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회장은 아홉 살 때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미시간대학을 졸업하고는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스텐포드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였다. 1922년 숙주나물을 취급하는 라초이 식품회사를 설립하여 3년여에 50만 불에 이르는 당시로서는 거금을 벌 수 있었다. 그의 집념과 창의력 그리고 추진력과 돌파력이 하나로 뭉쳐져 이룩한 열매였다.
1925년 고국에 오는 길에 중국 상인들이 세금을 덜 내기 위하여 수단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은 어떤 경우이든 세금만큼은 철저히 납부하는 기업인이 되겠노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훗날 유한양행의 철저한 세금납부의 전통이 그 시절에 기틀이 닦여졌다.
아홉 살에 고국을 떠난후 21년 만에 귀국케 된 그는 고향 사람들의 병약하고 지친 표정들을 보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동포들이 질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약이 없어 치료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는 조선에 다른 어떤 사업보다 제약사업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래서 라초이 회사를 판매한 기금 전액을 투입하여 의약품 취급 회사인 유한양행(柳韓洋行)을 설립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유한기업이 한국 땅에서 깨끗한 자본주의, 올바른 자본주의 정신을 따라 기업을 경영하는 본보기가 되었다.
특히 유한기업이 여타 다른 기업과 달랐던 점은 정경유착과 탈세, 비리와 부조리로 점철된 한국기업사에서 유독 유한기업만은 정직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하여 백성들의 유익과 국가에 기여하는 기업의 공익정신을 구현하는 기업의 정도(正道)를 지켜 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