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 기자 호세 바르가스는 2007년 버지니아텍 총격사건을 특종 보도해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그가 얼마 전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18년 전 필리핀에서 밀입국해 살아오다 발급 과정이 허술한 오리건주에서 딴 운전면허증을 제시하고 워싱턴포스트에 입사했다. 불법 체류자가 1120만명에 이르는 미국에선 드문 일이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 태어난 어린이의 8%는 부모 중 적어도 한 명이 불법 체류자라는 통계도 있다.
▶우리나라에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때가 1987년이다. 우리 근로자가 꺼리는 3D 업종을 감당해준 이들을 사회는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불법 체류자가 늘면서 1992년 봄 파키스탄 사람들 사이에 살인사건이 났다. 한·중 수교 후 중국 동포들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부는 그제야 불법 체류 외국인에 대한 통계 관리를 시작했다. 그해 말 불법 체류 외국인은 3만889명으로 집계됐다.
▶2000년대 들어 외국인 노동자들은 단순한 3D 업종을 넘어 저임금 제조업 노동시장 전반으로 퍼졌다. 불법 체류자는 2002년 정점에 올라 국내 외국인 62만9006명 중 30만8165명으로 절반을 차지했다. 이후 완만한 감소 추세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6월 말 불법 체류자는 전체 외국인 139만2167명의 12%, 16만6518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다.
▶석동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국내 불법 체류자가 다시 급증하면 우리 사회에 폭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15개국 21만명의 체류기간 4년10개월이 작년 9월 끝난 데 주목했다. 그는 "올 상반기 출국했어야 할 8800여명 중에 40%가 불법 체류자로 도망다니고 있다"고 했다. 중국·구소련 동포 29만명도 내년 1월부터 체류 만기가 돌아오면 무더기로 불법 체류를 할 우려가 크다.
▶정부는 불법 체류자가 범죄를 저지를 경우에만 단속하는 느슨한 정책을 펴고 있다. 지금의 불법 체류자 규모라면 노동력 공급에 숨통을 틔워주면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불법행위는 막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를 무한정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 한계는 이들이 우리 공동체에 보탬이 되면서 인간다운 대우를 누릴 수 있는 선에서 그어야 한다. 그 선을 넘으면 석 본부장 말대로 '폭탄'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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