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관통상 美 의원 살린 피터 리 박사 인터뷰
"外傷환자 응급실 도착해도 수술 공간·전담 의사 없어"… 아프가니스탄·이라크 등서 24년간 해군野戰醫로 활약
"이런 최첨단 대형 병원은 처음 봅니다. 그런데 응급실을 둘러보니 시계를 거꾸로 돌려 제3세계에 온 것 같더군요. 가슴 아플 정도의 수준이라서…."미국 애리조나 투산 대학메디컬센터(UMC)의 외상전문의 피터 리(49) 박사는 1일 국내 굴지의 대학병원을 둘러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응급 외상환자가 도착하면 즉시 수술할 수 있는 공간도 없고, 전담 의사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1월 애리조나 총격사건 때 머리에 관통상을 당한 가브리엘 기퍼즈(Giffords) 연방 하원 의원을 살려낸 수술 책임자로 연일 전미(全美) 언론에 기퍼즈 의원 상태를 브리핑하면서 영웅으로 떠오른 한국계 의사다. 그가 오는 3일 대한외상학회 학술대회 참석차 방한했다.
이 박사는 거의 세계 톱 수준인 한국 의료계에서 유독 외상 진료가 특별히 낙후된 상황을 의아해했다. 그는 "한국 국민이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외상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는지 제대로 알면 지금의 한국 시스템을 가만히 두고 보진 않을 것"이라며 "미국 같으면 10여명의 외상팀이 미리 준비하고 환자를 기다리는데, 기퍼즈 의원이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당시 브리핑 때 이 박사는 "기퍼즈 의원을 살릴 수 있는 확률은 101퍼센트"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완벽하게 준비된 팀이 도착 즉시 응급 수술에 들어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15년 전 외상전문의 수련을 마치고 한국을 찾았는데 그 당시 한국에는 외상전문의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의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외상 진료체계를 갖추기 위한 싹은 틔운 것 같아 다행이네요."
서울에서 태어난 이 박사는 다섯 살 때 의사로 평화봉사단에서 일했던 아버지를 따라 우간다에서 5년을 보낸 후 미국으로 이민 갔다. 그는 몸에 창이 꽂힌 채 집으로 찾아오는 우간다 주민들을 성심껏 치료하던 아버지 모습을 보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거의 무상으로 의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해군사관학교를 택했고, 이후 24년간 해군에 남아 수많은 부상병을 치료한 베테랑 야전의가 됐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2005년에는 이라크 전투 일선에서 부상병을 치료했다.
"열악한 전시(戰時) 상황에서는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순식간에 판단하는 법을 배웁니다. 외상외과의사에게는 절대적 자산이죠." 이 박사는 이런 경험 때문에 군 병원이 외상 치료 기술 개발을 선도하기도 한다고 했다. 출혈이 심할 때 수액 링거부터 맞히는 게 관행이었지만, 전시 경험으로 수액보다 수혈이 우선이라는 걸 밝혀낸 것 등이 그 예다.
그는 "미국 전체에 외상외과 전문의는 3000명 있는데 이 중 10%는 군병원에 있다"며 "미국 군병원은 민간병원이 무색할 정도로 우수하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 현장에서 바로 응급 외상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전문의가 3명밖에 없다고 들었다"고 이 박사는 말했다.
"미군은 적극적으로 인재에 투자해 군의관을 길러내는 시스템이죠. 한국처럼 시곗바늘만 쳐다보고 있으면 제대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는 제대로 된 군의관을 키울 수 없습니다."
그는 다만 한국처럼 국토가 좁은 나라에서는 이미 상당한 수준을 갖춘 민간병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병원은 죽었다… 나라의 문명도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