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경희 경제부 차장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후폭풍이라는 2011년 미국·유럽의 재정위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아무도 모르던 개인과 금융회사의 빚과 숨겨진 부실이 한꺼번에 드러나 금융시장을 강타한 쇼크였다. 2011년 글로벌 재정위기는 다르다. 금융위기를 막느라 나랏빚이 엄청 늘었다고는 하지만 미국 경제가 빚더미 위에 앉아있던 건 한두 해 된 일이 아니다. 유럽발 재정위기를 촉발시킨 그리스 역시 지난 2001년 유로에 가입할 당시에도 이미 국가부채가 GDP의 100%를 넘은 상태였다. 그리스 역시 재정적자가 갑자기 덧나 응급실에 실려가게 된 건 감당할 수 없는 빚 때문이라기보다 빚 감당을 못하는 정치 때문이었다고 해야 정확하다. 2009년 10월의 조기총선으로 집권한 사회당의 게오르그 파판드레우 총리는 숨겨진 재정적자가 엄청나다고 전(前) 정부의 실정(失政)을 까발렸다.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은 하락했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하던 상황이 확 악화된 건 폭로만 했지, 빚 감당도 못하고 제때 대책도 과감하게 못 내놓고 노조의 격렬한 저항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무능하고 뒷북치는 정치지도력 때문이었다.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은 평소 관리만 잘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도 그런 만성질환이다. 미국이나 그리스 사태에서 보듯, 나라의 만성질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합병증이란 바로 정치권의 분열이나 무능력 등으로 위기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순간이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와 2011년 재정위기의 가장 큰 차이점도 정치지도력에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1월 취임했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007년 5월 취임했으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09년에 재선됐다. 금융위기 때는 1930년대 대공황 수준으로 세계경제가 악화될 수 있는 순간에, 국내의 지지가 넘치던 각국 정상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달려나와 이를 떠받쳤다.
그러나 금융위기 발발 후 3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미국과 유럽발 재정위기를 수습해야 할 글로벌 리더십은 레임덕에 빠져들고 있다. 내년에는 미국과 프랑스 대선, 2013년에는 독일 총선이 치러진다. 선거전에서는 현 정권의 실책이 야당에는 기회여서 위기해결을 위한 정치적 타협을 기대하기가 훨씬 힘들어진다. 금융위기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세계경제에 '2012년 선거'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라는 폭탄 두 개를 안은 한국도 노심초사(勞心焦思)이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이나 그리스처럼 나랏빚의 당뇨 증세가 심각하진 않지만, 오히려 그 바람에 나랏돈 씀씀이의 배포가 엄청 커진 정치인들이 벌써부터 온 나라를 들쑤시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2008년 금융위기, 2011년 재정위기보다 '2012년 선거위기'가 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불씨일지도 모른다.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