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하원 정치부 차장
서울시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한 미국인이 팻말을 들고 시위를 시작했다. 이를 본 행인들이 분노한 얼굴로 모여들었다. 마침내 한 사람이 이 미국인의 멱살을 잡고 "너, 쪽발이 앞잡이냐"며 흥분한다. 지난 6월 한국에서 출간된 소설 '다케시마 반환 작전'의 서두다. 소설에선, 이 시위에 이어 '독도 상륙작전'을 벌인 일본 극우파가 살해돼 양국이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전쟁위기에 처한다.
현직 판사가 2년 전에 쓴 소설 '독도 인 더 헤이그'에서는 일본 자위대 소속 군함이 독도 침탈을 위해 출정한다. 비상출동한 한국의 KF-15 전투기 2대가 독도 앞바다에서 일본에 의해 격추된 후 유엔이 개입한다. 결국 한국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유엔의 중재를 받아들인다.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지에 대해 국제기구가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데 동의한 것이다.
두 소설은 두말할 것도 없이 허구다. 그런데 최근 일본의 행태를 보면 소설 속의 이런 사건들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고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일본 자민당 '영토에 관한 특명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한국 울릉도를 방문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을 누가 예상이나 했었나. 일본 외무성은 이들의 신변안전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까지 했다. "당신 집에 강도가 들어가는데 아무런 소동이 없도록 잘 보살피다가 돌려보내라"고 한 것이다.
새로운 항공기를 도입한 대한항공이 독도 영공까지 시험비행을 했다. 이 행사를 빌미로 일본 외무성이 자국 외교관들에게 '대한항공 탑승 금지' 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앞에 소개한 두 소설 속에서 한국 정부와 국민의 대응은 현실을 그대로 닮았다. 일본의 우익은 치밀한 각본을 갖고 문제를 일으킨다. 한국이 어떻게 나올지도 알고 있다. '독도 인 더 헤이그'에서 일본 우익이 "한국인들은 (독도 문제를) 자존심의 문제로 보는 반면 일본은 이익의 문제로 본다" "(한국인들은)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무너진다"고 말한 것은 상징성이 있다.
자민당 의원 3명이 일으킨 소동은 한국 정부의 입국금지 조치로 성사되지 못했다. 하지만 자민당에서는 "전체 의원들이 순서를 정해 울릉도를 방문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개적으로 나올 정도로 도발 수위가 올라가고 있다. 두려운 것은, 이런 식의 도발이 바로 두 소설이 제기한 대로 새로운 도발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이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다케시마를 반환하라"는 1인시위와 독도에 상륙하겠다고 달려드는 일본 보트는 언제라도 우리 눈앞에 나타날 수 있다.
예상치 못했던 방법으로 일본이 '독도 도발'을 해올 때 우리는 어떻게 일관된 대응을 할 것인지에 대해 지혜를 모을 때가 됐다. 소설에서처럼 애국심과 초능력으로 무장한 공무원 1~2명이 일본의 망상(妄想)을 깨뜨리고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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