나왔으면 더없이 보기 좋았을 겁니다”라며 맥 없이 박원순의 ‘9.28 서울복구 기념식’ 불참을 개탄했다.

SBS는 “어제 행사엔 탈환작전에 직접 참가했던 노병들도 참석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때 탈환작전 중에 전사하셨고, 이후엔 노환으로 돌아가셨지만 어제 오신 분들은 건강해보여서 고마웠습니다. 일제시대 넘어서자마자 맞은 전쟁, 멀쩡한 나라 만들기 위해 전부를 희생한 분들입니다. 적에게 빼앗긴 수도 서울을 되찾기 위해 적진 깊숙이 죽음을 무릅쓰고 진격한 분들입니다”라며 “서울시는 그들의 희생을 외면했습니다. 이런 서울이 미래에 적의 손에 넘어간다면 누가 목숨 걸고 나설까요? 없을 겁니다. 비참하게 외면당할 희생인데 누가 앞장서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박원순처럼 노골적인 종북좌익분자에게 SBS는 엄하게 질타하지 않고 흐리멍덩하게 개탄만 했다. 호지명을 불세출의 영웅으로 찬양한 글을 어린이들의 책에 서문으로 써준 박원순은 적화통일의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박원순은 지난해 서울에서 세계의 정상들이 모인 핵안보 정상회의에 불참하면서, 그의 친북적이고 폐쇄적이고 반안보적인 노선을 과시했다. 그는 서울시장 취임 때에 국립묘지에 가서 김대중의 묘만 참배하면서, 좌익본색을 감추기 않았다. 안철수의 결정적 도움을 받아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박원순의 일거수 일투족은 종북좌익세력의 정향(orientation)을 뚜렷하게 표출하고 있다. 시민활동가나 서울시장이 된 뒤에 박원순의 언행을 보면, 박원순은 대한민국과 양립할 수 없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박원순은 혈연적 좌익분자로서 좌익노선을 온 몸으로 표출하고 있다. 고문과 학살을 싫어해서 인권책까지 낸 박원순이 북한동포들이 당하는 억압과 학살에 대해 분노하는 언행을 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박원순은 시간만 나면 자유대한민국(서울수북)을 저주(혐오)하는 듯한 언행을 보인다. [조영환 편집인: http://www.allinkorea.net/]




추천사/호찌민을 향한 베트남의 변함 없는 우정 박원순(희망제작소 상임이사)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더 없는 행운이자 행복입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역사를 이어가며 후손들에게 삶의 등대가 되고,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용기와 열정의 불꽃이 됩니다. 아마 세기를 넘나들며 호찌민만큼 온 국민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은 지도자는 드물 것입니다. 베트남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호찌민은 여전히 국민들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마음의 연인처럼 간절하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1858년부터 117년 동안 프랑스에 지배 당하고, 1945년 일본패망 후에는 30년 동안 전쟁과 남북 분단, 그리고 다시 전쟁으로 이어지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20세기 폭력과 전쟁의 역사 그 한복판에서 베트남은 철저하게 희생되었던 민족입니다. 제국주의의 열강들에 의해 국토는 둘로 나뉘어 이념의 각축장이 되었고, 베트남 민족은 그들의 포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1945년 베트남 독립선언부터 1975년 베트남의 통일에 이르기까지 반제국주의 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인물이 바로 호찌민입니다.

호찌민은 열정적인 생애를 살았습니다. 호찌민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독립 투쟁을 한다는 것에 한없는 행복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유명한 동굴 투쟁의 시기에도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독립에 대한 열망과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었습니다.

비록 그는 사랑하는 조국 베트남의 통일을 보지 못하고 1969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의 사상과 지도력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베트남 국민들을 단결시켜 마침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물리치고 조국의 통일을 이루어 냅니다.

베트남은 오랜 시간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역사를 살았지만, 호찌민이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남겨놓은 불굴의 의지와 정신은 오늘날 눈부시게 발전해 가는 베트남의 저력이자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민족과 역사를 한없이 사랑한 호찌민, 그리고 그를 닮아 가려는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에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끈끈한 역사의 우정이 흐르고 있습니다. [박원순 변호사]

 

 



추석연휴에 국군의 날이 뭐 어때서! (東南風 네티즌 논설가)

6.25의 상황을 요약해보면, 신기한 현상이 발견된다.
1. 북괴군의 남하기간이 1950.6.25~9.15인데, 이는 약 2개월20일간.
2. 그리고 유엔군의 반격 및 북진단계, 50.9.15~11.25인데, 이 역시 약 2개월20일간.
3. 중공군의 침공과 유엔군의 재반격 단계, 1950.11.25~51.6.23으로서 약 7개월간.
4. 휴전협상에 따른 지루한 교착전 단계, 1951.6.23~53.7.27 약 2년 1개월간.

전체기간 3년1개월 중 휴전협상에 따른 지루한 교착전 단계가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중 1단계인 북괴군 남하기간 2개월20일간은 38선에서 낙동강까지인데 반하여, 유엔군의 반격 및 북진단계, 2개월20일간은 낙동강에서 혜산까지이므로 반격이 훨씬 강하고 빨랐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반격단계 중에서도 1950년 10월 1일은 동부전선에서 우리 국군이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날이다. 즉, 38선까지 원위치 하는데 보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는 게 되니까, 38선까지만 두고 볼 때 우리의 북진속도는 저들의 남하속도의 4배 이상 빨랐다는 것이 되는 셈이니, 이렇게 볼 때 10월 1일 “국군의 날”이란 게 얼마나 기념비적 가치가 큰 날인가 새삼 새겨볼 일이다. 더구나, 북괴처럼 9.9절이니 쌍십절(10.10)이니 하면서 외우기 쉬운 기념일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실제 전투상황에서 때맞추어 성취한 날이기에 그 의미가 상당히 크다고 본다.


이런 국군의 날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전투부대인지 차력시범부대인지 헷갈릴 정도로 우리 국군이 실전정예집단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여론의 눈치나 보는 놀이마당 하수꾼으로 전락한 점이다. 왜,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엔 서울 시내 퍼레이드를 벌이더니, 이제는 노무현 때처럼 계룡대에서 차력시범으로 떼우고 마는지! 그것도 국군의 날도 아닌, 9.28 서울수복 기념일도 아닌 멀쩡한 9월26일에 말이다. 정말이지 영광스럽고 신성한 국군의 날이 정치꾼들의 추석민심과 놀이문화 눈치나 봐야 할 만큼 하찮은 것인가. 정말이지 우리의 명절은 이리도 혐군(嫌軍)적인 것인가.

그나마 우리가 떳떳하게 군이라도 존재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면, 최소한 10월 1일은 국군의 날 행진을 해야 하고, 이왕 그 시기가 추석연휴면 한복차림으로 국군의 시가행렬을 환영하면 더 멋진 광경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가. 하긴, 국방비부터 삭감하는 좌익정치세력과 대통령보다 더 높은 “민간인”이라는 무소불위의 특수계급이 존재하는 현실도 모르는 바보 같은 소리가 아닌지 자괴감이 든다. http://allinkorea.net/

[ 2012-10-01, 19: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